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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글이드 Jul 14. 2017

그럴듯한 포기

불안정한 빈 방

텍사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그 날은 하루 종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준 고마운 친구들이 떠나고, 짐이 빠진 빈 방에는 캐리어 두 개만이 놓여있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모습 같았다. 첫날밤처럼 빈 방은 어색한 공기로 채워졌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집을 떠나온 날이 떠올랐다. 시작과 설렘, 헤어짐과 아쉬움이 공존하던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25년간 살던 곳을 떠나오던 때와 4개월간 살던 곳을 떠나는 느낌이 꽤나 비슷했다. 아무래도 물리적인 시간에 비해 고생의 정도와 배움의 깊이가 만들어낸 심리적인 시간이 길었던 이유 같았다. 재생산된 감정선에 불확실성으로 인한 걱정이 더해졌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서 준비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역적인 위치도 컸다. 알고 보니 가야 할 곳은 시카고 도심에서 떨어진 교외 지역이었다.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떠나기 직전까지 숙소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나는 불안했다. 빈 방과 어울리는 감정이었다. 방에 놓인 것은 오로지 캐리어 두 개와 나 자신이었고, 이 사실은 당시에 내가 갖고 있는 확실한 무엇이었다. 혼자 떠나야 한다는 유일한 확실성에 조금은 용기가 났다. 나는 스스로에게 의지하며 홀로 일리노이로 이동했다.



적응의 동물

도착 후 3일 정도는 우울감을 느꼈다. 버스와 도보로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오스틴에서의 생활이 꿈만 같았다. 이곳에서는 차가 없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대중교통도 없을뿐더러 우버도 잘 잡히지 않았다. 어딘가로 나가지 못하니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작은 섬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첫날에는 마트를 가지 못해 남은 새콤달콤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후에도 몇 번 비슷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머지않아 배부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평일에는 직원분들이 양손 가득 음식을 챙겨주셔서 부족함이 없었고, 주말에는 왕복 1시간 거리의 마트를 걸어 장을 볼 수 있었다. 배부른 생활이 감사했다. 지난 생활에 이어 의식주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꼈다. 적응의 동물답게 낯선 곳의 생활도 점차 익숙해져 갔다. 불편함은 여전했지만 그 안에서 감사함을 찾았다. 사람은 보지 못해도 자연에서 뛰어노는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문을 열면 오리 가족들이 반갑게 아침인사를 해주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다 보면 동화책에 들어온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호숫가에 비친 아름다운 경치를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주관적인 경험은 평화로움이라는 형용사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럴듯한 포기

두 달간의 인턴생활을 마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단순히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아무나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했다. 이는 또 한 번의 성장의 기회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배운 것도 많았다. 인턴이지만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다양한 업무에 참여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평소 동경하던 디자인 업무도 해볼 수 있었다. 업계 특성상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컸다. 좋은 분들을 만나 많은 사랑도 받았다. 끝없는 나의 인복과 일복에 감사했다.


사실 귀국행의 고려는 주관적인 감정보다 객관적인 상황에서 기반했다. 여러 요인들에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결정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스스로에게 혼란을 주는 요소들은 덮어두고 미국에 온 목적에 집중했다. 언니들의 조언이 큰 힘을 발휘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생활은 나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대체 방안이 없었다. 목표 재설정도 불가능했다. 답은 간단했다. 남을 이유도, 스스로를 설득시킬 합당한 이유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미국행을 결정하게 된 목적을 눈 감으면, 남는 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냥 목적을 잊고 내면의 소리를 끈 채, 남은 시간을 보내면 됐다. 포기하지 않아도 크게 나쁠 건 없었다. 타인의 시선에선 포기가 분명한 손해였다. 당장 눈앞에 손해 보는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만들지 않은 상황들이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함으로써 목적 있는 내 인생을 지켰다. 이는 내 스스로 주체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다. 이 정도면 그럴듯한 포기였다.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했고, 귀국을 위한 모든 과정이 잘 마무리되었다. 직원들과 이별을 하는 것이 슬펐고, 많은 걸 제공해주시고 아껴주신 사장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포기라는 사실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귀국을 앞둔 지금의 감정은 매우 행복하다. 극도로 건강한 마음이다. 지난 6개월간 미국에서의 삶은 참으로 버라이어티 했다. 그럴듯한 실패와 포기까지. 유독 내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참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적어도 한 3년은 더 있었던 것 같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만큼 배움과 성장의 시기였다는 것에는 확신이 든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가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잘 이겨낼 것 같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도 목적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 발로 돌아가는 한국행이지만, 나는 여전히 미국에 온 것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25년 중에 가장 뜨거운 6개월을 보냈다.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차마 글에 담아낼 수 없음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훗날 지난 6개월 간의 삶을 자세하게 펴낼 날을 꿈꾼다.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노트를 펼치고, 첫 페이지에 일기를 썼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에 그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썼다. 딱 떨어지니 왠지 모르게 예감이 좋다. 다 쓴 일기장은 접어두고, 이제 새로운 노트를 꺼낼 예정이다. 한국에 도착하면 첫 페이지를 쓰게될 것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목표를 설정해야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번외 1: 아티스트 하우스

그동안 우스운 일도 많았다. 어렵게 구한 에어비엔비에서 3주 정도 생활했다.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왔다. 호스트 아주머니는 환생을 믿으셨고, 우리를 전생에 모녀 사이라고 생각하셨다. 사실 무서웠다. 아주머니는 드림 하우스를 발견해서 행복의 눈물을 쏟으셨다. 여전히 무서웠다. 아주머니는 나를 위해 야드에 텐트를 쳐주셨다. (쫓겨나는 줄 알고)극도로 무서웠다. 그러나 우리는 곧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 틈만 나면 함께 그림을 그렸고, 비스코티를 만들었다. 넷플릭스를 보며 서로의 경험에 빗대 감상평을 공유했다. 각자의 고민을 상담해주었다. 주로 나는 영어에 관한 것이었고, 아주머니는 비즈니스에 관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함께 진행하기로 했던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이 아쉽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그리움을 위로해주었다. 이후에 중국인 게스트가 추가로 들어왔다. 셋은 쿵짝이 잘 맞았다. 둘은 아티스트였고 나는 아티스트를 동경했다. 두 명의 아티스들에게 "You're a wonderful artist"라는 마지막 인사를 받았다. 그들과 통한 것 같아 감히 감동적이었다. 그 길로 우리는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세계 평화를 꿈꾸는 우리는 각국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했다. 죽기 전에 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번외 2: 닮고 싶은 사람

오스틴에 이어 이곳에서도 감사한 인연을 만났다. 혼자가 되어 왔지만 떠나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평생 신세를 갚아도 부족할 것 같았다. 이들은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저 자신들이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훗날 나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그 사람에게 돌려주면 된다고 했다. 그 마음 밭을 닮고 싶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말에 책임을 느껴야겠다고 다짐했다. 꼭 물질이 아니여도 내가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번외 3: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당일까지 버라이어티 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정도면 나와 미국은 참 맞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오기가 생길 정도이다. 고생의 시간이 참 길었던 지난날이다. 행복한 요소가 적었던 것은 아쉽지만, 지난날의 성장과 배움에 감사하다. 귀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주말이 지나면 지난 기억들도 다 꿈 같을 것 같다. 역시 이 모든 삶은 꿈이 맞는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주제에 대해서도 꼭 한 번 다뤄보고 싶다. 애니웨이! 얼른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을 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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