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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스 Feb 12. 2016

관계는 소통 이전에 반응이다

자기성장의 원리: 건강한 자아로 성장하기(2)   

    인간 관계 또한 소통 이전에 반응이다
 

 소통이란 반응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응에 자신의 전 존재의 무게감을 다 싣는다. 그렇지 않다 해도 반응에 대해 인색하고 경직되어 있다. 마치 정해진 도로로만 가야 하고 주로 직진을 많이 하고 좌우 회전을 할 수 있으나 유턴은 자주 할 수 없는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이 어떤 형식과 규칙에 따라 반응하려고 애쓰는 것 처럼느껴질 때가 많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자유롭고 걸림 없이 반응을 하면 어떨까? 그저 반응일 뿐이다. 꼭 무겁고  진지할 필요가 있을까? 반응은 반응을 낳는다.  누군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 둘러 쌓여서 살아고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매력적이고 활력으로 가득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반응 패턴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는 쉽고 가볍고 명확하고 사랑스럽고 유머와 재치 그리고 우호감으로 사람들의 반응에 반응하는 사람일 것이다.    


반응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언어적 반응과 행동반응 그리고 표정 반응을 다 포함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동물은 특히 행동반응과 표정 반응에 민감하다. 이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도구가 행동과 표정이기 때문이다.


일본 어느 가정의 활발하고 사랑스럽던 반려견이 어느 날부터 걷지를 못하고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다리를 다친 것 같은데 진단이 되지 않았다. 강아지는 활력을 잃고 매일 자기 자리에만 앉아있었고 걷고 움직이려는 재활의지를 가지지 않았다. 동물과 대화하는 여성으로 유명한 하이디가 이 가족을 돕기 위해 초청되어왔다. 하이디는 강아지가 어디서 어디를 다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왜 활력을 잃고 재활을 하려는 의지가 없는지 등을 위해 강아지와 나눈 이야기를 가족에게 전해주었는데 그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강아지는 매일 자기를 보고 웃던 가족들이 자신이 다친 후부터 더 이상 웃지 않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서 재활 의지를 잃고 있었다. 강아지는 혹시 자신이 이 가족에게 부담이 되는 건 아닌지 또 이 가족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강아지가 바라는 것은 가족들이 자신이 건강하게 함께 하던 시절처럼 웃으며 자기를 바라봐주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강아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혹시 자기가 짐이 되지 않은지 또 자신이 더 필요 없게 된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아지는 가족들이 표정을 바꾸어 웃으며 대하자 재활의지를 보였다.  


반려동물과 함께 해보면 동물들은 늘 일관된 반응을 보여줄 때 신뢰관계를 형성한다. 사람이 감정적으로 반응을 하면 동물들은 그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간관계 또한 진솔하고 일관된 반응으로서 중요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신뢰와 함께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몇 가지 반응은 늘 같은 것 같다. 따뜻하고 긍정적이며 진솔한 반응은 인간관계에 신뢰를 만들고 마음을 열게 하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존중, 자유, 편안함, 평화로운 관계를 만든다. 냉담한 반응이나 무반응은 상대의 존재 깊숙이 상처를 내어 관계를 끊고 주변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격정적이거나 거친 반응은 미성숙하게 보이고 관계에 문젯거리를 만든다. 활발하고 섬세하며 따뜻한 반응은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게 해서 주변에 사람을 끌어 모은다. 이는 사실 새로울게 없는 이야기다.



반응하지 않으면 사랑에 빠질 수 없다.
 

사랑 역시 반응이다. 반응하지 않으면 사랑에 빠질 수 없다. 사랑은 따뜻한  반응'이다. 섬세하고 세심한 반응은 사랑하는 이들의 특징이다. 그녀의 스커트 아래 드러난 하얀 발목만 봐도 그의 심장은 두근거린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 머리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다. 처음 손을 잡을 때 온몸에 짜릿한 전기가 관통하는 것만 같다.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면 결코 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매일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도 모두 특별한 반응을 이끌어 낸다. 이런 특별한 사랑은 사랑을 시작하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된다. 그가 미소를 짓는 것은 ' 언제나 당신을 환영하고 사랑한다'는 반응이다. 또 그가 어깨의 먼지를 털어주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반응이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 내 어깨를 감싸 도로가로 이끄는 것은 '당신을 언제나 보호하겠다'는 내 존재 자체에 대한 반응이다. 이 반응이 사랑의 묘약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반응들이다.


