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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단 Sep 03. 2023

내 서랍 깊은 곳에서

요시토모 나라 Yoshitomo Nara


가면의 뒤편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을까?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이 생소한 병명은 늘 밝게 웃는 표정과는 다르게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의 가슴 아픈 증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감정을 느껴도, 관계를 위해 일을 위해, 이를 억누르고 미소를 지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부터 생겨난 신종 증후군인 것. 즐길 거리는 넘쳐나지만 반면에 서로의 맘을 읽어내는 데엔 서투르고 인색한 사람들. 친절과 무례의 경계에서 상대의 표정을 읽어내는 데 지쳐버린 관계들. 위로와 용서의 진정성까지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불신의 세상. 미움받는 데 조차 용기가 필요한 이 시대의 우리들은 어떤 얼굴을 가면 속에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일본의 화가, 요시토모 나라 Yoshitomo Nara의 작품들은 이러한 가면의 뒤편에 집중한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과 어린아이들은 귀엽고 친숙한 외형과는 달리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러한 양면성이 오히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오게 된다. 마치 숨겨진 우리들의 진짜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도 한 번쯤은 그의 작품을 접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05년 서울에서 열렸던 그의 첫 내한 전 ‘내 서랍 깊은 곳에서’엔 무려 8만 명이 넘는 관객이 방문하여 화제가 되었고,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는 유명한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 Yoshimoto banana의 책 <하드보일드, 하드 럭(2002, 민음사)>의 표지 삽화로도 그의 그림이 쓰인 적이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요시토모의 인기는 대중은 물론 세계 여러 화랑의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의 작품은 순수 미술의 형식 속에 대중문화의 정서가 깊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모두 훔치는 데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회화뿐만 아닌 그림책, 조각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악동들의 초상화


수세기 동안 회화 속에서의 아이들은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장밋빛 뺨을 가진 나약하고 가녀린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맑고 티 없는 순수함의 상징이자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은 투명함의 결정체여야만 했던 것. 하지만 요시토모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들은 화를 내고, 무언가를 부수고, 담배를 든 채 불만 섞인 표정으로 관객을 노려본다. 큰 눈에 동그란 뺨을 가진 귀여운 모습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의외로 충격적이다. 아이에 대한 보편적인 인상과는 달리 거칠고 반항적인 제스처로 똘똘 뭉친 사고뭉치 악동들의 천국인 셈.





작가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에 지친 억압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상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작업의 과정이다. 이는 오직 나만을 위한 생각,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한 생각으로 귀결된다. 

‘나는 창작자이자, 관객의 일부인 동시에 내 그림을 통해 나 자신을 본다'. 그림과 작업에 대한 자신의 방대한 생각을 이 한 문장으로 축약한다.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기 전 작품 앞에 존재하는 유일한 관객을 작가 자신으로 먼저 설정해 둠으로써, 창작자의 넘치는 창작욕과 작품을 향한 객관적인 시선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자신과의 진정한 대화만이 개인의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확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여긴다. 다소 혹독한 방식인 것 같지만.



요시토모 나라 (출처: auctiondaily.com)



그는 일본 아오모리현 출신으로 중심가와는 다소 떨어진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때문에 주변에서 접했던 예술은 지역색이 강하고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들 뿐이었고, 최신 경향에 맞춰 서양권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있었다. 대신 그는 그림책을 즐겨 읽었는데, 이미지와 어우러진 간단한 단어들을 힌트로 삼아 이야기를 읽어내고 상상력을 펼쳐나가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고 한다. 이런 경험들은 훗날 그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삽화 산문집인 <작은 별 통신 (The Little Star Dweller, 2005)>을 출간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처음으로 접한 서양의 문화는 수입 음반이었다. 다채로운 이미지와 신선함으로 가득한 앨범 아트들은 어린 요시모토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였으며 또한 자극제이기도 했다. 그 이미지들을 통해 아직 뜯지 않은 앨범의 음악과 분위기를 유추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가사들을 따라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나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는 것이 시골 소년에겐 소중한 취미이자 일상이었다. 음악에 대한 작가의 사랑과 그로부터 받은 영감은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타를 들고, 마이크를 쥔 아이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말이다.





펑크와 로큰롤. 저항과 발산의 정신으로 가득한 이 두 장르는 요시모토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와 매우 닮아있다. 그는 아이들의 얼굴을 통해 잃고 싶지 않은 자신의 순수성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이 순수성을 해치려 하는 외부의 시스템에 대항한다. 핵무기와 파시즘. 그는 종종 작품을 통해 정치적인 입장을 명백히 드러냈으며, 평화와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반기를 든다. 아이의 상상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초월적인 공포와 위험의 대상에 대한 불안, 또한 이에 어떻게든 맞서 보겠다는 내면의 투지를 표현한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분노와 불만의 표정들은 그저 순수한 공격성이 아닌, 비틀린 세계에 대한 필사적인 방어기제나 다름없는 셈이다.






균형 잡힌 고독


요시모토의 창작욕은 고립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부족함이 나를 풍요롭게 했다’라고 말하며 외로움과 고독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과거를 언급한다. 외딴 시골마을에서의 밋밋한 삶과 동료들로부터 느꼈던 소외감, 또한 독일 유학 시절 이방인으로 지내며 생긴 부정적인 감정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를 창작에 활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런 ‘혼자’됨이 작가로서의 자신을 탄생시켰다고 여겼던 것. 연령과 배경을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할 공통된 향수와 불안의 감정들을 관객과 공유하며 소통하는 것, 또한 그 속에서 모두의 자신을 발견하게끔 하는 것이 창작의 목적이자 원동력이었으며 나아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그는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균형 잡힌 고독’을 제안한다. 현시대의 예술가들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 빠져있으며, 또한 대중들 역시 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예술에 대한 고질적 문제를 상기시킨다. 허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소음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길을 잃고 헤매는 작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시토모는 이런 작가들에게 외부 세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먼저 끈질기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것을, 또한 이것이 작가로서의 가장 첫 번째 임무임을 단단히 강조한다.   




(모든 이미지 출처: yoshitomonara.org)





불안과 공포, 또는 분노.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인 부정의 감정들을 가장 순수한 대상과 결합시킴으로써, 이로부터 초연해 지길 바랐던 요시토모 나라. 그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반드시 마음속에 무언가를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이미지의 힘을 느끼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 속에 이미 있으며,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시토모 나라)




필자: 주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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