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장의 원리: 건강한 자아의 토대 만들기(1)
자기 성장의 원리-그렇다.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운다. 갓난아기 때부터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때 사용하는 잣대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부모의 반응이 '그렇다'이면 그 행동을 반복하고 부모의 반응이 '아니다'면 그 행동을 멈춘다. 자신의 표현과 행동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라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자주 빈번하게 해도 좋은 것 등을 두뇌에 회로로 그려놓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되고 성장하면서도 또한 이런 방식으로 삶의 더 높은 가치와 더 의미 있는 삶을 찾아 나가게 된다. 또한 이런 방식은 컴퓨터가 작동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컴퓨터 또한 0, 1로서 '있다 없다' 혹은 '그렇다 아니다'라는 기전으로 작동한다. 사람도 결국 '그렇다 그렇다 아니다' 그리고 '있다 ' 없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 아니다' 이것은 일찍이 동학의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 '불연 기연'(한자 지원이 안됨 ㅡ.ㅡ)이라고 말씀하기도 한 것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보통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는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주변의 모든 정보를 흡수하고 입력하는 다운로드 작용을 위주로 한다. 아니 엄격하게 말하면 엄마 배속에서부터다. 엄마 배속에서부터 다운로드하여 프로그래밍하는 모든 정부들은 모두 잠재의식에 저장된다. 이렇게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다운로드하여 하여 들일 때 앞에서 말한 '그렇다 아니다' 조금 성장하면 '좋다 싫다'와 같은 방식을 통해 정보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때 모든 행동 반응과 성격유형, 표현 반응 같은 것들이 잠재된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격 형성은 반드시 그 아이가 자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우리 감각에 초당 4천억 개의 정보들이 들어오며 우리 뇌는 의식적으로 약 2천 개 정도의 정보를 처리한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에 잠재되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폭발적이고, 전체 적이며, 동시다발적이고, 또한 세밀하고 상징적이며, 압축적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의식이 생기면서 이렇게 받아들이는 정보에 대해 의식적 선택과 수정 그리고 반발 작용을 하게 되며 필요에 따라 보다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입력 같은 것들이 더해지게 된다. 이것은 초등학교 이후로 평생 계속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전전두엽의 의식적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동안 다운로드하였던 것들을 활성화하여 어떤 식으로든 집단에 그 정보를 다시 가공하거나 연결하여 드러내고 표현하며 공동 창조에 이바지하도록 요구받게 된다.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반응이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갈 모든 정보들이 폭발적으로 흡수되고 프로그래밍되는 시기에 부모의 반응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부모의 반응은 아이에게 키보드 자판 같은 역할을 한다. 부모의 부정적 반응은 아이의 긍정적 정보를 딜리트(delete) 한다. 또한 일관되지 못한 반응이나 혼란된 반응은 정보를 미처리하거나 보류하게 되어 어떤 부분을 미입력 상태나 잠재적으로 미 발달 상태로 남겨둘 것이다. 부모의 분노와 격정적인 반응은 그때까지 만들었던 회로를 망쳐버리게 될 것이다. 부모의 거짓반응은 진실과 정직 등에 대해 딜리트(delete) 작용을 할 것이고 아이는 올바른 반응에 대한 기준을 찾느라 평생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아이에게는 싸우지 말라'고 말하고 부모는 싸우는 모습을 보이거나 아이에게는 화내지 말라고 말하고 자신은 아이의 요청에 화를 내는 식으로 반응하면 아이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신뢰를 잃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는 부모나 가족 혹은 가까운 사람들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몇 살부터 몇 살까지는 숫자를 가르치고 또 그다음에는 이름 쓰기를 가르치고 몇 살까지는 한글을 떼고 조기교육으로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치고 하는 것 보다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하는 기준을 먼저 분명하고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는 아이에게 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 이것이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아이의 성격과 자질과 잠재력과 그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무엇이 되게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올바른 반응을 보고 올바른 반응을 두뇌회로에 입력하게 되면 결국 자신도 세상에 대해 올바른 반응을 하게 된다. 따로 가르침이 필요 없다. 잘못된 반응을 입력해 놓고 다르게 가르치려고 애를 쓰면서 좌절하고 고통을 받는 경우가 부모나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것을 또 아이탓을 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는 아이를 가르치고 교육한다고 '무엇이 되게'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애초 사람이 무엇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다시 무엇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신 마음속의 불안감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자신의 내적인 불안감에 대한 반응을 아이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이를 망치는 일이다. 어딘가 혹은 무언가에 우리를 끼워 맞춰 석고화 시키려는 것이 '무엇이 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안정감을 느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얼마나 지속되는 것인가? 자신의 깊은 심리적 안정감 하나를 위해 아이의 존재 자체를 희생시키려는 것이다.
삶은 반응하고 흐르고 나누고 받으며 자유롭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삶은 아주 쉬운 것이다. 그런데 삶을 그토록 이나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은 어른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반응을 아이들에게 강요해 왔기 때문이다. 안정을 욕구하는 자체가 내면의 불안감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안정을 욕구하면 아이를 죽인다. 선생이 안정을 욕구하면 또한 아이들을 죽이고 교육을 죽인다. 정치인들이 안정을 욕구하면 결국 패당을 짓고 자기 무리들끼리 서로 뒤를 봐주며 금력과 권력을 움켜쥐고 결국 세상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안정은 젊음보다는 노화와 죽음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게 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반응은 우리의 본능 속에 있다.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삶의 모든 순간순간 올바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은 본래 우리의 본능 속에 내재돼있는 것이다. 그저 본능대로 하는 동물들은 자식 교육에 실패하는 경우가 없다. 여우가 거위처럼 되거나 늑대 새끼가 곰처럼 되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동물들은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어디 가서 키우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는다. 좋은 부모, 좋은 교육자가 되고 싶다면 '나는 매 순간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이 없다. 부모는 아이가 어린 시절에는 무조건적으로 사랑으로 반응해야 한다. 친절하게 설명하고 따뜻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기꺼이 실수와 소란을 허용하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환영의 반응, 그리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의 반응, 신뢰의 반응, 세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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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한편으로 글을 썼으나 글이 길어져서 이후 세 편으로 나눠 공개합니다. 물론 공유와 라이킷 봐서요^^ 저 역시 반응을 먹고 글을 씁니다. ^^
1편: 건강한 자아의 토대 만들기
2편: 건강한 자아로 성장하기
3편:고통을 멈추고 자아 비우기
"따돌림, 네 잘못이 아니야" 출간과 따돌림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스토리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