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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주 Aug 02. 2022

가까이하기엔 아직 먼

제주 살이 - 김한미술관&카페3206

예체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대중음악이나 문학은 그나마 가까운 편이지만, 유독 미술에는 울렁증이 있다. 타고난 똥손으로 예술에는 자신도 관심도 없었고, 현대미술의 난해함으로 그 거리감은 열곱절 더 늘었다. 솔직히 피카소의 그림은 여전히 낙서 같고,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아직도 물음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재현하는 사진 기술과 반대로, 대상을 세상에 없는 것처럼 표현하려 애쓰는 예술이 현대 미술 같다. 나에게 현대 미술은 애석하게도 고상해 보이고 싶은 부자들의 조세 도피 수단 중 하나 정도이고, 그 마저도 내 인생과 무관한 일이었다.


우연히 지도에서 한림읍 상대리에 위치한 <김한미술관&카페3206> 찾았다. 1층의 카페와 2층의 전시실로 구성된 공간이었다. 평소 관심 없는 미술이지만,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 절반에 호기심이 절반 더해져 이곳을 찾았다. 적어도 무더위를 피할 카페가 있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나는 김한 화가를 전혀 몰랐. 이제 와서 찾아본 바로는, 작고한 김한 화가는 함경북도 출신의 실향민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그림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림 감상을 시작했건만, 첫 작품부터 난감했다.

 '이게 뭐야, 선은 왜 이렇게 삐딱하고 화병은 대칭도 안 맞고 앞뒤 원근법도 없잖아!'

이어지는 그림들 모두가 그랬다. 그림은 대체로 푸른색 배경으로 노란 달이 있고 생선이 널려있고 종종 소라나 조개가 있었다. 원근의 표현 없이 겹쳐서 그려진 겉 같았다. 화가의 그리움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포구에서 보았던 기억에 남는 이미지들이 시간의 순서나 우선순위 없이 떠올라 원근의 구분을 두지 않은 걸까?


나는 지금껏 간결하고 분명한 과학과 수학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에 비해 미술은 알쏭달쏭하다. 내가 느낀 모호함은 아마도 부족한 나의 안목 탓이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흐릿한 채 남겨두기로 했다. 어차피 해결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의 자의적 해석은 무해하게 속으로만 품고 있으면 그만이다. 풀리지 않는 알쏭하고 달쏭 한 기분에 잠기는 감상법을 이번 기회에 개발한 셈 치자. 앞으로도 알쏭달쏭한 마음을 품은 채, 끄덕끄덕 고갯짓 해 보이는 메서드 연기만 곁들인다면, 아무도 나의 미술 울렁증을 알아차리지 못을 것이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화가는 그리움을 이 방식으로 풀어놓으신 거구나’


20 후반쯤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적부터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모두의 마음에 담고 있는 필연적인 감정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라서 외로움을 느끼고, 그래서 완전한 공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에서 마음의 상함이나 불편함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대신, 마음이 몹시도 외롭고 답답한 날이면  모르는 은밀의 공간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글자들을 적어 내려가곤 했다.  감정을 글자로 풀어도 보고, 복잡한 마음을 묘사하려 찬찬히 훑어보면 어느새 속상했던 감정들은 날아가 버리고 편안해졌다. 그때 적은 글들은 소설 같아 보일 때도 있고  같을 때도 있었지만,  어떤 것도 아니었다.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나누기 위한 글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이었다. 살기 위해 어쩌다 찾은 방법이지만 효과가 있었다.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먹고 쉬는 것처럼, 나의 마음이 살기 위해 글을   같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화가는 그림으로 그리움을 풀어내 왔을 것이다. 그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흔적이 눈앞의 그림이라는 생각이 드니,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조금은 동질감이 들었다.


제주도 한경면에는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도 있고, 저지리에는 예술마을도 있다. 본업이 미술가나 사진작가인  같은 식당 주인장도 종종 보였다. 그들은 여전히 나와 거리가  다른 (species)처럼 느껴지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 조금은 그들의 마음이 이해될  . 그래서 김창열미술관을 찾아가 보았다. … 가까이하기엔 아직 조금 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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