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실험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주고 음식을 주는 실험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종 소리만 들어도 침샘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실험이었죠.
'조건 자극(Conditioned Stimulus)이 무조건 자극(UnConditioned Stimulus)과 연합하면 무조건 반응(UnConditoned Response)을 이끌어낼 수 있다'
조건 자극은 알겠는데 무조건 자극? 생후 2, 3년이 된 아이가 있다고 해 봅시다. 아이의 앞에 바퀴벌레가 기어가도록 만들거나 무서운 뱀이 혀를 낼름낼름 거리며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그게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뱀이 무서운지, 바퀴벌레가 혐오스러운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바퀴벌레를 삼켜 버릴지도... 반면에 아이에게 갑자기 큰 소리를 버럭 지르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는 깜짝 놀라며 공포 반응을 보입니다. 때리거나 타격을 가하는 등의 충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자극은 전에 경험하지 않아도 반응을 보이겠죠? 이것을 무조건 자극이라고 부릅니다. 앞서 말한 뱀이나 바퀴벌레처럼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학습을 해야 반응하는 경우가 조건 자극입니다. 조건, 무조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되시죠?
일관된 상황이 나의 반응을 형성한다
파블로프의 실험은 학습을 해야 반응하게 되는 조건 반응이 그럴 필요가 없는 무조건 자극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라는 내용입니다. 개에게 아무리 따르릉 종소리를 울려도 개는 침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에게 먹을 것과 종소리를 함께 들려주면, 먹을 것은 무조건 반응이기 때문에 (생존과 관련 있는 것이니까요) 조건 반응이었던 종소리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건 반응이었던 종소리는 무조건 반응에 의한 연관성이 지어진 후에는 종소리만 들려도 침을 흘리는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파블로프의 조건화 실험'이며, 익히 우리가 아는 조건반사 실험인 것입니다.
참고로 만약 종소리를 울릴 때, 다른 조건 반응을 추가하면 어떨까요? 종소리를 울리는 것과 동시에 파란 불빛을 함께 보여주면 말입니다. 개는 파란 불빛에도 반응을 보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종소리의 시청각적인 자극보다는 약하지만 함께 제공되는 조건 자극에도 개는 결국 침을 흘리는 반응을 보인답니다. 파란 불빛만 보여줘도 침을 흘리는거죠. 이것을 이차적 조건화 실험(Second-order Conditioning)이라고 합니다. 무조건 반응에 함께 더하는 이런 조건 반응의 갯수에 따라 2차, 3차... N차 조건화 요인이라고 하죠. 허나, 3차를 넘어가면 왠만해서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조건 반응이 형성되었을 때, 이번에는 종소리를 들려주어도 음식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는 일정 기간과 횟수가 넘어가면 개는 다시 종 소리에도 침을 흘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소거(Extinction)'현상이라고 합니다. 아 종소리가 나도 인제는 음식 안주는구나.. 하다가 이내는 종소리가 나네 정도인거죠. 그러나 소거 현상에서 흥미로운 점은 소거가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의 잠재의식에서 완전히 해당 정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의식하고 있지 않는 순간에 갑자기 다시 조건 반응(예:종소리)을 제시하면 개는 다시 침을 흘리기도 한답니다. 이것은 또 자발적 회복(Spontaneous Recovery)라고 합니다.
개 실험이 뭐 어쨌다고 하시겠지만, 이 별거 아닌것 같은 시도의 결론은 대단히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교육의 폐해라며 열변을 토하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 효과의 근거가 이 실험이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한번 학습한 내용들은 어떤 형태로든 영속적으로 기억된다. 단기적으로 특정 정보를 떠올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조건 자극에 의해 다시 활성화가 일어나 기억을 복구할 수 있다'라고 결론짓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한다는 것과 그것을 잘 사용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참..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걸 보면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스킨십은 조건 자극일까, 무조건 자극일까
이야기가 한참 돌아왔는데요, 우리 사람의 이야기, 특히 사랑의 이야기로 이번에는 좀 이동해 보겠습니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요? 어루만짐이나 포옹, 접촉과 같은 스킨쉽..., 사랑이 담긴 표정들, 따뜻한 느낌의 말들.. 이런 것들은 무조건 자극일까요? 조건 자극일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무조건 자극입니다. 디스커버리 "Human Body: Pushing the Limits" 을 인용하자면, 인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두뇌 활동을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고 있고(70% 가량을 시각 정보 분석에 사용한다는 것은 많이 알고 계시죠), 신체적 접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깐, 우리 사람에게 있어 스킨쉽과 따뜻한 느낌의 파동을 일으키는 표정, 우리 생존에 필요한 요소로 무조건적으로 반응해는 자극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사랑과 친밀함에 목말라하는 이유
지금까지 파블로프의 실험 얘기를 한참 했는데요, 사실 실험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파블로프가 수행했던 일련의 조건반사 실험들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위의 실험들 외에도 몇가지가 더 있답니다. 그 중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한 실험이 하나가 있으니 바로 '일관성' 실험입니다.
