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해서 집에 책이 많다. 하지만 펼쳐보지도 않은 책이 많다면? 겉만 다독왕 인척 하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이젠 고백할 때도 됐다. 내 책장 속에는 아직 시작도 못한 책들이 수두룩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뭐 내킬 때 내키는 만큼만 읽어야지."
생각보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고 있는 지금처럼.
그렇게 한 권의 책을 골랐다. 읽다 만 책. 내가 꽂아놓은 독서기록 포스트잇이 있었다.
- 3월 30일 / p.16~57
아주 오랜만이야. 마지막까지 읽어내겠다는 강박 따위 버리고, 내가 내키는 만큼만 읽기로 다짐하며 읽기를 시작했다. 집중력이 떨어지자마자 과감히 덮었다.
- 9월 7일 / p.58~175
내 예상보다 많은 페이지를 넘겼다. 지금까지 날 억누르던 강박을 지우니 한결 가볍게 읽게 됐다. 그리고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왜 나 자신을 괴롭혔을까. 책 하나, 끝까지 안 읽으면 좀 어때서! 누가 나한테 감상평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독후감이 숙제도 아닌데.
나의 이 조그만 도전과 성취 속에서 내가 요즘 갖고 있던 고민의 해결책도 찾았다. 나의 말로는 어떻게 표현이 되지 않아 마냥 답답했는데, 이걸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문장을 발견했다. 이런 게 바로 운명 아닐까? 운명은 별거 없다. 그리고 운명은 바로 내 옆에 있다. 예상하지 못한 책에서 내 고민의 답을 발견했을 때. 이래서 책을 읽었지, 싶다.
내일도 내킬 때, 내키는 만큼 책을 읽어야지.
안 내키면, 안 읽지 뭐. 내일모레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