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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스 Jan 27. 2016

타인의 말에 상처와 고통 받지 않기

보통 타인의 말에 잘 흔들리는 이유는 자기 확신이 부족해서다. 이는 건강한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부족한 정보를 채워 넣거나 더 바람직하게 수정하고 또 더 고급 정보를 얻으려는 학습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점차 경험이 쌓여가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할 힘이 길러지고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조금씩 단단해지면서 점차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의 말에 고통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다. 타인의 말에 고통을 느끼면 감정의 평화가 깨지고, 오래도록 그것에 마음에 매여서 자기 생활을 잃거나 혼란을 격게 된다. 말은 정말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순식간에 우리 마음의 시야를 사로잡아 버리거나,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구덩이에 처박아 버리기도 한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말로 에너지를 빼앗는 경우다. 이것은 정말 묘한 현상인데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로 상대방이 느끼는 좋은 기분을 깨버리거나 평온한 상태를 휘저어 놓는다. 또 말로 상대방에게 충고를 함으로써(아무런 관련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전적으로 자기만족만을 위한 충고) 스스로를 상대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는다. 또한 상대방을 비난하여 자기보다 낮은 위치로 떨어트리거나 부정적이고 좋지 않게 말하거나 좋지 않게 판단한다. 이 때 당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게 된다. 에너지를 빼앗기면 기분이 나빠지고 다운된다. 당한 쪽이 에너지를 빼앗겼다는 것은 상대방이 에너지를 빼앗았음을 뜻한다. 


보통 에너지는 서로 사랑할 때,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고 공감할 때, 순조롭고 원활하게 흐르지만 이런 방식으로 서로의 에너지를 채워주고 상승시키는 사람들은 상당히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보통은 에너지를 빼앗거나 착취하거나 흡착하거나 강탈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각한 경우는 자기보다 현격하게 취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고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에너지를 강탈하고 착취하는 경우도 또한 많다. 부모에 의해 저질러지는 아동학대가 보통 이런 경우다.


이렇게 상대방의 말로 인해 에너지를 잃게 되었을 때 보통은 의식적으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에너지 모델론을 가지고 있고 또 에너지에 민감성을 가진 사람은 쉽게 알아차리지만 보통의 경우는 자신이 왜 불쾌한지 왜 화가 나는지 왜 기분이 나쁜지 원인을 알기조차  어렵다. 이럴 때 많은 경우 화살을 삐뚤게 꽂기도 한다. 즉 "내가 속이 좁나 봐" 하며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는 상대방에게 에너지를 잃은 후 자기 스스로에 의해 또 더 많은 에너지를 잃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짜증을 냄으로써 자기가 잃은 에너지를 그 사람에게서 다시 약탈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아서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그런 상황이 오고 나면 가까운 사람이나 안전한 사람 그리고 자기보다 취약한 사람한테 그런 짜증이나 화풀이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비교적 온순한 성격의 사람들의 경우 음식을 먹음으로써 잃어버린 에너지를 채우려 하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음식을 먹을 때 에너지를 얻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을 먹는것으로  얻는 심리적 정신적 에너지는 아주 작기 때문에 점점 무의식적으로 자꾸 더 달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한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위로인데 이로인해 단 것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기처벌을 하는 경우는 스스로  음식을 먹지 않기도 하고 음식을 먹을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럴 때는 보다 의식적 차원에서 바라보는것이 좋다.  우선 자신이 에너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즉 상대가 자신의 에너지를 강탈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상대도 무지한 상태에서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경계가 취약했기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래서 자신의 경계를 먼저 보다 확실히 한다. 

경계는 물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속에 나에 대한 경계를 세우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방식의 표현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말로 인한 자신의 상태를 고지하는 일( 너의 그 말을 들으니 내 기분이 어떠어떠하다.)그리고 자신의 불쾌를 알리는 일( 기분이 나쁘다. 불쾌하다. 바보가 된 것 같다는 등. 보통의 경우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 모르고 하는 말들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알리거나 고지할 때 그때 비로서  깨우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나에 대한 경계가 생겨 다음부터는 조심해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에 몰두 하거나 좋아하는 친구와 이야기하거나 여러 가지 긍정적인 활동을 통해 잃은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다. 기분이 좋아지면 에너지가 보충되는 것이다.           


