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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Jan 16. 2022

'코드 톡커’ 나바호 인디언에 대해 아시나요

나바호 자치국의 수도, 애리조나주 윈도 락(Window Rock)




누군가 야구공을 던져 만들어 놓은 듯 구멍이 있었다. 핑크빛 감도는 거대한 병풍 같은 암벽에 창문처럼 뚫려있어 이름 붙여진 듯 그렇게 ‘윈도 락’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샌드스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곳의 주인공은 윈도 락 앞 작은 동상이다. 바로 ‘코드 토커 (Code Talker)’라 불렸던 인디언 병사들이다.


미국의 40번 프리웨이는 대륙의 남부를 횡단한다. 그 선상에서 멀지 않은 서부의 윈도 락은 애리조나 주와 뉴 멕시코 주 경계에 있다. 이 일대는 미서부 여러 부족의 인디언들이 주로 살던 지역 중에서도 나바호족의 오랜 터전이었다. 하지만 흔히 우리가 ‘인디언’이라 부르는 그들은 네이티브 아메리칸 (Native American)으로 불리길 원한다. 그래서 이 지역은 나바호 자치국(Navajo Nation)이다. 이 곳 윈도 락(Window Rock) 시를 수도로 정하고 독립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부족 대표도 선출하며 대통령 및 부통령의 나바호 민족 사무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암벽이 있는 곳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윈도 락 입구에 다다르니 신기하게 구멍 난 바위가 생각보다 크다. 창문이라고 하기엔 예상보다 큰 구멍에 보는 이를 작아지게 만든다. 들어서는 입구엔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한 29명의 나바호 인디언 ‘코드 토커’의 활약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었다. 무전기를 메고 있는 통신 병사의 동상이다. 동상 밑에는 29명의 코드 토커의 이름이 벽돌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






코드 토커(Code Talkers)로 활동했던 인디언

코드 토커는 전쟁터에서 부족 언어(Diné language)를 사용해 비밀 통신을 보내는 역할을 맡았던 인디언 통신병을 부르는 것이다.

이미 1차 세계대전 때 미국 내 촉토 인디언 코드 토커(Choctaw Code Talkers, Choctaw Telephone Squad)가 처음으로 테스트되긴 했었다. 하지만 미군이 본격적으로 코드 토커를 모집하고 훈련시키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었다.

주로 코드 토커는 두 명씩 한 조로 군대에 배정되었다. 전투 중 한 사람은 32파운드 무게의 휴대용 무전기를 메고 이를 작동했다. 다른 사람은 부족의 언어로 메시지를 발신하거나 수신하여 이를 영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중 특히 일본군은 주로 장교나 의무병 또는 통신병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1940년 처음 미 육군에서 시작되었고 이어 해병대와 해군에서도 ‘코드 토커’를 훈련시켰다. 이들은 기본 훈련 외에도 문자가 없는 부족의 언어를 대신할 군사 코드를 개발하고 암기해야 했었다. 예를 들어, "개미"에 대한 나바호어 단어인 wo-la-chee는 영어로 문자 "a"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원래 나바호어에 존재하지 않는 군사용 단어를 위한 용어 사전도 개발했다. 예를 들어, "잠수함"은 나바호 단어에는 없었기 때문에 대신 "철 물고기"로 번역되는 besh-lo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니 인디언 부족의 언어를 이용한 암호를 푼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수백 명의 코드 토커의 활약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상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었다. 때문에 이들은 한동안 공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유는 ‘코드 토커’들이 사용했던 암호를 미군이 계속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나 코드 토커의 활약상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곳에서 역사 속에 함께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된다. 황량한 자연에서 태어나 그들의 언어로 살던 인디언이 참전했던 전쟁터를 생각해 본다. 나오는 길에 뒤돌아 본 윈도 락은 창문보다는 커다란 구멍으로 와닿는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를 공허함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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