AI 시대, 국가 독서정책을 다시 묻다

리터러시 아카이브 #10

by 해성 김수경

프롤로그


요즘 우리는 ‘문해력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독서는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사람들이 책을 멀리해서일까,

아니면 읽을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일까.


하지만 이 위기를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만 설명하는 순간,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사라진다.

읽지 않는 개인이 문제일까,

아니면 읽을 수 없는 구조가 문제일까.


최근 ‘AI 시대, 독서를 국가 핵심 정책으로 삼겠다’는 선언과 함께

국가독서위원회 논의가 다시 등장했다.

독서 인구 감소와 문해력 저하라는 현실 앞에서

국가가 책임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미 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이 정책은 과연

읽는 인간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독서는 언제나 개인의 일이었다.

그러나 독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결코 개인만의 것이 아니었다.


읽을 시간이 허락되는 사회,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읽기가 존중되는 문화,

말과 글로 표현해도 안전한 공적 공간


이 모든 조건이 있을 때

독서는 비로소 개인의 선택이 된다.


국가가 독서를 말할 때

중요한 것은 관리나 강제가 아니라,

사유가 자라날 수 있는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지켜내고 있는가다.


1. 읽기의 위기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때 생기는 일

요즘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아이들이 책을 안 읽어서 문제다.”

“문해력이 낮아서 공부를 못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숏폼 영상, 요약 콘텐츠, 알고리즘 추천이

일상을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긴 호흡의 읽기가 어려워진 것은

개인의 나태함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매체 구조 변화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읽기의 위기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환원해 왔다.

그 결과, 읽기는 점점

훈련의 대상, 교정의 대상이 되었다.


2. 문해력은 어떻게 사교육의 상품이 되었는가


최근 문해력은 ‘학습 능력의 기초’라는 이름으로

사교육 시장에서 빠르게 재구성되고 있다.

유치원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문해력 프로그램이

하나의 학습 패키지로 유통된다.


문해력이라는 말이

교육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이후,

사교육 시장은 가장 빠르게 반응했다.


문해력 진단,

어휘력 검사,

독해력 훈련 교재.


이 모든 것이

단계별·수준별 프로그램으로 포장되어

하나의 사교육 과목이 되었다.


과거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도서관과 서점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읽기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의 부모들은 훨씬 바쁘고

교육정보의 비교가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사회 속에서 더욱 불안하다.


문해력이 곧 학습 성취와 연결된다는 인식 속에서

읽기는 ‘관계 속 경험’이 아니라

학습 능력의 지표’로 인식되며

바쁜 부모들이 손쉽게 의존할 수 있는

사교육 상품으로 대체되고 있다.


즉 읽기는 경험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능력이 되었고,

독서는 점점 멀어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오해가 있다.

문해력과 독서는 같은 능력이 아니다.


문해력은

지식과 정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기본 기술이라면,

독서는

사유·감정·비판·상상력을 함께 작동시키는

종합적 사고 활동이다.


독서를 학습 기술로 환원하는 순간,

독서는 본질,

즉 읽기 과정에서의 즐거운 경험,

스스로 읽을 책을 선택하고 경험하는 자율성,

평가의 대상이 아닌 무상성

을 잃는다.


3. 공교육은 왜 시스템으로 읽기를 대체했는가

이 흐름은 사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 역시 문해력 문제를

온라인 진단과 훈련 시스템으로 해결하려 한다.


국가 차원의 기초학력진단,

교육청 단위의 문해력 평가 시스템,

AI 기반 맞춤형 훈련 도구까지.


또한 공영 교육 미디어인 EBS의 역할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EBS는 오랫동안 ‘공교육 보완’이라는 명분 아래,

문해력·독해력·사고력 콘텐츠를 대량으로 생산해 왔다.

문제는 이 콘텐츠들이

점점 훈련형 독해, 유형 중심 읽기, 평가 대비 읽기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이다.


EBS의 콘텐츠는 본래 공공성을 지녔지만,

사교육 시장에서는 이 자료들이 다시 가공되어

학습지, 인강, 훈련 프로그램의 근거로 활용된다.

공영 교육 콘텐츠가 의도와 다르게

‘문해력의 학습화·평가화’를 가속하는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문해력 특강’, ‘독해력 강화’, ‘논리적 사고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많은 프로그램은

읽기를 하나 기술(skill)이나 문제 해결 도구로 다룬다.

그 과정에서 읽기의 핵심인 머무름, 흔들림, 사유의 여백은 점점 사라진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오해도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

요즘 “문해력이 곧 국어 실력”이거나

“국어 점수가 곧 문해력”인 것처럼 말해지지만,

문해력과 독서는 같은 능력이 아니다.


문해력은 지식과 정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기본 기술이다.

