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일기
지난 3주간의 소란이 내게서 멀어지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다. 삶을 대하며 때로는 의미를 과장하기도, 한편으로는 한껏 시니컬해져서 소중한 의미들을 놓쳐버리기도 해 왔다. 나는 무엇이든 정의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때로는 정의 내리지 못하는 희미한 것들이 그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교훈이나 방향을 정의 내리지 않고 그저 이 여름을 소중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다만 이 시간이 언젠가 나를 다시 살리고 깨울 또 하나의 기억이 되리란 것만은 확신하며.
그리고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을 내 친구들을 위해 밝힌다. 내게 '당신'은 하나님을 뜻하는 또 하나의 표현이다.
I'm saying this for my friends who will read it. To me, '당신(you)' is another expression that means God.
나는 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 만남을 통해 위로받아왔고 내 삶이 흔들리고 힘겨울지라도 당신의 계획 아래 있음을 깨달아왔다. 지금껏 나를 거쳐간 놀라운 만남과 사람들을 기억한다. 나는 때때로 연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타인에게 공감하고 아픔을 나눌 줄 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당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느낀다.
종현이가 내게 '북경 이공대 버디(buddy)'프로그램의 일원으로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 프로그램의 규모와 역할에 대해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OT 당일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꽤 거대한 판에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이 프로그램의 골자는 3주간 북경 이공대 학생들의 생태학 리서치를 돕고 및 여행을 포함한 일정에 동행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유학생활을 했던 종현이는 영어를 잘했고 교양 영어 수업에서 보인 역량을 통해 네 명의 버디 중 한 명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나는 그의 추천으로 나머지 한 자리를 채우게 됐다.
사실 정상적인 경로로는 스무 살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의 편입생에게 버디로 활동할 기회가 돌아올 수 없었다. 종현이를 포함한 세 명의 버디는 스무 살, 스물한 살의 어린 학생들이었고 학교 차원에서 유능한 이들에게 문화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읽혔다. 그래서 그 수많은 학생들 중 교수의 추천과 국제교류팀의 선발로 성실하고 똑똑한 세 명의 학생이 뽑힌 것일 터. 프로그램에 대한 종현이의 설명은 "학생들 놀이공원 예매 도와주고 기숙사 생활 조금씩 도와주기만 하면 된대요 형" 정도에 그쳤지만, 내가 되어야 했던 것은 3주간의 일정에 동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언어 소통능력을 갖춘 버디였다.
서른네 명의 학생들을 단 네 명의 버디가 조별로 나눠서 챙겨야 했고, 열 명의 교수님은 중국 유학생 버디가 따로 맡았다. 그리고 주요 일정에는 한 명의 국제교류팀 교직원이 동행했다. 이러한 현실을 예감한 나는 사실 도망치고 싶었다. 하계방학 기간 동안 계절학기를 수강할 계획이었고 편입 첫 학기에 망쳐버린 학점을 손보아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가 두려웠다. 영어를 구사한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한 달 남짓했던 독일 어학연수 생활이 외국인들과 영어로 소통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마저도 5년이 훌쩍 지났던.
그래도 나는 강물에 발을 내딛기로 했다. 내게 언제나 전율을 가져다주었던 기억들은 용감했던 결정의 결과였다. 무엇보다 군 입대 직전 독일 어학연수를 결정했던 스물두 살의 나를 되찾기 원했다. 한 학기 내내 자퇴를 고민했던 연약함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었다. 가장 용감했던 시절의 나를, 새로운 이들과 함께 만나고 싶었다.
'시선'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타인을 바라보는 위치와 각도가 갖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눈길 끝에 담긴 감정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평생의 과업이 될 것이다. 유럽에 처음 발 딛고 전역을 활보하고 사람들과 만나며 얻은 가장 값진 경험도 시선에 관한 것이다. 내가 속한 작은 나라에서 당시 내 모습은 한없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직접 실감한 그 '작음'이 되려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이토록 넓은 세계에서 내 존재와 문제들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몇 년이 지나 나는 다시 한번 실패를 맞닥뜨렸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원하는 학과와 오래 준비했던 학교에 편입하지 못했고,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현재의 내가 어른이 되지 못한 피터팬과 같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공간과 환경에 속했지만, 모든 것이 내게 전혀 소중함을 안겨주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 친구들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곳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들의 시선 끝에 머문 이 도시와 공간, 그리고 문화가 새로워 보였다. 저들이 각자의 문제와 이야기를 안고 떠나온 이곳이, 침몰해 가던 내 일상의 공간이 저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자극이 된다는 것은 내게도 묘한 경험이었다.
