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마감 중에 쓰는 일기
마감을 하다가 브런치앱 알람이 울려서 이곳에 들어와 보았다. 개설할 때의 포부와 달리 몇 개월째 업데이트하지 않은 나의 브런치 스토리 화면을 보니 조금 씁쓸해졌다. 연초에 계획했던 수많은 목표들이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꾸준한 브런치 업데이트'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어긋나고 비켜갈 땐 그저 때가 아니려니, 다른 기회가 있으려니, 또 다른 인연이 있겠지라고 으쌰으쌰 하며 스스로를 토닥일 수 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아니, 좀 더 성실했다면 할 수 있었던 것들을 결국 해내지 못했을 땐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브런치도 그중 하나다. 이럴 거면 왜 만들었을까. 애초에 일기나 잡담을 기록하고 싶었지만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를 떠나 휴식으로서의 글쓰기를 한다는 건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대본을 쓰고 있지 않아도 대본 생각뿐인데, 글쓰기를 중단하고 휴식 시간에 해방감을 느끼는 또 다른 글쓰기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전업 드라마작가이면서도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땐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조차 '일'로 다가온다. 드라마를 드라마자체로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분석하게 되어버리니 말이다. 어쨌든 이 모든 건 핑계고 나는 결국 올해도 브런치를 쓸모 있게 쓰지 못했다. 가끔 브런치 앱에서 작가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알람을 볼 때마다 공허해지는 마음뿐.
지금도 대본을 마감하다가 문득 브런치앱에 들어왔고 이런 소회를 해본다.
365일 마감 중이지만 드라마라는 게 결국 제작이 되어 영상으로 송출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이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주위에서 보기엔 언제나 '미지의 어떤 것'이다. 네 드라마는 언제 나와? 어디에 나와? 지금 쓰고 있는 게 뭐야? 궁금한 얼굴로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그냥 웃으며 '나도 몰라요'라고 대답할 뿐. 왜 항상 쓰고 있으면서 나오지 않느냐 순수한 얼굴로 물어오는 친구들에게 내가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나도 모른다. 모르지만 계속 쓰고 있다. 아마 많은 작가님들이 그러할 것이다.
올해는 참 빠르게 흘러갔다. 어쩌면 2023년은 '기다림'으로 점철된 한 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끝없는 터널을 뚜벅뚜벅 걷는 기분이다. 이제 희미하게 터널의 끝이 보이려고 한다. 힘을 내자. 조금만 더 걷자. 힘차게 팔을 휘저으면서.
다시 작업창으로 가서 쓰던 걸 마무리하고 송고해야지. 그리고 이번 마감도 무사히 끝냈다고 스스로에게 상을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