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이란 말은 사람의 형상이란 말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었을 때 그 인간들은 연약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에피메테우스가 야생에서 살아남기에 유용한 강한 발톱이나 튼튼한 가죽, 날렵한 근육이나 힘 같은 것들은 모두 다른 동물들에게 주어버렸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장조 물을 살려내고자 신들을 엿 먹였다. 바로 신들만이 사용하는 불을 가져다 인간에게 준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신들에겐 빅엿이었다. 고작해야 동물들과 함께 야생에서 먹고 먹히며 배부르면 만족해서 디비자고 고 배 고프면 죽어라 뛰어야 딴 생각 못 할 인간들이 그 차원을 넘어서버린 것이다.
인간들은 불을 이용해 고기만 굽고 추위만 물리친 게 아니다. 온갖 것을 가져다 불에 넣어 녹이고 태우며 자연환경의 모든 것들을 이용했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합성하고 창조해 나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더욱 강해지고 번성했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했으며 인간의 삶을 넘어서는 철학을 찾아내고 그리고 영혼의 영원을 추구했다.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비웃던 신들을 인간이 오히려 비웃은 꼴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라는 위대한 격언까지 만들어 내어 아무리 약하고 불리한 처지에 있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자신이 전체와 함께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런 연약함 쯤이야 아무 문제가 될 것도 없다는 교훈까지 만들어 후손에 대대로 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들은 그렇게 점점 강해지는 인간들에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인간이 저렇게 창조적으로 번성해 나간다면 신들의 영역은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신들이 인간보다 우월할 것도 나을 것도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었다. 또 언젠가는 영원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그 비밀을 찾아 신들을 대체하게 될지도 몰랐다.
기분이 심히 나빠진 신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인간들의 저 단결된 힘을 흩어지게 해야 한다. 그들의 창조에 대한 집념에 물을 먹여야 한다. 그들의 저 망할 삶에 대한 집중력과 영원에 대한 진지함도 바람 빠진 풍선이 되게 해야 한다는데 모두 동의했다.
그 회의의 결과로 신들은 '인형'을 만들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음모였지만 인간들은 그것이 음모인지 천년 , 만년, 백만 년 지나도 절대 눈치 채지 못할 것이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신들은 인간이 정신을 잃고 헤매도록 만들어야 했고 생존의 노예가 되도록 만들어야 했지만 그것은 인간들에게 조금도 위협적인 것이 아니었다.
신들은 공들여 여자를 하나 창조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오뚝하고 또렷한 비례가 잘 맞는 이목구비를 주고 희고 부드러운 살갗과 길고 아름다운 윤기 나는 머리채를 주었다. 버드나무처럼 가는 허리와 매끈한 두 팔과 다리를 주고 복숭아 같은 엉덩이를 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몸에 향내를 뿌리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옷감으로 휘감았다. 또한 온 몸을 빛나는 보석들로 치장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과 창조라는 이름의 커튼으로 가려서 그 누구도 그들의 의도를 쉽게 눈치 채지 못하도록 했다. 여자의 인형화는 이렇게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의 이 전략을 눈치 챘다. 그러나 자신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불을 훔친 대가로 코카서스산 바위에 묶인 채로 독수리들에게 심장을 파 먹히고 있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형제 에피메테우스에게 신들의 음모를 알렸다. 자신이 처한 상태가 안 좋다 보니 자세한 설명을 할 순 없었고 다만 신들이 데리고 온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라! 는 경고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신들이 데리고 온 판도라를 보고 한 눈에 쏙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만 덥석 결혼하여 자기 곁에 두고 말았다. 신이 이 정도였으니 인간들은 판도라를 보고 어떤 상태가 되었을까?