나는 3주 동안 최선을 다해 저들을 도왔다. 그리고 진심을 나누고 함께 즐거운 순간들을 공유했다. 때로는 어떻게든 붙들고 싶은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 이 시간들이 그러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러한 유형의 만남을 향유할 수 있을지, 나를 옭아맬 취업과 직장이라는 전선에 내몰리기 전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이 모든 시간들이 소중했다. 그대들의 시선을 빌려 나의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어 다행이다.
누군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문장을 멋대로 인용했던 것을 기억한다. 글쎄, 내 생각에 그는 그저 의식으로 가득 찬 공간을 탈피하고 싶었을 뿐이다. 공간은 의식을 지배할 수 없다. 각자의 의식이 공간을 채우고 의미를 새기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을 넘어 국가나 공동체 같은 정신적 개념의 공간일지라도 의식에 앞설 수 없다. 유럽의 역사를 뒤바꾼 프랑스혁명과 한국의 독립이 이에 대한 적확한 반박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국민들의 뇌리에 새겨졌던 바다의 모습들을 기억한다. 기름으로 뒤덮였던 15여 년 전의 검은 바다, 침몰하는 배와 죽어가던 친구들이 있던 10여 년 전의 바다를. 눈앞에 엄습한 두려움은 모두를 잠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지만 국민들의 의식은 늘 공간을 넘어서왔다. 짐짓 공간과 의식 간의 상하관계를 규정해 자신을 위한 변명으로 치환하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
둘째 주차에 생태학 현장학습으로 '태안'을 방문했다. 한때 기름이 바다를 검게 둘러쌌던 곳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손에 검은 기름때를 묻히며 재해를 극복해 나갔다. 당시는 꿈처럼 희미한 오랜 기억이지만 뉴스를 살피며 들었던 그때의 소식들은 숭고했고 뭉클했다. 집중하며 해설을 듣고 기념관 곳곳에서 멈춰 서던 그대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나눈 우정이 같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속한 각기 다른 공간을 넘어선 동일한 의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당장은 요원하지만, 같은 시대를 두고 갈라진 수많은 해석의 역사와 그로 인한 균열도 언젠가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와 그대들의 시대에는 그럴 수 있기를, 공간을 무기로 의식을 지배하고자 하는 멍청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중 먼저 내가 속했던 그룹 D부터 살펴보자면 이렇다. 북경이공대 연예인 Diana, 너무나도 멋있는 언어능력자 Maeva, 모두가 아는 인싸 Leo, 예술가 기질이 돋보이는 Ian, 계속 마음에 걸렸던 소심이 Barry, 학구적인 소심이 Tom, 그리고 라이어 게임 잘 못하는 '바보' Zoe까지. 올해 가장 먼저 내 생일을 챙겨줬던 이들이자 걱정이 많았던 나를 편안하게 해 준 소중한 이들이다.
