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아카이브 #13
읽기는 시각의 경험으로 시작되지만,
기억은 언제나 감각의 총합으로 남는다.
책을 읽고 남는 기억도 그렇고,
삶을 살며 마주친 장면의 기억도 그렇다.
어떤 순간은 문장으로,
어떤 순간은 풍경으로,
어떤 순간은 소리 (또는 음악)로 남는다.
기차가 지나가던 소리,
겨울 들판을 스치는 바람,
여행지에서 들었던 낯선 도시의 공기.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에서
‘소리’는 읽기의 결과만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읽기와 삶이 겹쳐지는 기억을 호출하는 매체다.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문장을 요약하거나 감상을 정리하는 대신
그 작품이 남긴 ‘소리의 잔상’에 먼저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이 소설은
죽음을 다룬 이야기라기보다
생애 안에 이미 죽음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의 진혼곡처럼 읽힌다.
여기서 진혼은
장례를 위한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이미 상실과 고통을 통과한 이들을 위한
조용한 애도의 형식에 가깝다.
읽는 동안 떠오른 소리는
격렬한 비명이나 파열음이 아니었다.
온갖 삶 현장의 소리들,
"어둠이 내린 뒤 에어컨디셔너를 끈 뒤 베란다 유리문과
복도 창문들이 활짝 열리면서 그 속에서 제각기 삐져나오는 소리들이
뒤섞인 기묘한 화음들,
즉, 여인네가 아이를 부르는 소리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방문 여닫는 소리, 전화벨 소리, 계단 오르내리는 구둣발 소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적요한 아파트 광장에 나직한 합창으로 울렸다."
(「어둠의 사육제」 85쪽.)
이 소설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소리를 표현한 문장이다.
이 문장과 달리 등장인물들은
이 생활의 소리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부유하며
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그 소리는,
오히려 낮은 음역에서 천천히 반복되는
무겁고 절제된 선율,
끝내 침묵으로 수렴되는 음악이었다.
그 감각은 자연스럽게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떠올리게 했다.
웅장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비극적이지만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조용히 가로지르는 음악.
이 소설이 내게 남긴 소리는
바로 그런 낮고 느린 진혼의 울림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하는 소리’로 기억하게 되었다.
이때 소리는
문장의 의미를 해석한 결과물이 아니라,
읽는 동안 내 몸과 감정에 남은 감각의 기록이다.
읽기의 경험이
다시 소리로 번역되는 순간,
사유는 언어를 넘어
다른 매체의 형식으로 확장된다.
이것이
책(글)을 읽은 뒤
소리로 표현해 보는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의 한 사례다.
우리는 종종
표현의 출발점을 ‘읽은 텍스트’로 한정한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사유는
텍스트와 삶의 경험이 뒤섞이며 형성된다.
책을 읽다 떠오른 장면
여행 중 문득 겹쳐진 문장
어떤 풍경 앞에서 갑자기 이해된 한 생각
이 모든 것은
이미 해석된 경험,
즉 하나의 텍스트다.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는
책을 읽고 감상하는 기술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해석 가능한 재료로 전환하는 능력에 가깝다.
소리는
문장을 요약하지 않는다.
대신 순간의 상태를 남긴다.
이미지는 장면을 고정하지만,
소리는 그 장면이 지나가던 시간을 품고 있다.
그래서 소리는
여행의 기억을 불러오고,
삶의 전환점을 되살리며,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유지한다.
읽은 책의 장면도,
기차 안에서 멍하니 바라본 들판도
소리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이 점에서 소리는
읽기의 기억과 삶의 기억을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매체다.
얼마 전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유난히 겨울 들판의 포도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을 내준 뒤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오히려 단정하고 품위 있어 보였다.
이 장면을 이미지로 남기며
음악 대신 선택한 것은
겨울 들판을 스치는 바람 소리였다.
이 소리는
어떤 메시지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의 나를
다시 그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이처럼 소리는
삶의 장면을 해석하기보다
머무르게 만드는 표현이다.
기찻길은
책 속에서도,
삶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기차가 다가오고
지나가고
멀어지는 소리는
이동과 회상의 리듬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읽은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이든,
실제 여행의 기억이든
기차 소리는
사유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신호가 된다.
소리는
읽은 것을 ‘작품’으로 만들기보다
생각이 다시 흐르도록 만든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을 가면 사진 대신
소리를 녹음한다고 말한다.
(『여행의 이유』 및 여러 인터뷰에서).
이 선택은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기억에 대한 통찰이다.
사진은 장면을 소유하지만,
소리는 경험을 다시 열어준다.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에서
이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표현은 기록이 아니라
경험을 다시 불러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에서
소리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다.
읽은 순간의 감각을 기억하는 매체
설명보다 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
해석 이전의 정서적 층위를 보존하는 매체
개인의 읽기 경험을 타인과 공유 가능한 감각으로 전환하는 매체
따라서 소리 표현은
기술 숙련의 문제가 아니라
읽기, 삶의 경험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이제 나는
책을 읽고 나서만이 아니라,
삶의 장면 앞에서도 묻게 된다.
“이 순간을
나는 어떤 소리로 남길 수 있을까?”
생성형 AI와 디지털 도구는
사유를 대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유를 표현 가능한 형태로 옮기는 데에는
매우 유용한 도구임을
이 과정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궁금하면
직접 써 보시라.
읽은 기억도,
살아낸 장면도
소리는 모두 품어낼 수 있다.
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는
매체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사유가 머무를 수 있는 통로를 확장하는 일이다.
읽은 경험을
이미지로,
소리로,
그리고 다시 생각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 읽기는 이미
삶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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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매체표현 리터러시 : 영상 편
―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유를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