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잡기의 미학

그럼에도 정리되지 않은 영역이 있다는 것

by 김인혁

군대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소위 말하는 ‘각 잡기’ 일 것이다. 훈련소에서 ‘줄줄이 좌로 가’로 시작된 우리의 군 생활은 ‘부대 차렷’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진행되는 중이다. 아마 대부분이 그렇듯이, 제대로 된 정리라는 것을 나는 군대에서 처음 배웠다.

속옷과 면 티셔츠를 한꺼번에 돌돌 말아 예쁘게 개는 법부터 시작해서 관물대의 옷이 삐져나오지 않게 왼팔 걸이를 하는 법 등등. 그전까지 신경도 쓰지 않던 부분들이 정리의 대상으로 다가오자 비로소 ‘내가 군대라는 곳에 왔구나’라고 실감이 들었다.


정리의 장점은 보기 좋다는 점이다. 아무리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각 잡혀 발맞춰 가는 군인들을 보면 누구나 깔끔히 정리된 책상을 보는 것과 같은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훈련소에서 분대장들이 제일 많이 강조하고 지적한 것도 바로 우리의 정리정돈 문제였다.

눈을 뜨자마자 모포를 개는 일부터 시작해서 자기 전까지도 우리는 계속 주변을 깔끔하게 정돈해야 했다. 평소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이불을 내팽개치던 나로서는 매일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무기력하게 모포를 개는 아침이 반복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포함한 분대원들은 군대식 정리방식에 점차 적응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힘든 일정이 계속되자 쓸어도 쓸어도 어디선가 계속 새어 나오는 먼지같이 우리 사이에도 부스스한 먼지가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그날이 그랬다. 평소 같으면 그냥 웃어넘겼을 동기의 말은 그 날따라 유난히 내 신경을 긁었고 결국 참지 못한 나는 욕설까지 섞어가며 격하게 대꾸했다.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당황했는지 동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한 번 아니다 싶으면 냉정하게 ‘정리’하는 성격인 나로선 그 동기와의 관계 또한 나중에 가면 기억도 나지 않을 ‘스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머릿속에서 정리해버리기로 했다. 딱 거기까지가 그 동기와의 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성격에 딱 맞게 훈련소에서의 내 보직 또한 정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내 보직은 바로 분리수거 병이었다. 물론 자의가 아닌 가위바위보로 정해진 일이었기에 나는 매일 일과가 끝나고도 지친 몸을 억지로 이끌고 추운 밖에서 각종 쓰레기를 뒤적여야 했다. 동기와 다툼이 있고 난 며칠 후 그날도 나는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힘들게 쓰레기를 버리고 막사에 돌아오자 다들 뭔가를 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분대장들이 군화 끈 묶는 법을 가르쳐줬는지 각자 군화를 든 채 끈을 매느라 낑낑거리고 있었다. 나는 일을 끝마치고도 또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친 발걸음을 끌고 침대로 향한 나를 마주해준 건 잘 개진 모포가 아닌 가지런히 끈이 묶여있는 군화였다. 알고 보니 분리수거를 하는 동안 바로 그 동기가 나를 위해서 군화 끈을 묶어준 것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목에 턱 하니 걸렸고 결국 이번에 침묵을 지킨 건 나였다.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그때는 내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말같이 느껴졌다. 결국 그 동기와는 훈련소 마지막 날, 각자의 길을 떠났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생각난다는 점이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정’이라는 잔 먼지를 남긴다는 걸. 싫든 좋든 이 잔 먼지는 우리를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나는 그 동기가 묶어준 군화 끈을 지금까지도 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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