특히 Diana는 학생들 중 손에 꼽히는 영어실력을 갖췄고 상당한 미인이기도 하다. 그녀가 내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앞장서고, 나를 위해 한국어와 영어로 두 장의 편지를 공들여 써 줄 만큼 우리가 가까워질지 몰랐다. 이렇게 한껏 가까워졌다가도 수료식 대표연설에서 보인 스피치는 한 발 물러서서 그녀를 바라보게 했다. 문장 구사력과 프로페셔널한 태도, 그리고 일상에 녹아든 따뜻한 마음씨까지도. 많은 자극을 준 동시에 내가 무엇을 공부해 나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Maeva는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일본어, 독일어까지 섭렵한 언어 능력자로 내게 큰 학구적인 열의를 불러일으켜 주었다. 영어 만렙자 둘 덕분에 소통이 한결 편했다. 특히 Maeve를 보면서 언어란 언제나 소통의 창구인 동시에 지적 수준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말과 글의 수준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난다. 그녀가 구사하는 영어와 중국어, 프랑스어 등이 그러했다. 영어를 제외한 언어야 감으로 느낄 뿐이지만 말의 세기, 강도, 대화하는 태도 등의 면에서 실력의 깊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Leo와 Ian은 외적으로도 잘 꾸미고 활발한 성격을 지녔다. 옷도 좋아하고 밥 먹고 노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동시에 본인의 학문과 일에 열중하며 실력도 갖춘 이들이라는 것을 어깨너머로 느낄 수 있었다. 교양수업에서 만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와 두루두루 잘 알고 지내는 Leo 덕분에 부담을 크게 덜었다. 그는 영어를 잘했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함께 나눈 대화가 특히 인상 깊었다. 직업을 얻는 데 성공했음에도 부족함을 느껴 더 배우는 것을 택했다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목적 없이 경쟁 속에 내몰리는 수많은 한국의 학생들을 떠올렸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한국 교육의 모순이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는 있다. 다만 그저, 우리는 한 사람을 좋은 어른으로 길러내는 데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Ian은 Leo와 비슷한 점이 많으나 보다 문화적이고 감각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언더마이카' 같은 한국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좋아하고 영어도 잘한다. 그가 썼던 리포트나 구사하는 언어를 보자면, 얼마나 그가 감각적인 사람인지 설명이 될 듯하다. 어느 정도 언어의 장벽이 존재했으니 나는 평소보다 예민하게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게 풍기는 분위기나 감각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어떤 분위기를 가진 사람인지, 또한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멈춰왔던 읽기와 쓰기를 시작해야지,라고 다짐하게 된다.
Barry나 Tom을 보자면 어리고 소심한 남동생을 보는 듯해서 늘 마음이 갔다. 조원들 외에는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없어 보였고, 애초에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대화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둘을 집에 초대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워터밤에 놀러 갔던 그 토요일에. Tom의 본가가 해안 쪽이라 해산물을 좋아한다기에 해산물 감바스를 내줬고, 학식에 다소 맛있지 않았던 돼지고기 메뉴들이 생각나 규동을 함께 해줬다. 바쁜 일정 속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수료식 행사 인터뷰에서 두 친구가 나에 관해 해준 멘트가 너무 따뜻했고, 그래서 뿌듯했다.
Zoe는 은근히 분위기메이커를 담당했다. Diana, Maeva, Lulu와 함께 게장을 먹으러 갔던 날, 우리는 장장 두 시간 동안 영어로 라이어 게임 international 버전을 즐겼다. 매번 잘 속고, 속을 때마다 나라를 잃은 것 같은 반응을 해주었던 그녀 덕에 게임이 너무 재미있었다. Zoe에게, 중국에 돌아가서 연습을 좀 하길 바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준 "Thank you, Hans"라고 쓰여 있는 언제 어떻게 뽑았는지 모를 폴라로이드 사진 두 장을 보며 우리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이었노라고,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어 고마웠다.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많은 걱정을 했다. 수년간 쓰지 않았던 나의 영어회화 수준을 검열해야 했고, 스스로의 언어를 신뢰할 수 없었기에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언어보다 우선되는 것은 늘 마음이다. 내 부족한 언어를 이해하고 기다려줄 용의가 다분한 이들에게 학습된 노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의 부족함은 더 많은 것을 채우기 위한 공간이었다고 느낀다. 그저 서로의 순간에 더 젖어들기 위해 더 많은 진심이 필요할 뿐이었다. 내게 너무나 벅찬 순간들이 정말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한편으로는 부족한 언어가 주는 공백이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더'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최대한 마음에 있는 말들을 다 전하기 위해 노력했으므로 크게 남는 아쉬움은 아니다. 오히려 '덜' 전해서 좋았다,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 너무도 많은 말들이 부유하는 나의 세상에서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에 대하여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겠지. 때로는 다른 언어를 대하는 것만큼의 거리감이나 존중이 타인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세상에서 때로는 덜 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있었고,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있었다. 3주간의 여정동안 나를 잘 좋아해 주고 잘 따라주었던 이들은 비단 우리 조원들 뿐은 아니었다. Young을 포함해 Boaz, David, Spike, Howard 등 나의 친위대를 자처하며 내 일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물론 나도 개인시간을 포기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 노력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스케줄은 다소 교육 지향적인 것들이 많아, 나는 학교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친구들과 나누고자 했다.
