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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슈즈를 벗어던진 맨발의 댄서 이사도라 던컨

기능적 움직임이 아닌 자유로운 춤 서사의 서막

'문화가 있는 날'에 기고된 글 쓰는 발레리노의 글

https://m.blog.naver.com/pccekorea/221708865950

현대무용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이사도라 던컨은 1878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은행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다.



파산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가난으로 인해 제도권의 무용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스스로 무용을 독학하면서 발레의 보수적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경험을 토대로 감정이 빚어내는 자유로운 춤을 추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의 이혼 이후 더욱 어려워진 환경에 처한 이사도라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엄마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시카고에 도착한다.



자신만의 표현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자유를 위한 엄격한 책임감

가진 돈 하나 없이 시카고에 도착한 이사도라는 극장들을 찾아가 춤을 출 수 있는 일자리를 구했지만 이 시절 문화적 변방인 미국에서는 전통발레가 아닌 이사도라의 춤을 배척하였는데 극작가이자 연출가 오거스틴 달리(Augustin Daly)의 시카고 방문 일정을 알게 된 이사도라는 그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어필하였고 결국 그 열정에 달리는 이사도라를 스카우트하여 뉴욕에 위치한 자신의 극단에 정식으로 입단시킨다.



극단에서 맡은 이사도라의 첫 캐스팅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와 함께 등장하는 요정 역이었고 이사도라는 이 배역을 시작으로 정통 발레를 제대로 습득하며 매우 엄격히 매진한다.



이사도라는 달리의 극단 활동 이후에 발레의 정형화된 움직임들과 표현 형식에 대해 ‘Ugly', 'Against Nature'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비판하기도 하였지만 극단에 몸담고 있는 동안은 정통 발레를 완벽히 체화하기 위해 엄격하게 훈련하였고 완벽히 수행하였다. 이러한 이사도라의 모습은 결코 자유란 무절재의 연속이 아닌 스스로의 책임감 이후에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도 몰라보던 춤의 원석,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 보석으로 탄생하다

달리의 극단 생활을 마친 뒤 생활고에 시달리며 뉴욕에서의 활동을 이어가던 중 이사도라가 묶고 있던 호텔에 불이 나게 되고 그나마 남은 돈마저 모두 잃은 이사도라는 그 상황에서도 이 화재를 운명을 바꿀 신호라고 믿으며 유럽으로 향한다.



1900년에 파리에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을 포함하여 많은 예술가들과 만나 서로 엄청난 영감을 나누게 된다. 파리를 시작으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는 소수의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선보이다가 공연 기획자인 알렉산더 그로스의 극장 공연 요청을 통해 오페라 극장에서 정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춤을 선보이게 되었고 이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된다.



이사도라는 자연과 고대 그리스 예술에서 영감을 받으며 춤 동작의 표면적 이미지만이 아닌 마음을 끌어내는 자유로운 내적 표현을 추구하였고 기존에 무용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음악 작품들을 최초로 무용에 도입하면서 악보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그대로 춤으로 표현하였다.



이사도라의 춤은 발레의 불모지이면서 반대로 생활체육이 강세를 보였던 독일에서 특히 커다란 인기를 끌게 되는데 베를린의 상징인 크롤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연주에 맞추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앙코르 곡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했고 그런 이사도라를 수많은 청년들이 무대에서 부축하는 일까지 일어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무용학교를 세워 제자들을 길러내기 시작하였고 이는 지금 전 세계의 현대무용을 이끄는 독일 현대무용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데 필자는 이사도라의 이 무용학교의 설립과 학생들과의 만남이 단순한 교육자와 학생의 이해관계를 넘어 후에 모든 제자들을 입양하고 사랑을 전하는 모습을 통해 후대에 그녀가 현대무용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된 또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한다.


가난은 자립심을 길러준 축복,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해주는 메시지

이사도라의 무대 위 빛나는 모습과 반대로 그녀의 삶에는 항상 ‘가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부를 축적할 마음이 없던 이사도라의 자유로운 생활이 가난과 결부되는 것도 있으려니와 또 하나의 큰 영향은 바로 무용학교 설립과 40명이 넘는 제자들을 입양하고 거듭되는 제의에도 끝까지 유료 공연을 무대에 올리지 않았던 박애정신의 실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사도라를 흙수저로 태어나 평생 가난한 삶을 살았던 여인이 아닌 틀에 갇힌 무용세계에서 발레 슈즈를 벗어던지고 전 세계에 현대무용이라는 찬란한 모습을 선사한 독보적이며 창조적인 예술가로 기억한다.



1920년에 완성된 그녀의 자서전 <My Life>을 통해 이사도라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고통이 아닌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그녀에게 자립심을 일깨워주고 자기표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자발적 인생의 밑거름으로 삼았다고 이야기한다.



물질만능주의와 합리주의적 측면으로 그녀의 삶에 접근했을 때 분명 이사도라의 삶은 안정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녀가 말한 ‘축복’은 부의 축적을 뛰어넘는 지적 자산의 총채라고 생각하며, 결핍을 자신이 보유한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킨 이사도라의 정신을 통해 글을 읽는 모두가 환경을 활용하고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염원한다.



나아가 자신만의 춤으로 빛나는 하나의 별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용학교를 설립하여 희생과 사랑으로 많은 제자들을 품었던 이사도라의 모습과 같이 혼자만 사는 방법을 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사랑의 힘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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