인형 판도라를 본 인간들 중 수컷들은 대부분 넋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선녀나 천사가 있다고 마치 그들을 본것처럼 말을 했고 상상 속에서조차 판도라의 살결을 더듬었다. 그들은 사냥을 하기 위해 화살을 쏘았지만 화살은 빗나가기 일쑤였고 강철 무기를 만들던 풀무불은 꺼지기 일쑤였으며 밥과 술을 먹고 인형 판도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거나 그런 그녀을 한 번이라도 품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노래나 혹은 그런 그녀를 가까이서 만지고 함께 하지 못해 한스럽다는 노래를 해대었다.
이런 집단적인 열망이 남자들을 휘어잡자 여자들도 서서히 거기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동물 가죽을 잘라 겨우 부끄러운 부분만 가리고 있는 자신들을 살펴보았다. 나무껍질처럼 두꺼운 거친 피부가 왠지 부끄러웠다. 이전까지는 그런 피부야 말로 야생에서 살아남기에 좋은 강하고 멋진 것이었는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여성들은 말처럼 튼튼한 다리와 나무처럼 강한 근육을 가진 그들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부지런히 나무나 식물의 염료를 걷어다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판도라가 입고 있는 옷처럼 고운 옷감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신구를 만들어 착용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길고 날씬한 팔다리를 만들기 위해 마사지를 하고 곱고 희고 고운 살결을 만들기 위해 노동을 그만두었다. 그들은 대장장이에게 가서 죽음을 무릅쓰고 각진 턱을 둥글게 깍아 내기도 했다.
판도라 신드롬이 여성들을 휩쓸었다. 인형 판도라를 모방하는 여성들은 점차 그들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여성들에게 권력과 힘을 주고 안락한 생존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을 인형처럼 꾸미는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가장 여성다운 일이며 의무라고 강의를 하기도 했다.
부족의 사람들이 하루 먹을 고기와 야채들이 알맞고 여유롭게 진열되어 있던 시장에는 온갖 보석과 옷감과 물감들이 대신 들어찼고 그것들을 파는 가계는 밤낮없이 새로 생겨나 상점을 열었으며 물건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언제나 새로운 유행이라는 것 때문에 결코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그것들은 점차 인간들이 먹을 고기와 야채보다 더 중요하고 더 비싸고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액세서리와 장신구를 만드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전에는 숲을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고 진귀한 약초를 찾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점차 사라졌다. 이 새로운 일은 거대한 산업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인형 판도라는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켰다. 아니 세상에 거대한 물결을 일으켰다. 그것은 문명이었고 진보였고 아름다움이었고 창조였다. 세상은 밤에도 낮보다 더 환하게 불을 밝히고 먹고 입고 마시고 놀고 섹스를 하는 것으로 행복이 넘치는 듯이 보였다.
인간들이 인형 여자 중에서 여왕이나 여신을 뽑고 심지어 종교를 만들어 여신을 숭배하며 축제와 향략에 빠져지내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것들 속에서 예술과 창조를 만들어 나가려고 애를 쓰고 있을 때 판도라는 에피매테우스와의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판도라를 닮은 인형처럼 예쁜 아이였다. 그리고 그 예쁜 어린 인형 아이는 예쁜 인형 청소년이 되고 어느덧 예쁜 인형 여인이 되었다. 그리고 판도라는 점차 나이를 먹고 늙어갔다. 또 많은 여인들이 판도라와 같이 나이 들고 늙어갔다. 그러나 판도라와 그녀들은 늙어가면서도 조금이라도 인형처럼 보이기 위해 인형처럼 조금이라도 더 머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남자들의 관심과 사랑에서 멀어져 갔고 이런저런 질병을 얻었고 몸에 화학 변화를 일으켰다. 피부는 쭈글쭈글 거리며 늙어갔고 팔다리는 볼품없이 매달려 있었고 눈가 가슴은 처졌고 온갖 질병들을 키워냈다. 온갖 보석과 장식품들은 이제 그녀들의 부끄러움을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인형 여자들의 진짜 문제는 그녀들이 늙어갈 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의 자녀들이 늙어갈 때가 진짜 큰 문제였다. 인형 판도라가 오기 이전에는 나이 든 여자들은 어린 여자들에게 생활의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전수했다. 계절에 따라 들판에서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일들과 남자들이 잡아온 고기를 손질하는 요령 그리고 산속에 있는 약초들과 몸이 아플 때 그 약초들과 곡물들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여자들이 한 살씩 나이를 먹게 될 때마다 일어나는 몸의 변화와 달라지는 기능들을 모두 조용히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나이 든 인형 여자들은 그것을 나이 어린 인형 여자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엄마가 아니라 그저 인형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딸들이 초경을 할 때면 기껏해야 '너는 진짜 여자가 되었다'는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 말 정도였다. 