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내일 외국으로 떠나요.”
한국 드라마 속에 내가 유독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이혼, 실직, 사업 실패 같은 큰 시련을 겪은 여주인공이 어느 날 조용히 말한다.
“저, 내일 외국으로 떠나요.”
그러면 그동안 미움과 오해로 얼룩졌던 사람들이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그녀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보내준다.
“거기 가서 잘 살아.”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정리되고, 그렇게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늘 놀라고, 또 부러웠다.
떠날 수 있는 용기, 떠날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는 사실이 참 부러웠다.
2023년 겨울, 나도 떠나는 사람이 되었다.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한국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마치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헤어지는 순간마다 감정이 북받쳤고, 어떤 장면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결혼 후 육아와 일, 그리고 영어 공부방 운영으로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고,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떠난다는 결정은 두려움보다는 해방감에 가까웠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영국 도착 후 예상치 못한 비자 거절로 우리 가족은 강제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여정은 유랑이 되었다.
터키, 태국, 프랑스, 포르투갈, 그리고 다시 한국.
서로를 만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 짐을 꾸려 또 다른 나라로 향했다.
슬픈 여행이었지만, 그 안에는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기까지,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잊고 있던 삶의 의미를 다시 배워가는 1년 6개월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