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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닙 Mar 13. 2021

조물조물 찰흙

취미록


아득한 옛날이지만 아마도 나의 첫 취미는 찰흙놀이였다.

찰흙으로 어떤 결과물을 내어놓든 같은 반 친구들은 무조건 환호했다.


찰흙 하나 주세요!
내일 미술 시간 준비물이니?

아니오!

어찌나 뿌듯했던지 한동안 학교 미술 준비물이 찰흙이 아닌데도 문방구에서 500원짜리 찰흙을 사들고 집에 돌아갔다. 물론 반에 한 명씩은 미술에 특출 나게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내가 그런 아이들 중 하나가 되어보니, 예쁘고 멋진 건 곧잘 소문이 나서 같은 반 친구가 아니어도 어느 반 누구가 미술쟁이인지 금세 알게 된다. 그래서 보통 한 학년 학급 수만큼 부담이 곱해진다. 다음 학년으로 진학할 때조차 이미 나에 대한 주변의 기대치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다. 만들기에 재주가 있던 나는 영상 디자인이라는 공예와 무관한 길로 들어섰지만 많은 취미 생활 중 대부분은 손을 움직이는 것이기에 위안이 된다.


편한 바지에 티셔츠를 제일 즐겨 입는 나지만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었다. 낙서를 해도 늘 사람보다는 사람이 입고 있는 옷에 장식 그려 넣기를 더 즐겼고 실제로 만들 수 있다면 반드시 행복할 거였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비로소 나는 가난함과 풍족한 집의 차이를 실감했고, 패션 디자인과는 의상 샘플을 제작하고 모델을 섭외해 무대를 꾸리는 데에 몇백만 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그 사실은 거의 공포 괴담 수준으로 나를 겁먹게 했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비용이라고는 오직 컴퓨터 장만이면 충분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디자이너'로 급하게 꿈의 방향을 선회해야만 했다.

대학 입시 때 OO여대 금속공예과에 수시 전형으로 지원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학교는 모두 영상 디자인이나 시각 디자인과 같이 계획대로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전공이었는데, 유일하게 내가 갖춘 조건과 그 여대의 금속공예과가 적당히 들어맞아 뜻밖에 지원했었다. 합격 혹은 불합격. 긴장된 와중에도 금이나 은으로 공예를 하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지를 고민했다. 결과는 예비 합격 7번. 치열한 미대 입시의 세계에 무려 예비 7번에게 기회가 있을 리 없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합격 이후를 상상하며 내심 가장 설렜던 전공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성적인 학생이 감당하기에 매우 벅찼던 친구들의 관심, 선생님의 칭찬과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 지금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지만 그 시절 찰흙 덩어리로 조물조물 만들었던 만화 캐릭터나 사람의 형체, 네발 달린 동물, 반지 보관함이 종종 생각나곤 한다. 어린아이가 만든 내구성이 조악한 찰흙 작품을 아직 간직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아직 집에 2개가 남아있다.

혜화동의 도예 공방을 알아두었다. 정말 휴식이 필요할  원데이 클래스로 접시나 화병을 만들고 싶어 아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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