만약 위의 방법으로도 좋아지지 않으면 조금 더 깊이 들여가야 한다. 언제나 말하지만 같은 상황을 겪는다고 모두 같은 방법이 적용되고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상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은 도움이 되고 어떤 방법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상대방의 말로 인해 흔들리고 고통이나 불쾌감을 느낀다면 '또한 상대방이 나에 대해 그렇게 보고 느끼고 말할 수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 말이 나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게 아니다. 그 말을 들은 후 그에 대한 내 마음의 반응이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약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내가 어떤 반응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고통도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은 자신이 마음에 반응을 일으킴으로써 고통이 일어나는데 이렇듯 세밀하게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이 나에게 고통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의 말은 사실 내가 반응을 하지 않으면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한다.(이것을 가장 강력하고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따돌림이다.) 그래서 사람의 말로 인해 상처나 고통이 생길 때는 내 마음이나 생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보통 가장 많이 하는 반응은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하기에 상대는 사회 관습상 통념상 그리고 예의상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데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마음에 고통이 일어난다. 내가 상대를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데도 통제하지 못함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 문제의 원인을 없애지 못한다는 생각 즉, 상대를 통제할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에 빠져 있는 경우도 많다. )그 때문에 상대의 말을 듣고 내 마음이 스스로 고통을 일으킨다. 그러나 상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니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없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래! 너는 너의 생각대로 나를 보거나 느끼고 판단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고 말이다. (물론 상대의 말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이 불쾌하고 화날 권리를 부정하거나 억압하라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언제나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극단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상대의 말할 권리도 인정하고 나의 화날 권리도 모두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어느 것도  억압하려 해서는 효과적으로 치유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렇게 상대를 인정하고 나면 거기에 묶여 있던 마음이 풀려난다. 그러면 마음은 다음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다음 작업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에서 마음의 초점이 "어떻게 대응할까"로 옮겨지면 마음은 먼저  자기감정을 분별하고 선택하게 된다. (감정은 내가 사용하는 것이지 내가 아니다.) 먼저 화를 낼 것인가? 낸다면 어느 정도로 낼 것인가? 화를 내지 않으면 어떻게 불쾌를 알릴 것인가?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 달라고 요청할 것인가 하는 것 등이다. 이런 것이 정리가 되고 나면  실행에 옮기고 나서 잊어버리면 된다.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불쾌감이나 고통은 다음번에는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횟수가 줄거나 혹은 자신이 대응할수 있기에 그다지 오래가지 않고 쉽게 잊히거나 사라질 것이다.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면 불안이나 불쾌 고통은 상당히 오래가고 반복해서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기분 나쁜 말을 듣고 상처나 고통 반응을 일으키는 내 마음의 기저에는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지 “ 하는 것 외에도 또 다른 게 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정체감을 타인에게 기대는 경향이 있다. 즉 타인의 말로 자기 정체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이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을 때는 자기 정체감을 부정당하거나 공격당한 것 같이 생각되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자기 이미지가 무너진것 같고,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노력하고 애써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좌절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것 또한 생각과 마음이 일으키는 반용이다.) 이런 마음의 반응들이 고통이나 상처를 일으키고 에너지를 잃게 만든다. 이 또한 자신이 부정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일으키고 있는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또한 과도한 자신의 정체감과 타인과의 연결성을 끊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사람'이라고 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가? 왜 우리는 타인에게 나의 정체감을 의존하고 있고 기대고 있는가? 내 정체감과 타인의 말을 왜 그토록 긴밀하게 연결시켜 놓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하는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상대의 말할 권리를 인정하고 그렇게 말한 상대의 마음의 배경을 이해하고 연민을 갖고 그냥 용서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경우라면 우리는 보통 이렇게 고통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 뒤에는 중요한 "자기 존중감"이 있다. "외부의 어떤 것이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도록 나 스스로 허락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자기 존중감이 큰 사람은 자기 자신을 고통 속에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재빨리 빠져나온다. 얼마 전에 페북에서  공유했던 아빠 앞에서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또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녀는 "그들이 내 남은 인생까지 망칠 순 없어요."라고 했다. 자아 존중감을 본받을만한 훌륭한 여성이다. 그들이 자신을 계속해서 망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말에 고통을 느낄 때 최상의 해결책은  "타인의 말로 내 고통을 삼지 않는 것이다. " 이것이 가장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나에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 그리고 말을 통제함으로써가 아니라(이는 결코 통제가 불가능한 것인데 이를 통제하려는 자들은 독재권력자들이나 싸이코들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결코 이길수 없는 백전백패할수 밖에 없는일이다.) 상대방의 말에 대한 내 반응을 통제함으로써다. 타인의 말로 인한 고통이나 상처는 우리가 상대의 말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거나 부정적으로 판단하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인것이다. 이 부정적인 반응을 멈추면 타인의 말을 내 고통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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