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리 Dec 03. 2020

'시작'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소소해도 모든 시작은 시작

inicio: '시작, 출발'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시작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언제나 어렵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류의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생각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각은 저마다 유의미한 거 아닌가. 무튼) 그래서 유독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시작을 안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왜 2020년 마무리를 앞둔 이 시점인지는 모르겠다. 끝을 향해 가는데 새로운 시작? 아이러니하지만 뭐든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연초보다는, 이제 뭐 다 끝났는데 어때, 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연말이어서 그럴지도.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이유를 찾자면, 아마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갇혀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왠지 모를 죄책감 때문인 듯도 싶다. 어쨌든 올해가 다가기 전에 뭐라도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몇 개월을 혹은 몇 년을 고민했던 것들을 부랴부랴 시작해보려고 한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쓰기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써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한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작가 신청을 한 후 작가 승인을 받아야만 시작할 수 있다.


적당히 쓰면 다 되겠지, 뭐. 라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만, 모두 예상하듯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당황했지만 내용이 부족했나 싶어 이것저것 추가해 넣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상처가 됐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좀 더 전문적으로 보이고 싶었고 또 그래야만 뽑힐 것 같아서 나를 어느 정도 포장해서 신청서를 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번에는 내가 브런치에서 글 쓰고 싶은 마음 자체를 그대로, 순순하고도 가감 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될 거라는 기대는 없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삼고초려, 아니 사고초려 끝에 드디어. 드디어 작가로 승인을 받았다. 진심은 통한다고 하는 걸 괜스레 브런치에서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진심을 나 스스로가 먼저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 내 진심에 대한 가치를 너무 평가절하했던 건 아닌지.

 

왜 브런치에서?


그렇다면 왜, 블로그도 있고 다양한 루트가 있는 게 이곳 브런치에서 글을 싶었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꼭 책을 낸 작가가 아니어도 '작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는 그의 이름을 불러 그가 비로소 꽃이 됐듯이, 나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작가로 불리며 비로소 잠시나마 작가로 살아보고 싶었다. "나도 작가 소리 듣고 싶어요!" 맞다, 바로 그 이유에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솔직해지고 싶어서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체가 갖고 있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현실 속에서의 나는 누구의 자식이고, 언니고, 동생이고, 친구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잃었다까진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숨기기도 하고 바꾸기고 하면서, 나 자신이 나 스스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떤 게 진짜 내 의견인지, 어떤 게 진짜 내 마음인지. 좋아한다고 말하기 전에 눈치 한번 보게 되고, 싫어한다고 말하기 전에 눈치 한번 보게 되고.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을 맘껏 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정한 한계로 어느 선까지만 표현하고 마는. 그런 것에 대한 허망함을 느끼던 찰나.


이런 일련의 고뇌 아닌 고뇌를 그나마 일기를 쓰면서 풀었는데, 가끔은 이런 내 일기를 조금만 더 다듬어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이 고뇌를 함께 나눈다면?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설렘이 올라왔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브런치에서 글을 써보고 싶었고, 드디어 이렇게 기회가 주어져 나의 첫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떨림과 긴장을 안고.


그래서 '시작'을 '시작'해봅니다.


제일 좋아하지만 제일 하기 어려워서 뜨문뜨문 그것도 겨우 하게 되는 '시작'이란 걸 지금, 용기 내어 조금은 과감히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뭐가 됐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뒤 재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시작합니다.


끄적끄적이지만 글을 써봅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고 계시는 모든 분들의 시작을, 그게 무엇이 됐든, 응원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