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아카이브 #12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보통 말을 한다.
“좋았다”, “어려웠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감각과 생각을, 나는 어떻게 ‘보이게’ 만들 수 있을까?
AI 시대의 리터러시는
읽고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읽은 것을 자기 언어로, 자기 매체로 번역하는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이번 글은
한 편의 소설을 읽고
그 감각을 이미지로 표현해
‘새로운 책 표지’를 만들어낸 실제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은 감상화가 아니라
사유를 이미지로 외현화한 하나의 리터러시 실험이다.
『여수의 사랑』을 읽고 읽기의 인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다시 구성했다.
이것은 독후감상화가 아니라 읽은 세계를 시각 언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최근 나는 독서챌린지를 통해
한강 소설 "여수의 사랑"을 읽었다.
이 소설은 위로의 이야기라기보다
회복되지 않는 마음을 끝까지 응시하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몸의 상처는 더디게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얼어붙은 채로 한 계절에 갇힌다.
그 이미지는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행 가방 두 개
허름한 기하학적 보퉁이
금붕어를 든 인물
여수로 향하는 기차
결벽증처럼 팽팽한 내면
나는 묻게 되었다.
“이 소설을, 만약 내가 다시 표지로 만든다면
어떤 장면을 남기고 싶을까?”
이 질문이
이미지 표현 리터러시의 출발점이었다.
우리가 익숙한 독후감상화는
주로 장면 재현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장면이 아니라 사유의 구조를 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기준을 이렇게 바꾸었다.
예쁜 그림인가?
인상적인 장면인가?
이 소설의 정서와 인물의 내면 구조가 드러나는가?
이미지 표현 리터러시는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지 선택하는 능력이다.
나는 이 장면을
AI 이미지 생성 도구인 Chat GPT에 언어로 설명했다.
인물의 상태
소설의 분위기
표지라는 형식
기존 표지에 대한 거리두기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이미지를 만든 것은 AI가 아니라, 질문과 설명을 구성한 나의 읽기였다.
AI는 그 설명을
시각적으로 번역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시 소설을 떠올리고,
다시 인물의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내 해석을 언어로 다듬었다.
즉,
이미지 만들기는 또 한 번의 깊은 읽기였다.
이미지가 완성되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읽은 기분이 들었다.
글로 읽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형태를 얻었다.
고립된 인물의 무게
이동하지만 도착하지 못하는 마음
회복이 아닌, 균열의 순간
이미지는
읽기를 끝내는 방식이 아니라
읽기를 연장하는 방식이었다. ]
이 지점에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는
읽기의 대안이 아니라
읽기의 확장이다.
내가 말하는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란 다음과 같다.
읽고 이해한 내용을
글, 이미지, 영상, 소리 등
다양한 매체로 재구성하여
자기 사유를 외현화하는 능력
이는 감상도, 기술 훈련도 아니다.
사유를 매체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AI는
이 번역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단,
읽는 인간이 주도권을 가질 때만.
숏폼과 영상이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미지를 사유의 결과물로 만드는 경험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책을 읽고
그 감각을 이미지로 만드는 일은
읽기를 깊게 하고
표현을 필연적으로 만들며
나만의 해석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 필요한 융합 리터러시의 한 예시이다.
이미지는 말이 없는 언어다.
하지만 생각 없는 이미지는 공허하다.
읽고,
생각하고,
이미지로 번역하는 이 과정에서
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표현은 읽기의 끝이 아니라
읽기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제 나는
책을 읽으면 묻게 된다.
“이 생각을
나는 어떤 이미지로 남길 수 있을까?”
생성형 AI는
생각을 대신해 주지는 않지만,
생각을 꺼내어
형태로 만들기에는
의외로 쉽고 좋은 도구였다.
궁금하면,
한번쯤 직접 써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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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 아카이브 #13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 : 소리·음악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