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시업은 누구나 쉽게 무자본으로 뛰어들 수 있는 비즈니스 영역이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매우 낮고, 전문성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져 있다. 따라서 에이전시를 선정하기 전에는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쉽게 스스로를 전문가로 포장하여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대행사에 성과를 기대하지 말라니, 다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고대행사에 광고를 의뢰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성과를 개선하거나, 높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부터 에이전시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간극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대행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행사는 말 그대로 '남을 대신하여 수행하는 역할', 그 자체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광고 운영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투입된다. 전략 기획은 물론, 광고 소재를 만들고, 카피도 짜고, 광고 세팅도 해야 하고, 매일 같이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유지 보수도 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진행할 시간도, 인력도 부족하다면 대행사에 광고 운영 업무를 일임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훨씬 합리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대행사에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좋은 성과는 좋은 기획과 실행에서 나오는 것이지, 단순히 실행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는 에이전시에 단순히 실행 또는 운영 대행만을 기대하고 업무를 일임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클라이언트는 당연히 그 이유와 책임을 에이전시에 물을 것이다. 그러나 답답한 건 에이전시도 마찬가지다.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충분히 많은 시간을 투입하여 광고를 대행했고, 맡은 바 성실히 대행 업무를 수행했으니, 성과의 문제는 그들의 관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에이전시와 클라이언트는 끝내 서로 책임을 추궁하는 사이가 되거나,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성과가 좋을 때는 누구보다 사이가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면 누구보다 멀어지는 애증의 관계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에이전시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는 '결과에서의 성과'를 기대하지만, 에이전시는 '과정에서의 대행'만이 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단순히 클라이언트에게 '성과를 기대하지 마세요.' 또는 에이전시에게 '책임감이 없지 않느냐. 대행을 일임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성과 개선 아니냐.'라고 왈가왈부하기에는 오랫동안 고착되어온 에이전시 산업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시장 문제 1. 인당 생산성의 한계
에이전시업이란 클라이언트의 일을 대신해 주고, 용역에 대한 대가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즉 수익 구조가 용역 서비스 형태이기 때문에, 인당 생산성(Productivity Per Person)이 매우 중요하다. 더 많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 사람이 많은 클라이언트를 담당하거나, 예산이 큰 클라이언트를 최대한 적은 사람이 담당해서 로스를 줄여야만 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 때문에(회사마다 다르지만) 한 사람이 최소 3-5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거나, 많게는 수 십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이 말인즉슨 한 명, 한 명의 클라이언트에게 쏟을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장 문제 2. 수수료 방식의 수익 구조
디지털 광고 대행사는 클라이언트가 취급하는 마케팅 예산의 약 15~20%를 운영 수수료로 받는다. 클라이언트가 사용하는 광고비가 늘어나면 그만큼 받는 수수료도 늘어난다. 이 때문에 아직 매출이나 규모가 작은 중소규모 클라이언트보다는, 상대적으로 마케팅 예산이 많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일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수수료는 말 그대로 '광고 운영 대행에 따른 수수료'이다.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성과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가 본인들에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치다.
시장 문제 3. 무분별한 경쟁 PT 문화
앞서 언급했다시피 에이전시업은 진입 장벽이 매우 낮아, 전문성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져 있다. 고도화되고 다각화된 전략 수립이 가능한 전문가들을 보유한 에이전시들은 주로 비딩(입찰)이라는 경쟁 PT에 참여하여 클라이언트를 수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거나, 규모가 작은 브랜드는 전문성 있는 회사와 일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산이 작은 브랜드가 실력있는 에이전시를 만나는 것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러한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에이전시와 클라이언트는 언제까지나 애증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한 브랜드에서 성과가 안 나오는 이유는 광고, 가격, 이미지, 전략, 컨셉, 카피라이팅, 상세페이지, 제품, 디자인, 시스템, 하다 못해 날씨를 비롯한 외부 요인까지 셀 수 없이 많으며 매우 복합적이다. 어쩌면 대표도 못 하는 일을,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에이전시의 담당자가, 심지어 동시에 여러 일을 하면서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TV프로그램에 나온 한 연예인이 "그놈이 그놈이다."라고 말 한적이 있다. 이 표현은 실제로 모든 남자가 전부 거기서 거기라는 뜻이 아니라, 아직 만나보지 않은 누군가에 대해 만나기 전부터 너무 큰 환상을 품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에이전시', 즉 브랜드 파트너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크리에이티브 업종에는 실력있는 전문가가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소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케팅 업종은 그런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러한 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당 생산성의 한계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해야만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즐겁다. 그런데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돕는 일은 힘들다. 한 끗 차이인데 참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앞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의 혁신과 통합,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진정으로 브랜드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파트너들이 많아져야 시장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대열에 우리가 합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