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은 따듯했다

우리는 한 번 더 성장할 것이다

by 김인혁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론 나는 한 번도 생일다운 생일을 맞이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바로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 하필 예수님이라는 범지구적 슈퍼스타와 같은 날 태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다닌 나는 크리스마스만 되면 그 흔한 명동이나 번화가가 아닌 교회에서 항상 생일을 맞이해야 했다. 매해 똑같이 짜인 성탄 행사를 끝내고 나면 그제야 어색하게 하나둘씩 축하해주시는 교회 어른들의 시선이 정말 부담스러웠다.


지금 당장 어디 계신지도 모르는 분의 생일을 온갖 찬양으로 축하하고 나면 정작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 없었기에 서러워서 어디든지 도망가버리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유명 연예인 형제의 삶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내 생일은 기쁜 날이 아닌 기쁨을 강요당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단단히 새겨졌다.


이런 생각은 군대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맞이한 내 첫 생일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넘어가려 했고, 내 생일인 걸 안 동기가 PX에서 갑작스럽게 달팽이 크림을 사준 걸 빼면 다행히도 무사히 지나간 편이었다. 소원이 있다면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도 아닌, 그렇다고 내 생일도 아닌 그냥 흘러가는 날처럼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군대에서 첫 번째 생일을 보내고 어느덧 두 번째 생일까지 맞이하게 됐다.


두 번째 생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자 시간이 흘러 무거워진 계급장과 달리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하필 근무까지 겹치는 바람에 온종일 휴대폰도 보지 못하고 컴퓨터 화면만 온종일 보고 있는 탓에 오늘이 생일인지, 크리스마스인지 와 닿지도 않았다. 한쪽 구석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만이 회색빛이 도는 적막한 사무실을 외롭게 형형색색으로 밝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 눈엔 마치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온 사람이 관심을 끌려고 억지로 밝은 척을 하는 것 같아 괜히 애처로워 보였다.


하번 할 시간이 다가오자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아무한테도 연락이 오지 않았으면 어쩌지? 요새 휴가도 못 나가서 연락도 잘 안 하고 지내는데 기억하는 사람은 있을까? 아무리 덤덤하게 생일을 흘려보내려고 해도 조금의 기대감과 불안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있겠지라는 기대감과 아무도 없을 거라는 불안감 사이에서 내 마음은 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후 근무 시간이 끝나고 휴대폰을 받는 순간까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은 휴대폰의 전원을 켜자 깔끔하게 정리됐다. 휴대폰 메신저 창에는 정말 많은 사람의 축하 메시지와 선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더 내 마음을 울렸던 것은 같은 부대원들의 축하였다. 어쩌면 내 인생의 정말 짧은 순간을 함께한 이들이지만 메시지에는 몇 년 넘은 친구 사이보다 더 진심이 담겨있었다. 매일을 함께 보내는 사이지만 그렇게 깊은 사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과분한 축하였다.


기껏해야 1년 남짓, 내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은 누군가에겐 긴 시간이었고 또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하게 될 정도로 충분히 깊은 시간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3번의 휴가 통제라는 어둡고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지난 생일같이 빛나는 순간들도 충분히 있었기에 우리의 인생은 밤하늘의 별같이 아름답다. 생일이라는 날이 생각보다 기쁘고, 의미 있는 날이라는 걸 알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적어도 내 군 생활은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다. 서로 얼굴 보고 얘기도 못 한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진심까지 안 닿겠는가. 지금 당장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때, 우리는 한 번 더 성장할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테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리 모두도 한 층 더 자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