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영화 <씨너스: 죄인들> 리뷰

by 김인혁

우리 아버지는 목사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필리핀의 선교사가 되셨기 때문이다. 모든 삶이 그러하겠지만, 목사 아들로서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를테면 주일 예배를 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차 안에서 유행가를 튼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만났던 한 목사님은 힙합 음악이 악마를 숭배하는 음악이라고 하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씨너스: 죄인들>의 새미 역시 이런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다. 흑인 교회의 목사인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그는 블루스 뮤지션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새미를 아버지는 '죄인'이 되지 말고 신앙에 집중하라고 한다. 60년도 더 지난, 저 멀리 미국 땅에서의 이야기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다. 우리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가수보다는 딴따라라는 멸칭이 더 익숙했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새미의 이 막연한 꿈은 스택스모크 형제를 만나며 첫 발을 내딛는다. 영화는 이들이 누군지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인들의 언급과 반응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부를 거머쥘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전직 갱단 둘과 목사 아들. 이들의 기묘한 동행은 마치 흑인이 성공하는 길은 범죄 아니면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핏줄 말고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음악이다. 그중에서도 블루스를 통해 이들은 유대한다. 그리고 나아가 다른 흑인들과 연대한다. 이 공통의 문화를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은 스모크스택 형제의 '클럽 주크'로 하나둘 향한다. 그리고 백인들 없이 마음껏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이들의 낙원은 뱀파이어 '레믹'이 나타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레믹은 흑인이 아닌 백인이다. 블루스 대신 아일랜드 민요를 흥얼거리며, 기독교가 아닌 다른 신을 모신다. 영화 속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그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는 평등주의자다.


그렇다면 레믹은 누구인가. 레믹은 흑인 문화에 대적하거나 억압하는 세력이 아닌, 우리가 향유하는 대중문화에 가깝다. 이들은 무턱대고 우리의 집을 박차고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고, 집주인의 허락을 구한다. 그리고 방심한 순간, 우리의 목을 물어뜯는다. 결국 레믹에게 물려 뱀파이어가 된 이들은 똑같이 사고하고, 자극에 똑같이 반응한다. 분명 집단이지만 개개인의 정체성이나 인격은 없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를 '나'가 아닌 '우리'로 칭한다.


개인이 지워진 자리에 집단이 들어서고, 다양성 대신 획일성이 군림하는 세상. 라이언 쿠글러에게 이러한 현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포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피칠갑을 한 뱀파이어보다 블루스 대신 낯선 아일랜드 민요를 흥얼거리는 흑인들의 모습이 더 기묘하고 서늘하게 다가온다. 음악은 단순한 유흥을 넘어 한 존재의 뿌리가 담긴 문화이기 때문이다. 라이언 쿠글러가 비현실적인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끝까지 고집하며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나의 소속과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는 단순한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적 갈등보다는, 주류와 비주류 간의 문화적 충돌에 가깝다.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의 뿌리마저 메인 스트림에 휩쓸려 버린다는 경고이자, 지금까지 이 문화를 지키고 계승해 온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이 의미가 관객에게 닿길 간절히 바라는 듯, 라이언 쿠글러는 살아남은 스모크와 KKK단의 전투로 이 영화의막을 내린다. 그리고 말한다. 아직 현실에서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고, 이것은 단순한 문화적 충돌이 아닌 누군가가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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