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순례자
거실 벽에는 이미 스승님의 연필 초상이 걸려 있었다.
혼자 결려 있는 것이 마음에 결리셨던 모양이다.
며칠 전, 스승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사모님 것도 하나 그려줄 수 있겠나.
깜짝 선물로 주고 싶네.”
나는 그 부탁을 마음에 담았다.
그리고 사모님의 초상을 그려 들고 갔다.
이미 교수님 연필화 초상은 액자에 넣어져 있었다.
비어 있던 액자에 사모님의 얼굴을 채워 넣었다.
서로를 향해 선 두 얼굴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이제야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이 액자를 보면,
부모의 삶을 한 번쯤 그려보지 않겠나 ...”
스승님은 말끝을 조용히 흐리셨다.
세월이 흐른 얼굴들.
서로 다른 표정이지만
같은 시간을 살아낸 얼굴.
스승님은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지상의 위대한 도서관》,
《위대한 도서관 건축순례》,
《내 마음의 비블리오테카》의 저자다.
세계의 도서관을 직접 걸으며
기록해 온 분이다.
도서관 여행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분이다.
그러나 그 집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정하고 검소했다.
식탁 위 작은 유리 접시에
당근 꼭지가 물에 담겨 있었다.
“이렇게 두면 싹이 나요.
싹이 나면 계란 요리에 조금 넣어 먹지요.”
버려질 것을 살려내는 손.
작은 것을 키워내는 마음.
사모님은 양파망을 씻어 파우치를 만들고,
쓰지 않는 우산 천으로 가방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누신다.
그 집의 검소함은 궁핍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80대 후반의 두 분은
여전히 배우고 기록하며 하루를 산다.
멀리 있는 자식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리움에 잠기지 않는다.
그날, 스승님은 오래 간직했을 듯한 달러 한 장을 건네셨다.
그리고 말했다.
“문이 닫히는 것 같아도, 다른 문은 열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존경은
책을 쓰는 일만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을
끝까지 소중히 여기는 태도라는 것을.
도서관 기행을 기록해온 스승님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