독서(독서능력)는 그 문해력을 바탕으로

사유·연결·해석·비판을 수행하며 종합 사고를 기르는 통합교과적 경험이다.


수학의 문장형 문제를 못 푸는 현상을 두고

“문해력 부족”이라는 말이 나올 때도,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그 현상은 분명 ‘읽기 이해’와 연결되지만,

곧바로 “국어 점수가 수학을 결정한다”는 식의 구호로 흘러가면

문해력은 다시 입시·성취의 도구가 되고,

독서는 생각의 시간이 아니라 훈련의 시간이 된다.


읽기는 원래 정답을 맞히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방송·플랫폼·교재를 거치며

독서는 점점 빠르게 처리해야 할 과제,

문해력은 측정 가능한 지표로 변해 간다.

이때 독서는 사유의 경험이 아니라

관리와 성취의 대상이 된다.


요즈음 제기되는 문해력 담론의 문제

“진단과 훈련 자체”가 아니라,

그 방식이 관계와 시간 대신 시스템으로 대체되기 쉬운 구조라는 점이다.


읽기는 본래 누군가의 언어를 만나고,

그 언어를 자기 경험과 연결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진단–분류–보정’의 흐름이 강화될수록,

읽기는 쉽게 점수와 처방의 언어로 환원된다.


시스템 중심의 문해력 교육에서는

아이와 텍스트 사이에

교사나 또래, 대화의 장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관계(대화·낭독·토론·공감)가 빠진 자리를

기술과 플랫폼이 대신한다.


공교육의 이 선택은

사교육과 닮아 있다.


사교육이

부모의 돌봄 공백을 대신했다면,

공교육의 시스템은

관계와 시간의 공백을 대신한 셈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진단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읽기를 관계와 시간의 경험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읽기가

기술과 시스템으로 대체되는 순간,

독서는 다시 혼자만의 행위로 고립된다.


읽기는

훈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독서는 삶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4. 독서의 위기는 사회 구조의 문제다


이 모든 현상은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다.


일과 여가의 균형이 무너지고,

모든 시간이 성과와 효율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느린 읽기는 늘 뒤로 밀린다.

읽기는 시간을 요하며 느리게 경험되며,

느림은 생산성이 낮은 비효율적인 언어로 인식된다.


이 구조 속에서

독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독서의 위기는

읽지 않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읽기를 통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은

사회 조건의 문제다.


5. 국가독서위원회, 무엇이 문제인가

그래서 국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방식이 문제다.


과거 우리는

학생의 독서 이력을 데이터로 관리하고,

온라인 시스템에 기록하며,

입시와 연결하려 했던 시도를 경험했다.

그 결과, 독서는

자발적 경험이 아니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국가는 독서를

직접 설계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역할은

이미 존재하는 독서 생태계

- 도서관, 학교, 서점, 지역 독서공동체, 전문가 -를

지원하고 연결하는 데 있다.


새로운 조직과 선언보다

현장의 조건을 살피는 정책이 먼저다.


에필로그

개인에서 구조로, 치유에서 조건으로


독서는

개인의 취미가 아니다.

독서는

사유가 가능한 사회의 최소 조건이다.


독서는 본래 사상과 감정의 영역이다.

국가가 개입할 수는 있지만,

강제하거나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독서는 더 이상 독서가 아니다.


개인의 노력만을 요구하는 독서 정책은

결국 실패한다.


독서가

사교육으로 흘러가고,

성과로 환산되고,

관리 대상이 되는 구조 속에서는

어떤 독서 프로그램도 지속될 수 없다.


AI 시대의 독서정책은

‘무엇을 읽힐 것인가’를 정하는 정책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 읽을 수 있는가를

설계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독서 내용을 통제하거나

개인의 독서 이력을 관리하는 데 있지 않다.


독서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는

공적 조건을 만드는 데 있다.


그 조건이 무너지면

독서는 사교육으로,

독서치료는 개인 상담으로,

도서관은 보조 기관으로 축소된다.


읽기가 가능해지는

시간, 공간, 관계의 조건을

사회가 함께 책임질 때

독서는 살아난다.


독서를 다시 살리고 싶다면

훈련 이전에 경험을,

관리 이전에 시간을,

평가 이전에 관계를

되돌려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진단이 아니다.


읽을 수 있는 시간,

말할 수 있는 공간,

표현해도 괜찮은 관계.


그 조건이 회복될 때

독서는 다시

사람의 일이 된다.



다음 글 예고

리터러시 아카이브 #11

생각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의 출발점


읽기는 내면에서 멈추지 않는다.

읽은 생각은

말이 되고,

글이 되고,

이미지와 소리와 영상이 된다.

다음 글에서는

왜 지금 ‘표현 리터러시’가 필요한지,

그리고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가

AI 시대 인간의 주도성을 어떻게 회복하는지를

이론과 실천의 언어로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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