사랑은 계속해서 긍정적이고 따듯한 반응을 해바라기 한다. 사랑은 상대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상대의 존재에 대해 더욱 풍부하고 더욱 따뜻한 반응을 주고 받음으로써 더욱 커지고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어느덧 상대의 이런 반응에 무뎌지고 상대의 반응이 당연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반응, 그 반응에 대한 반응을 징검다리 건너뛰듯 하다 보면 서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바라만 봐도 사랑을 전해받고 미풍처럼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해도 온 존재로 반응하던 때는 잊힌다.


그리고 반응이 없는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간다. 두 사람은 점점 격하고 거친 말을 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반응이 예전처럼 풍부하고 섬세하지 않으므로 자꾸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그래도 반응이 시원치 않다. 급기야 큰 소리를 지르고 악다구니를 하고 심지어는 상대의 뺨까지 때린다. 이렇게 돼야 반응이 조금 온다. 그제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난다. 그러나 이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우리의 사랑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제는 헤어져야 한단 말인가? 이혼이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나보다 더 마음이 가는 그 누군가가 생겼단 말인가?


그러나 사랑이 달아난 게 아니다. 둘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다.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다만  '가까이 있으니까  당연히 알겠지'라고 서로에 대한 반응을 자동모드로 해놓고 잊어버린  것뿐이다. 그렇다. 반응을 잊으면 사랑도 잊는다. 그러나 반응을 되찾으면 사랑도 다시 살아난다. 나는 커플이나 가족치유에서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다시 사랑을 살려낸다.     



반응 결핍이 질병을 만든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충분한 반응을 받지 않으면 성장하면서  '반응 결핍'에 시달리게 된다. 심한 경우는 관심증 환자가 된다. 그러나 관심증 환자가 되지 않더라도 관심을 끌기 위해 돌출된 행동이나 일탈행동을 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기 위해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누구나 더욱 풍부하고 더욱 긍정적인 반응을 필요로 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그래 왔듯이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반응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타인의 반응은 내 정체성을 찾아주고 타인의 반응은 우리가 갈 길을 찾거나 확정하게 한다. 타인의 반응에 의존하면 할수록 의존도는 점점 더 커져서 우리는 타인의 반응에서 내 삶의 동기를 찾게 되고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된다.


현대에는 타인의 반응에 따라 성공과 실패 부요와 가난이 결정된다. 타인의 어떤 반응은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기도 하지만 어떤 반응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우리를 가두어 버리기도 한다.


현대에 유행하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반응을 갈구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의 좋아요나 댓글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보면 그렇다. 많은 반응을 얻는 사람은 존재감과 자존감이 커지고 이것이 종내에는 인기와 부요로 이어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삶이란 적극적으로 반응 구하기.


삶이란 어떤 면에서 보면 '적극적으로 반응을 구하는 일'이다. 난 이것보다 더 핵심적이고 더 심플한 삶에 대한 정의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반응이 없거나 적음에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기에 자기 정체감 또한 약해지고 삶의 동기나 의지 그리고 활동반 경조 차 약해지게 된다. 따돌림의 예들을 보면 우리 자신에 대해 타인의 반응이 없을 때 우리는 얼마나 고통에 빠지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한 회의감과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고 종내에는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삶을 놓아버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적절하고 올바른 긍정적 반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단단하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그들은 살아가면서 타인들이 나에 대해 반응이 적어지거나 없을 때에도 쉽게 주저앉지 않는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활기차고, 유머스럽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포용력 그리고 마음 나누기를 통해 그들은 더욱 큰 반응을 끌어낼 줄 안다. 그 반응 위에 비상의 날개를 펴고 삶을 도약하는 사람들은 뉴스에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삶이란 스스로 적극적으로 반응 구하기다. 그 반응을 통해 자기 확신을 더욱 키워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해 나가게 된다.


타인의 반응을 부담스러워하거나 그다지 원치 않는다면 괜찮다. 그러나 원하는데 반응이 적다면 가능한 적극적으로 반응을 구해야 한다. 말해달라 요구하고 표현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반응과 반응은 등나무처럼 서로 꼬이면서 친밀해지고 에너지를 형성하며 유대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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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한편으로 글을 썼으나 글이 길어져서  이후  세 편으로 나눴습니다. 전편 '교육은 가르침 이전에 반응이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반응이다.  

2편: 건강한 자아로 성장하기/관계는 소통 이전에 반응이다.  

3편:고통을 멈추고 자아 비우기 /고통은 실재가 아니라 반응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 "따돌림, 네 잘못이 아니야" 출간과 따돌림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스토리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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