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스 블록
귤 따다가
귤을 따러 다녀왔다. 귤의 고장, 귤의 왕국, 제주에서도 맛 좋기로 알아주는 서귀포에서 귤 농사를 크게 하는 아이 친구네 집이었다. 제주의 만감류 농사 스케일은 남다르다. 예로부터 제주의 가을은 바야흐로 ‘귤림추색(橘林秋色, 귤이 익어 가는 제주성에 올라 주렁주렁 매달린 귤을 바라보며 감상하는 일)’의 계절이라 했다. 주렁주렁 매달리는 노지 감귤은 바라만 보아도 넉넉하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타이벡,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 다양한 품종으로 이어지고, 따뜻한 계절이 오면 하우스 귤이 아쉬움을 메꾸어준다. 그야말로 사시사철 귤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친구네 농장에 간다며 들떠 있었다. 동백이 피어날 무렵이 노지 귤을 수확하는 시점이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농원으로 가는 길목엔 진분홍 동백 카펫이 수확을 축하하고 있었다. 다섯 살 아이들은 야트막한 언덕 위를 어기영차, 잘도 올라 바구니에 귤을 채워 넣으며 기뻐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건만 나뭇가지와 열매를 이어주는 꼭지 틈새를 전지가위로 똑똑 잘도 잘라냈다. 달려 나온 이파리는 깔끔하지 않다며, 고사리손으로 한 번 더 가위질 해주고, 흙도 세심하게 털어내 주었다. 한창 수확 철인 농장엔 귤이 많았다. 정말 많았다. 그날 딴 귤을 잔뜩 싣고 선별장으로 향하는 트럭들이 도로를 가득 채웠다. 이맘때면 몸이 무거운 트럭들 덕에 교통체증도 생긴다. ‘귤트래픽 걸렸군.’ 하며, 운전대를 잡고서 중얼거리지만, 왠지 이국적인 기분이 들어 화는 나지 않는다. 우린 아이들이 딴 귤 10kg 정도에 덤으로 20kg은 족히 될 법한 ‘콘테나(귤을 담는 콘테이너를 부르는 말)’ 하나씩을 얻어왔다.
제주 사람들의 겨울 일과 중 하나는 귤을 처리하는 것이다. 손톱 밑이 노래질 때까지 먹어도 소용없을 만큼 넘쳐난다. 친구네 집에서 준 귤, 친구 이모네 농장에서 온 귤, 식당에서 가져가라고 내어놓은 귤, 카페에서 커피 한잔 사면 덤으로 주는 귤, 길 가다 모르는 ‘할망’이 아이 손에 쥐여준 귤, 옆집에서 건네는 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가져다준 귤, 직장 동료가 나눠준 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제발 좀 가져가라고 차에 밀어 넣은 귤……. 자, 이제부턴 귤을 나누어 줄 시간이다.
나: ‘라무랑 귤 따고 왔어! 모양은 제각각인데 맛은 괜찮은 듯? 보내줄 테니 주소 쏴 봐~!’
A: ‘우와, 언니! 고마워요. 완전 감동의 귀요미 귤이다~ 라무가 직접 땄다니!’
B: ‘감사히 먹겠습니다.’
C: 헐대박대박. 귤이다. 라무가 손수 딴 제주 감귤
나: ‘응~ 맛있게 먹어!’
D: 글 대신 귤을 주네. 맛있게먹을게♡♡♡
어쩐지 뼈가 아픈 것 같다. 아프다. 아파도 싸다. 함께 글 쓰는 친구들 단톡방에 의기양양 완성해 보내리라 소리쳤던 에세이 마감일이 이틀 전이었다. 귤로 글을 덮어버리려던 셈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아티스틱 아일랜드
나는 천혜의 자연과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남들은 작업하러 일부러 돈 쓰고 시간 써서 내려온다는 영감의 성지, 죽었던 예술혼도 살아 돌아오고, 평범한 소시민도 영혼의 작품을 길어 올린다는 대한민국 넘버원 아티스틱 아일랜드, 제주에 살고 있다. 그것도 4년이 다 되어 간단 말이지!
첫 책이 나온 지 5년, 아이를 낳은 지 4년, 아이가 기관에 적응하고 내 시간이 생긴 지 1년, 마지막으로 에세이 기고한 지 열여섯 달. 가이드북 작업 끝난 지 두 달. 충분히 놀았고, 차분히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운동도 시작했고, 네일도 새로 받았다. 부족한 건 없다. 오히려 차고 넘칠 뿐.
