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아카이브 #11
읽는 인간은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인간이
모두 표현하는 인간은 아니다.
많은 생각은
말로 나오지 못한 채 사라지고,
글로 적히지 못한 채 흩어진다.
AI 시대의 질문은
더 이상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다.
“이 생각을 나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이다.
읽기는 사고의 입력이다.
그러나 입력만으로
사유는 완성되지 않는다.
읽고 이해한 생각이
말로, 글로, 이미지로, 영상으로
밖으로 나올 때
사고는 비로소 구조를 갖는다.
그래서 표현은
사고의 부속물이 아니라
사고의 다음 단계다.
표현하지 않은 생각은
잠정적이고,
표현된 생각은
다시 읽히고, 다시 질문된다.
그동안 우리는
리터러시를 나누어 불러왔다.
문해력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AI 리터러시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이 능력들이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과정은
항상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능력을
융합 리터러시라고 부르고,
그 실천의 핵심을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라 부른다.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는
잘 그리는 기술이나
영상 편집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읽고 사유한 내용을
자기 언어로 재구성해
가장 적절한 매체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표현은
글쓰기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은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자
내 사유를 세상에 걸어두는 행위다.
글로 쓰는 순간
생각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독자의 시선이 들어오고,
질문이 생기고,
다시 읽고 다시 쓰게 된다.
글쓰기는
표현이 사고를 확장시키는
가장 분명한 행위이다.
최근 나는
새해를 맞아
‘적토마’ 이미지를 카드로 만들고,
짧은 영상으로도 표현해보았다.
같은 생각이었지만
글과 이미지는
전혀 다른 언어를 요구했다.
챗 GPT, Gemini 등 생성형 AI로
사진으로 연필 초상화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이, 헤어스타일, 옷, 주름, 사용 용도, 분위기, 배경 등을
다각적인 방향으로 주문한다.
한 문장으로 설명하던 감정이
선 하나, 명암 하나로
다르게 드러났다.
생각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드는 과정 중에
여러 다른 방향으로
사고를 확장시킨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아니다.
표현해보는 과정 자체가
사고를 다시 읽게 만든다.
글로 쓰며 생각을 점검하고,
이미지로 옮기며 감정을 확인하고,
영상으로 구성하며 맥락을 재조정한다.
이 반복 속에서
생각은 점점 단단해진다.
그래서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는
결과 중심 교육이 아니라
과정 중심 훈련이다.
표현은 인간을 다시 중심에 세운다.
AI는 이미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고,
글을 대신 써준다.
그러나
무엇을 표현할지 결정하는 것,
왜 이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아는 것,
그 의미를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표현은
인간이 사고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다.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인간.
리터러시는
그 순환이 멈추지 않게 하는
인간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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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 아카이브 #12
이미지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
시각적 표현과 사고의 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