종을 울리고 먹이를 주다가 갑자기 종을 울리고 빈 접시를 주면, 개는 몇 번 같은 경험을 한 끝에 빈 접시에 익숙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종이 울리고 나서 때로는 먹이가 나오고 때로는 안 나오는 식으로 불규칙하게 진행되면, 개는 이제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고, 음식과 빈 접시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없어 혼란에 빠진다. 종소리가 때로는 이것을 의미하다가 때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면 개는 천천히 광견 상태에 빠져들었다.
다시 설명드리면, 개가 무조건 반응과 조건 반응 사이의 일관성을 찾는데 실패하게 되면 이 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애초에 두 자극 사이의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종소리나 기타 조건 자극들은 그냥 무시하게 되지만, 두 자극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아닌가? 아닌가 싶었는데.. 아 그런가? ... 하고 헷갈리게 되는거죠.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대단히 의미심장하죠.
개만의 문제일까요?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벌써 아... 하고 자신의 경험들을 상기하는 분들도 제법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회사를 생각해 보면 한... 2,3년차 시절까지는 이게 맞는것 같다가도 저게 맞는것 같기도 하고... 생각을 계속해서 뒤집는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곤 합니다. 상사의 판단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이 없고, 그것의 책임과 피해는 무시하기 힘들 만큼 괴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심적인 압력은 큰데 반해서 판단의 일관성을 위한 기준들은 계속 흔들리게 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당혹감과 자신감을 잃어가죠. 그리고 마음 한 구석 도저히 옮길 수 없을만큼의 바위를 얹어놓고 사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에 혼란을 느끼지 않는 것, 그 일관성의 환경, 이것은 생각보다 우리의 정서적 안정에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회사 내지는 조직에 관해서 얘기를 했는데요, 이건 세발의 피입니다. 이런 일종의 사회적인 관계보다 더 일관성이 요구되는 곳은 남녀간의 관계입니다. 평소에는 참 사람 좋은데 술만 마시면 180도 달라지는 사람, 보통때는 더없이 친절하고 나를 챙겨주고 배려해 주던 사람인데 기분 상태가 나빠지면 순식간에 입장을 바꿔 버리는 사람들, 약속한 바들을 계속해서 뒤집는 사람들, 그리고 다음 부터는 잘 하겠다고 약속이나 다짐을 연발하는 사람들, 내가 무엇을 해도 문제점을 찾아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속에 있으면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혼란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이런 행동들에 폭력이 더해지면 한 개인의 인격이나 정신정 안정감은 완전히 부숴지고 맙니다. 개가 광견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사람 역시 인격이 서서히 파괴되어 갑니다. TV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우리 생각 같아선 거기서 얼른 빠져나오면 될 것 같지만 가족을 내 마음대로 버릴 수 없듯이, 연인도, 공동체도, 조직도 쉽지가 않은 일입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제 옆 셀에서 일하던 과장 한분이 계셨습니다. 평소에는 수더분하고 먼저 인사도 잘 해 주시고, 철야 근무가 잦은 환경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는 분이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휴일 근무 때였습니다. 저녁 무렵이었는데 피곤해서 책상에서 엎드려 잠깐 자다가 일어날 때였어요. 과장이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전화를 걸었고 건너편에서 쾌할한 목소리의 여자가 받았습니다. 공원에 있는 것 같은 야외 소음이 함께 들리고 있었는데, 여자분이 뭐라뭐라고 밝게 얘기를 하고 있는 찰나 'XXX아, 기분이 좋냐? 나는 뺑이치고 있는데 넌 뭣하는 짓거리야? 누구랑 있어? 콱 씨, 너 정말 죽는다'..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계속 내뱉었습니다. 밝던 목소리의 여자는 이내 기가 죽어서인지 아무말도 안 하고 있는지 야외 소음만 들리는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텐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남자의 일격에 어떤 상태가 되었을까요. 기분 좋던 상대를 순식간에 주저앉히는 그 과장의 모습에, 제가 마치 그 일을 겪고 있는 것 같은 충격에 가슴이 벌렁벌렁 떨릴 정도였습니다.
분명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상황을 만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대방의 판단과 입장인 것이지, 우리 자신의 판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그 상황에 접하면 이런 생각을 하기란 정말이지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울화가 생기거나, 심적인 상처나 충격을 받았을 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에는 원인을 제공하는 그 공간과 상황속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소한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얼른 그 공간에서 벗어나 바람을 쐬거나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스스로를 정화할 수 있는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게 쉽냐 하시겠지만, 꼭 그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자기가 입은 그 상처는 내 마음 속을 돌고 돌아 증폭이 일어나며 이내 나를 심리적인 광인의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파블로프의 비일관성 실험 얘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앞으로도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관계와, 우리의 사랑을 지배하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계속 다뤄가고자 하구요, 그리고 그것들을 풀어내고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법들을 계속 하나씩 하나씩 열어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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