‘나는 차고 넘치는데 글발이 없어졌다. 감정은 차고 넘치고, 경험도 충분히 많지만 이걸 풀어낼 능력이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공포가 찾아온 거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어떤 시인이 한 인터뷰 일부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인 내가 유명한 작가와 같은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놀랍고 신기했지만, 동시에 당연했다. 작가들의 에세이에서 어렵지 않게 등장하는 그렇고 그런 고민이다. 쓰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그 뻔한 이야기. 어쩌면 오래도록 작가로 살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줄 타는 심정으로라도 결국은 써내고야 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마음은 진즉부터 바빴다. 핸드폰 메모장을 훑었다. 그간 끄적인 게 700개가 넘었다. 필요 없어 보이는 건 과감하게 삭제했고, 나름의 주제를 정해 정리했다. 이것만도 몇 날 며칠이 걸렸다. 쓰다가 만, 초고라고 부르기에도 초라한, 파일들이 또 한가득이었다. 그나마 열심히 마음의 소리를 남긴 인스타그램도 아까웠다. 한데 다시 열어 수정하고 뭔가 덧붙이려니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내가 썼는데, 지금은 거기에 공감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엄마인 여성 작가들이 아이가 학교에 간 동안, 아이가 숙제하는 동안, 아이가 잠든 시간, 심지어 아이를 안고 수유하는 동안 글을 써서 책을 펴내고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K.롤링이 카페에서 아이를 유모차에 앉혀두고 썼다는 그 이야기보다, ‘놀랍도다! 그녀의 아이는 얼마나 순둥이였나!’ 하는 베스트 댓글에 키득거리며 ‘좋아요’나 누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핑계를 하나 덧붙이자면, 내 아이는 세 돌이 넘어서도 통잠을 자지 않았고, 지금도 1분을 혼자 놀길 어려워합니다만.
어쨌든 마음만은 수많은 팬이 오매불망 컴백을 기다리는 아이돌 스타가 되었다. 유명한 가수들이 왜 다음 앨범을 낼 때까지 그렇게 긴 공백이 필요했던 것이며, 어떤 이들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영감을 위해 약물에까지 의존하고 힘들어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죽기 전에 책 한 권을 낼 수 있다면 여한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 소망 앞엔 ‘감히’라는 부사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어쩌다 ‘감히’ 정말 책을 냈고, 사람들이 작가라고 불러주었다. 생각보다 이르게 꿈을 이룬 기쁨도 잠시, 쓰지 못하는 병에 (감히) 걸려 버렸다. 베스트셀러를 낸 것도 아니고, 이슈가 된 적도 없으면서 이런 병에 걸려버리다니. 안타깝지만, 실화다. 책을 낸 뒤로 일기장 한 줄 제대로 써본 적 없다. 누가 이걸 보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 앞서 버린다. 깜냥이 안 된다는 말과 더불어 한숨이 따라붙는다.
배회
지난겨울엔 노오란 무덤들을 보았다. 새가 쪼아 먹어서, 맛은 괜찮은데 모양이 안 예뻐서, 수지가 맞지 않아서. 여러 가지 이유로 소비되지 못한 귤들이 밭 한쪽에 쌓여 썩어가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은 그걸 ‘귤무덤’이라 부른다. 노란 껍질 밖으로 고개도 한번 못 내밀어 보았을 귤 알맹이들 생각을 하면 조금 괴로웠다. 탱탱하게 불어나 신맛과 단맛이 오밀조밀 가득 찬 과육을 어찌할 줄 몰라 내뱉는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속에서 몰아낸 말들도 다를 바 없었다. 문장 하나도 되지 못한 채 나뒹굴다가 곧 퀴퀴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은 명랑하게 노란빛을 내고 있지만, 조만간 썩어 문드러져 파리나 꼬이는 신세가 될 것이다. 나는 비록 어중이떠중이 신세지만, 분명히 알고 있다. 이대로 쓰지 못한다면, 나는 썩어버리고 말 것이다. 내게 밀려온 이 모든 불행과 불안, 행복과 행운, 열감과 냉기를 혼자 다 안고 가다간 큰일 난다. 써야 한다. 열매는 제때 따서 소비되어야 한다.
마음에 드는 부분 하나 없고, 아무런 효용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친다. 더는 이렇게 늙어버리고 싶지 않아 전송 버튼을 누르고야 말 것이다. 남쪽 어디에선가 환호성이 들리지 않는가. 바야흐로 귤이 익어 가는 계절이다. 올해도 노란 귤무덤을 보며 어쩔 줄 모르겠을 마음이나 헤아리며 추운 계절을 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