우선 Young은 북경 이공대 축구팀의 주장이며 실력 좋은 골키퍼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엄청난 축구광이다. 그는 K리그 팀이며 선수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한편 David는 이곳에서 축구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축구화를 들고 왔다. 그는 참고로 최전방 공격수이다. 이렇게 축구에 대한 열의가 뛰어난 그들에 비해 다른 이들은 축구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결국 원정 축구경기를 갈망하는 중국 축구 유망주들에게 K-조축(축구)를 보여주고 싶었으나 풋살로 타협을 봤다. 중국에는 풋살이 대중화되지 않아 룰을 가볍게 설명해 줬고 내 친구들의 플랩풋살 아이디를 빌려 매치를 잡았다.
아, 나는 중학교 때까지 다년간 학원축구를 경험해서 볼을 좀 찰 줄 안다. 그래서 친구들 실력을 모르니 적당히 커버하면서 경기를 운영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대팀은 몇 년간 합을 맞춘 '팀'이었고 나는 매우 치열하게 경기를 뛰었다. 경기를 성사시키기 위해 과 후배와 편입 동기 형을 불렀다. 'International Trade'가 전공인 만큼 둘 다 영어를 잘했고, 그래서 우리는 실력과는 다르게 꽤 있어 보이는 국제적인 팀이 되었다. 경기를 통해 우린 한층 가까워졌다. 동분서주했던 나의 진심은 충분히 전해졌다.
Boaz도 나의 여정에 빠질 수 없는 히로인이다. 우리가 이별을 앞두던 날 밤,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어려움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편입과 여러 가지 실패 그리고 새로운 경로 설정 끝에 잠시 너희를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좋았다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더니 그는 내게 "Hans, 언젠가 일을 구하는 게 힘들거나, 일을 해내는 게 힘들 때 내게 연락해. 가족들이 가업으로 운영하는 여러 공장들이 네게 힘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 답했다. 이 말이 내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아마 너는 모를 거다.
Hans, 언젠가 일을 구하는 게 힘들거나, 일을 해내는 게 힘들 때 내게 연락해. 가족들이 가업으로 운영하는 여러 공장들이 네게 힘이 될 수 있을 거야.
첫날 버스에서 내리던 너희들을 향해 걸으며 첫인사로 적절한 영어문구를 생각했다. 발음이 어눌하지 않으며 상황에 걸맞은 인사를 골랐고, 내가 택한 첫 대화 상대는 너였다. 차분하고 똑똑해 보였고 살짝 긴장한듯한 모습이 내가 네게 다가갈 수 있었던 빈틈이었다. 항상 나를 먼저 찾았던 Young도,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어젯밤은 잘 잤느냐고 물어보던 너도, 많은 부탁에 미안해하며 웃음 짓던 David도 어느새 내게 너무 소중해졌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이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말했듯이 이 시간이 언젠가 나를 다시 살리고 깨울 또 하나의 기억이 되리란 걸 확신한다.
여러 사람이 있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 세 개로 글을 분리한 것은 내게 다가온 사람들의 온도가 각기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뜨겁거나 차가웠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내게 잔잔한 울림을 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게 시원한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설렘을 안겨준 이도 있었고, 운명과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 준 이도 있었다. 내가 수없이 써왔던 인간에 대한 짧은 글과 단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인 물속 붕어의 침과 같은 사소함 일지라도, 인간은 그 사소함을 딛고 살아간다.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는 존재는 단연 인간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찰나를 버티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우정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나는 내가 늘 그래왔듯 내가 크리스천임을 밝히고 싶었다. 이 의식은 관계를 대하는 나의 진심을 더하고 어느 곳에서든 당신 앞에 부끄럽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새기게 한다. Spike의 외할머니가 오랜 크리스천이고 이웃나라에서 손자가 처음으로 크리스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기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 모든 만남을 허락하시고 계획하셨던 이는 당신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더 기뻤다. 내가 동분서주하며 뛸 수 있었던 이유도, 우리의 만남이 영원히 의미 있으리라는 확신도 이에서 비롯된다.
