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언덕에서 고양이를 주웠다
그날은 어버이 날이었고, 언니에게 얹혀 잠깐 일본 마실을 다녀온 나는 막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고양이 간식과 ㅈ의 선물을 싣고 한층 무거워진 캐리어를 돌돌 끌고 가는데, ㅈ이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박스 안에서 온 몸에 힘을 주고 달라붙어있는, 눈도 뜨지 못한 아기 고양이의 사진.
ㅈ은 고양이 언덕을 좋아한다. 우리 회사는 은근히 서울 중심에 가까우면서도 낡은 건물이 오밀조밀 들어찬 동네에 있다. 갑갑한 회사 건물들 사이에 끼어있는 낮은 동네라 빌딩 숲에서는 도통 비벼볼 곳을 찾지 못한 고양이들이 모두 이리로 모여들었다. 다행히 인심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회사 근처를 걷다 보면 매일 신선한 사료와 물을 담아둔 그릇을 여러개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ㅈ이 특히 좋아하는 곳은 회사 뒤로 난 조그마한 오르막이다. ㅈ은 이 길을 고양이 언덕이라 이름 붙이고 일을 하다 나른해질 때면 언덕 산책을 가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오후 5시쯤, 즐겨 산책을 가던 시간에 ㅈ은 고양이 언덕을 올랐고 언덕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처음에 ㅈ은 작은 쥐가 죽은 줄 알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털도 마르지 않고 탯줄도 그대로인, 작은 아기 고양이가 빽빽 울고 있었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어미로 추정되는 고양이는 없었다. 아기 고양이는 길 한복판에 누워 있었고, 해는 저물고 있었다. 잠시 지켜보던 ㅈ은 체온이 더 떨어지면 아기 고양이가 죽을까 봐 일단 주워 박스에 넣고 급하게 휴지로 덮었다. 고양이는 너무 작고, 가벼웠다. 그리고 너무 찼다. ㅈ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가려던 나에게 사진을 보냈다.
내가 공항에서 집으로 오면서 SNS에서 젖먹이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동안 ㅈ은 내가 보내준 정보를 참고해 당장 필요한 용품들을 샀다. 선미를 구조할 때 도와줬던 회사 동료들이 이번에도 급하게 지갑 속 현금을 털어주었다고 한다.
아기 고양이를 본 의사가 이것저것 알려주며 ㅈ에게 말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 죽을 수도 있으니, 크게 마음 쓰지는 마세요."
의사의 말이 너무 맞는 말이라, 마음이 조금 아렸다.
ㅈ이 박스에 넣어 소중히 집으로 데려온 아기 고양이는 손바닥 하나에 올려도 남을 만큼 작아 나는 꼭 갓 태어난 조카를 안았을 때처럼 손을 어디에 둘 지 몰라 머뭇거렸다. 여기저기서 모은 정보에 따라 어설프게 분유를 타 먹이고 배변 유도를 했다.
그리고 이름은 세이(生, 삶이라는 뜻의 일본어)라고 지었다.
죽을 수 있다고 해도, 죽지 않을 가능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