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살아 있겠지? 나는 올해도 잘 버틸 수 있겠지? 올해 크리스마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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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어느 날, 명절 연휴가 시작되고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명절이라고 특별히 계획된 건 없어도 명절이라고 하면 왜인지 모르게 늘 마음속이 분주해진다. 어느 마트에 가도 명절 준비로 바쁜 사람들과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는 명절 선물들, 그리고 명절 음식을 위한 식재료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난해의 막이 내리고 새로운 해가 된 지도 벌써 두 달을 채워가는 중이었다.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도 조만간 막을 내릴 예정이었고, 고작 3개월의 시간이었지만 아팠던 일, 속상했던 일, 앞으로가 막막했던 고민들을 떠올려 보면 참 많은 일들 때문인지 체감상으로는 3개월 그 이상의 시간들로 느껴졌다. 일을 그만두더라도 영어 공부는 계속할 생각이었다. 일하는 곳에는 2월까지만 일하겠다고 얘기가 된 상황이었고, 나에겐 남은 2월 동안 그 일을 대신할 다른 할 일을 찾는 것이 숙제였다. 그리고 그 숙제는 생각보다 빠르게 방향이 정해지고 있었다.
"내가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응. 그게 뭔데?"
"나는 공부가 더 하고 싶은 것 같아."
직장을 다니면서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었다. 기회가 되면 내 업무에 관련된 자격증이면 시험을 접수해 기어코 취득했었다.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무언가를 암기해 새롭게 알아가는 일이 나에게는 곧 성취감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면 그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마음이 가득히 풍요로워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의 관련 자격증이 없을 때까지 그렇게 8년 간의 실무 기간 동안 틈틈이 공부했던 나였다. 언젠가 한 번, 그런 날이 있었다. 주기적으로 원서 접수를 해 왔던 게 습관이 됐는지, 더 이상의 접수할 만한 시험이 없다고 느꼈던 때 나는 당황스러운 공허함을 느꼈다. 집에 있었던 영단어 책을 이용해 하루에 10개, 20개씩 영단어 외우기도 해 보고, 중고등학생 때 배우다 말았던 중국어 공부를 해 볼까 하며 도서관과 서점을 전전했더랬다. 그러나 여태 자격증을 공부할 때처럼 집중하기엔 어려운 분야라고 느껴졌다. 언어란 계속해서 달고 살아야 하는 공부였고, 자격증 공부는 목표지향적 성향이 다분한 점에서 달랐다. 그렇게 관련 자격증,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한 부재와 함께 실무 기간이 쌓여갈수록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갈증이 늘 내 일상에 동반되고는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데, 그건 일하면서 하기가 쉽지 않은 공부였더라고."
"뭔데, 그게?"
이곳에 주저리주저리 적어 남기기엔 너무 긴 설명이 될 것 같아 생략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여태 실무를 경험하고, 실무에서 할 수 있는 공부를 해 왔다면, 이제는 그 이상의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학부 졸업을 하면서도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두고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실무 경험이 더 중요할 것 같다는 판단으로 취업을 선택했던 나였다. 그때 한 교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 주셨었다. 내가 진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사람이면, 실무를 하다 갈증을 느끼는 때가 올 거라고. 그때 가서 대학원에 진학해도 늦지 않을 거라던 말씀이었다. 이 최근에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불현듯 그 시기의 교수님과 했던 대화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다만 나는 남편이 느낄 부담이 걱정스러웠다. 갑자기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내 이야기가 남편 입장에서는 부담이 하나도 안 될 리가 없었다.
"달이가 하고 싶은 게 생겨서 다행이야."
그럼에도 남편은 또 나를 격려하는 말로, 나를 보듬어 주었다.
"걱정 안 돼?"
"걱정은 되지."
"그런데 어떻게 걱정하는 티도 안 내?"
"달이가 잘할 것 같아서 말리고 싶지가 않아. 하고 싶으면 해야 되는 게 맞는 것 같아. 돈이나 뭐 다른 건 어떻게든 해 봐야겠지."
"진짜 멋있다, 오빠."
"근데 이건 진짜 걱정돼."
"뭐?"
"달이가 좀 더 편안해지고, 가더라도 지금보다 안정을 찾은 다음에 갔으면 좋겠어."
남편의 말을 처음부터 다 동의할 순 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대학원이 그냥 무슨 캠프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봐야 할 프로젝트인 것을 감안하면 온전히 동의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난 뒤부터는 하루 종일 온 생각이 모두 그쪽으로 흘렀다. 대학원에 가려면 얼마가 필요하지? 현실적인 고민부터 어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게 좋을지, 정확히 내가 하려는 공부가 대학원에서 해 볼 만한 연구 거리인지. 휴대폰 속 AI와 소통하고, 주변에 있는 선배들, 학부 때 교수님들께 오랜만에 연락을 하면서 자문을 구하느라 신이 났다. 나에겐 정말 오랜만에 찾은 생기였다. 나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기뻐.
나는 이런 순간에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냥 살아 있음이 아니라 아주 잘 살아 있음을. 에너지가 없던 생각과 행동에 에너지가 생긴 것처럼 나는 그 사이 다시 좀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미래를 그리고 싶지 않았던 내가 있었는데, 당장 오늘이 힘들어 내일을 생각하기 싫었던 내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 이렇다고 해서 내가 다 나았다는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잠깐 나아진 걸로 정말 다 나아진 것으로 착각했던 때, 내가 방심한 틈을 타 나의 우울증이 더 깊게 자리 잡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저 내가 조금 나아지는 중이구나 정도로 해석하고 싶었다. 남편의 말대로 좀 더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건 최근에 일어났던 공황 발작이라든지, 극심한 우울감에 자해를 했던 순간이 있었기에. 언제 또 갑자기 우울해질지는 나도 모를 일이었기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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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2주 뒤에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 약속 잡기도 어려웠던 나였다. 몇 개월 뒤의 여행 계획을 하자는 친구들 틈에서 도망친 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것과 그 이상의 미래도 그려 보게 된다. 어느새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대학원 진학이란 주제는 내가 올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내년에 입학하려면 올해가 좀 바빠지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내 일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 줄 것만 같았다. 아니, 벌써 내겐 그런 에너지가 생겨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건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 같기도 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 보는 경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해 본 경험들이 진짜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또는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 주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때로는 무모한 선택들이 나에게 도움을 줄 때가 있다는 것도 느꼈다. 나의 우울은 늘 일상에 존재하겠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둘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울은 우울이고, 나의 삶은 계속될 거라고 믿고 살아가 보고 싶다. 언젠가 다시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즈음이 온다면 이 글이 나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상태가 아주 나빴었지만, 좋아지기도 했었어. 아주 비관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었지만, 버티다 보니 긍정적인 나도 그때 그곳에 존재했었어. 나쁜 것만 기억하지 마. 희망을 가졌던 때가 있었어. 좋은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어, 달아.
"올해 크리스마스엔 대학원 합격해 놓고 마음 편하게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좋겠다."
"벌써 크리스마스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직 2월인데?"
"시간 금방이야. 나 올해 포트폴리오 준비하고, 이것저것 공부하고 알아보려면 진짜 금세 크리스마스일걸?"
"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은데?"
"캐나다!"
올해 크리스마스엔 캐나다에 가고 싶다고 하던 네가 있었어, 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