또 그녀들이 아기를 갖고 아이 엄마가 될 때도 '그런 일은 의사가 다 해줄 거야! 좋은 병원을 알아보마' 하는 정도가 그녀들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몸이 아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간단하게 집에서 끓여먹을 수 있는 약초 따위는 아주 원시적인 것이며 위험한 것이니 반드시 좋은 의사에게 가야 한다는 말을 지혜로운 말처럼 되풀이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이 부모를 거역하고 떠나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인형 판도라와 그 딸들이 늙어서 무슨 이유인지 밤새 잠이 안 오거나, 월경이 있다 없다 하거나 혹은 이유 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날들이 며칠씩 있어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또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거나 가까운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부리고 화를 자주 내게 되어도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런 사소한 일들은 의사들도 심각하게 생각해서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들도 알려줄 수 없었다.
늙은 인형 판도라는 결국 알 수 없는 우울증에 걸렸다. 또한 인형 판도라를 모방했던 세대들 또한 거의 늙어서는 우울증과 각종 알 수 없는 통증들 외로움과 허무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판도라는 막연하게 그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일들과 그 배경들을 살펴보고 반추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편인 에피메테우스가 불만이 폭증했다. 에피메테우스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인형 판도라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늙어가고 있고 질병과 고통과 죽음에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판도라에게 끊임없이 성형할것을 요구했고 또 화장품과 장신구를 사다주며 조금이라도 젊음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판도라가 인형일 때 자신이 가장 남자답게 여기며 남자다운 환상 속에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여자의 냄새나는 늙음과 질병과 고통은 제발 자신에게서 감추어 달라고 요구했다.
판도라는 그제야 신들이 (어쩌면 남자들이)여자들을 인형이라는 아주 조그만 상자 안에 가두어 두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판도라는 그 상자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에피메테우스는 여자는 결코 아름다움을 의심해서는 안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을 멈추거나 포기해서도 안된다며 판도라가 그 작은 상자를 열어보는 것을 급구 반대했다.
그러나 판도라는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이 없을 때마다 그녀는 그 상자를 열고 한없이 한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 상자 안에서 여자들을 인형으로 만들어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흐트러트리고 진정한 창조성과 집중력 그리고 진지한 삶의 성스러움과 초월을 방해하기 위한 신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둘씩 흘러나왔다. 또한 인형화 되기 위해 여자들이 잃었던 것들 또한 아주 고통스럽고 슬프고 어리석은 이야기로 흘러나왔다. 상자에게 그런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올 때마다 세상은 비탄에 빠졌고 슬픔과 고통에 빠졌다. 그것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혼란과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들은 때때로 판도라만 없애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판도라에 의해 인간의 미래에 대한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이 매일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거부했고 받아들일수 없어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그 판도라가 그 상자의 밑바닥에 이르렀을 때 판도라는 신들이 인형 판도라를 만들기 이전으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제 늙고 병들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않은 판도라가 침대에 누워 작은 목소리로 그 메시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씩 판도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처음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받았을 때처럼 어떻게 이 세상 전체와 함께 협력하며 조화롭게 영원을 향해 살아나갈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