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과

by 이시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어요. 사과들은 따듯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나무에 매달려 향기롭게 익어가고 있었어요. 그때 한 사과가 문득 불안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사과는 작은 꼭지 하나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죠. 그 꼭지는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과들이 바람이 불 때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땅바닥으로 쓩! 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죠.


‘땅바닥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고 사과는 불안해했어요.

그래서 바람이 불면 사과나무에 더욱 꼭 붙어 있으려고 애썼어요. 그러나 하루하루 사과가 익어갈수록 꼭지는 더욱 약해졌어요.


사과는 천천히 눈을 들어 나무를 바라보았어요. 벌써 많은 사과들은 바닥에 떨어지고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렸던 가지들은 가벼워진 듯 바람에 몸을 흔들었어요. 사과는 그때 처음으로 사과나무를 보았어요. 지금까지는 사과와 가지를 이어주는 꼭지 그리고 꼭지가 붙어있는 가지만을 볼 수 있었어요. 사과는 사과나무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등치는 아주 굻고 그 등치에서 가지가 뻗어 나와 하늘로 용틀임을 하며 뻗어 갔어요. 그리고 그 큰 가지에서 작은 가지가 뻗어 나오고 그 작은 가지에서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어요.


‘나무는 나랑 아주 많이 다르게 생겼구나!’ 하고 사과나무는 생각했어요.

사과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면서 땅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과나무를 바라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사과나무처럼 될 수 있을까? 사과나무는 나처럼 땅에 떨어질 일이 결코 없겠는걸?’ 하고 사과는 또 생각했어요. 그리고 땅에 떨어질까봐 불안해질 때마다 사과나무에 대한 부러움은 점점 더 커져갔어요.


그때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사과가 달린 가지 위에 내려앉았어요.

"나를 먹지 마!" 하고 사과가 참새에게 소리쳤어요.


"나 기억 안 나? 여름 내내 너를 먹으러 오는 벌레들을 내가 막아 주었는데" 참새가 말했어요.


"아! 그렇구나! 우린 친구구나. 친구 안녕?" 햇살에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익은 사과가 참새에게 말했어요.


"다행이야. 아직 네가 여기 있어서, 네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어!" 참새가 말했어요.


"내가 땅에 떨어진다고?" 놀라서 기절할 뻔 한 사과가 다시 물었어요.


"그럼! 사과들은 빨갛게 익으면 나무를 떠나서 땅으로 떨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되지."


"싫어! 싫어! 난 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너무 무서워!" 사과가 말했어요.


참새는 그런 사과가 측은하게 느껴졌어요.

"네가 떨어져야 나무는 겨울 동안 쉬고 내년 봄에 또 새로운 사과를 만든단다."


참새의 말에 사과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릴 뻔했어요.


"땅에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사과가 물었어요.


‘땅에서 썩거나 가게로 팔려갔다가 사람들에게 먹히게 되겠지.’ 참새는 차마 이 말을 사과에게 해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 사과나무처럼 될 거야!" 하고 말했어요.


"저 사과나무처럼? 와! 정말? "


사과나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되물었어요.

"어떻게 저 사과나무처럼 되는데?"


사과나무가 다시 물었어요.

"사과나무처럼 되려면 사과나무를 떠나야 해!" 참새가 말했어요


하지만 사과나무가 이해하기에는 참 어려운 말이었어요.

'사과나무처럼 되려면 왜 사과나무를 떠나야 하지?' 하고 사과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나는 사과나무처럼은 될 수 없어! 나와 사과나무는 너무도 다르게 생겼거든"

사과나무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참새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어요


"네가 사과나무와 다르게 생긴 건 맞아. 하지만 너에겐 사과나무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

참새가 말했어요


"잠재력 그건 뭐지?"

사과가 물었어요


"응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잠자고 있는 힘 같은 거 말이야!"

참새가 말했어요


"그건 누가 준거지?"

사과가 물었어요


"사과나무가 너에게 준거야 사과나무는 모든 사과에게 공평하게 잠재력을 주었지!"

참새가 말했어요


"그럼 모든 사과는 다 사과나무가 되는 거야?"

사과가 다시 물었어요


"모든 사과는 다 사과나무가 될 수 있는 힘이 있어. 하지만 사과가 사과나무가 되고 안되고는 무엇보다도 사과나무가 되겠다는 사과의 의지가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잠재력은 발현되지 않아"

참새가 말했어요


"아 이만 가봐야겠어! 너무 많이 이야기했더니 목이 마르네. 내일 다시 올게!"

참새는 물을 마시러 날아갔어요


사과는 불안을 잊고 자신이 사과나무가 된다는 생각에 몰두 했어요 그런데 도무지 어떻게 자신이 사과나무가 될 수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어요.


그날 밤 생각에 골몰하던 사과는 문득 바람이 가지를 흔들 때 그만 가지를 놓쳐버리고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땅에는 사과나무가 푹신한 이파리를 깔아 두어서 사과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아요. 그리고 사과나무를 떠나는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무섭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사과나무는 포근하고 향기로운 나뭇잎을 이불처럼 덮었어요. 그래서 겨울이 와도 춥지 않았어요.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어요.

사과는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었어요. 그때 사과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과육들이 모두 흐물흐물 물러져 흙이 되어 버린것을 알았어요. 나무에 매달렸을때의 예쁜 사과의 모양과 형체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사과는 여전히 '나는 사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나무가 되겠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햇빛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았어요. 멀리서 어렴풋이 바람의 향기가 느껴졌어요 사과는 또 두발을 땅으로 내렸어요. 그리고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손봐 발을 키워나갔어요. 그러자 어느날 봄비가 맛있는 영양을 가득 담고 와서 사과를 적셨어요. 사과는 맛있는 봄비를 먹자 힘이 나서 두발과 두 손 그리고 몸이 점점 크게 자랐어요. 지금 아주 작은 어린 사과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어요.


사과는 자기가 나무가 되는 이 마법 같은 일이 결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나무가 되려고 애쓰거나 노력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어요. 나중에 자신이 큰 나무가 되었을 때 자기처럼 나무가 되는 일을 어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사과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 줄 생각 이예요.

'무엇이 되고 싶다면, 그 마음을 햇볕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매일 아주 조금씩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거야! 사과씨앗은 그렇게 사과나무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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