잊지 못할 시간들이 이렇게 또 나를 스쳐간다. 내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나의 세계가, 실은 눈부신 가치들로 넘쳐난다. 오래 잊고 지냈던 이름을 되찾았고 이름에 얽힌 추억도 되새겨 보았다. 많은 것들이 변했던 지난 몇 달여간 의미의 빈곤과 불안, 불가항력을 경험했다. 그러나 당신은 이토록 불충한 나를 위해 세상을 움직이고 의미를 손에 쥐어주시는, 그런 분이심을 다시 깨닫는다. 많은 사람과, 영원히 빛바래지 않을 진심과, 여전히 내가 ‘나’ 일 수 있게 해주는 어떤 모양의 마음에 더없이 감사하다.
다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내게는 어린 시절부터 정말 오랫동안 좋아했던 '짝사랑 그녀'가 있다. 나는 동네에서 꽤 유명했던 순애보였으며 아직까지 당사자인 그녀와 잘 지내기에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Anna를 처음 봤을 때 그녀와 꽤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Anna와 이어진 대화 속에서 그녀가 사뭇 진지하고 철학적이며 한편으로 꼿꼿한 사람임을 알게 됐다. 그녀를 보며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공간이 아닌 의식임을 다시 깨달았다. 흔들리는 듯하지만 단단한 내면이 갖춘 사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성장하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사람을 알게 되어 좋다.
탄식이 나올 정도로 넓은 중국땅과 그에 따른 학교와 본가 사이의 아득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Lulu는 "네가 중국에 온다면 네가 어디에 있든 너를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할게"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해산물과 축구, 그리고 '문재인'을 좋아하는 중국인인 그녀는 정말 신비로운 존재였다. 비록 다른 그룹이었지만 정말 특별함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다. 나보다 한국 아이돌 세계를 더 잘 아는 Jingjing과 못된 여동생처럼 굴며 나를 놀려댔던 Raechel(지금은 Elaine)도,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었던 Emily와 누구보다 멋있었던 댄서 Heather도 너무 멋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Emily와 Heather에게, 짧았던 만남에도 불구하고 오래 나를 기억하고 추억해 주어서 무척이나 고맙다.
네가 중국에 온다면 네가 어디에 있든 너를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할게
여느 남자들과 달리 Shy boy처럼 굴지 않고 조잘대던 내가 신기했는지 먼저 말을 붙여주었던 Dawn이나 Shopia, Luby, Yoyo, Vivian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어떤 말을 하든 잘 들어주겠다는 듯한 눈빛과 한국 곳곳을 누비던 총총걸음이 보기 좋았다. Jo, Libby, Cathy와도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더불어 같이 움직이는 일정이 적었음에도 항상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중국말을 가르쳐줬던 Johnny나 늘 댄디했던 Ming과 Dylan, 그리고 친구들을 따라 생일을 축하해 주었던 Howard에게도 너무 고맙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그때도, 지금도.
活到老 , 学到老。
我爱你们。
I think summer left many unforgettable memories to me. I like the romantic things and people in summer.
- Diana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때로는 감하고 가하여 이 글을 완성시킬 수 있음에 벅차다. 쉽지 않았다.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표현들로 그대들을 글에 남기고 싶었고, 글을 맺으면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말들로 그대들에게 앞으로의 삶을 축복하고 싶었다. 인생을 조망한다면 우리는 잠시 마주쳤을 뿐 그대로 엇갈려 다시 보지 못할 인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찰나의 것들이 모든 것이 되기도 하니까. 우리의 만남은 모든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전자에 걸겠다.
그대들로부터, 그리고 내가 믿는 분으로부터 넘치는 응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늘 야속하다고 여겼던 시간은 여전히 내 삶을 담금질하는 고난과 기쁨의 이중주임을 깨닫는다. 무더웠던 여름의 끝에 잊지 못할 그대들을 얻어 행복하다. 그대들은 너무나 멋있는 사람이다. 의심이 들지라도, 삶이 그대들을 속일지라도 이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안녕 친구들, 그리고 유독 힘들었던 해의 여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