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 세계여행 Ep 5. 호주 퍼스
인도네시아 앓이. 나는 이곳에 돌아오게 될까?
우붓(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지역) 에서 떠나기 싫다며 혼자 상사병 걸린 사람 처럼 발리 앓이를 했지만, 이제는 정말 떠날 때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3개월은 정말 느리게, 또 빠르게 빠르게 지나갔다. 한 나라에서 3개월이나 머무르다니.. 남편에게 '이정도면 거의 어학연수 아니야?'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남편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인도네시아어를 계속 구사해주니, 나도 서당개 풍월을 읊듯 이제 상인들의 말은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래 들여다보니 더 좋은 점이 많았던 인도네시아. 혹자는 기회의 땅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거품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곳이 좋았다.
친절함이 좋았고 (같이 일을 하게되면 어떨지 모르지만), '동남아 사람들은 날씨가 더워서 게으르다'라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았다. 저절로 그 곳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상세히 알아 볼수록 제약이 많아서 당황스럽지만 이 여행의 끝에도 우리의 마음이 인도네시아로 향한다면... 다시 돌아갈 마음이다.
세계여행 3개월만에, 드디어 다음 나라!
호주 퍼스로 향하던 그 날, 뭐가 그리 아쉬웠는지 속으로 거의 발리와의 이별식을 하며 '발리야 안녕 또 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러던 중 비행기에서 문득 생각해보니 세계여행 3개월차에 드디어 새로운 나라라는 생각에 바로 마음이 설레이는 걸 보면 발리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마음은 아니었나보다 (하하)
다만, 동남아에서 3개월간 호의호식하다가 갑자기 물가상승률이 거의 10배가 되는 호주에 가려니 감당이 안되어 배낭의 옷을 열심히 비우고, 라면과 한식 재료들로 가득 채웠다.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호주는 자연에 대한 자부심 만큼 입국 세관검사가 악명높은 곳이다(신발에 흙이 묻어있는지를 본다던지, 육고기가 들어간 라면은 안 받아 준다던지..). 그 당시 가방의 반을 채운 라면은 우리의 보물 1호였고, 혹시라도 반입이 안될까 엄청나게 겁을 먹었더랬다.
그런데 우리의 비행기가 아침 첫 비행기였던 덕분인지 세관검사는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진 나는 '아 호주랑 운명인가?'따위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왜 시드니도, 멜버른도 아닌 퍼스로 향했나요?
호주 여행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동부다. 시드니,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멜버른까지 좀 들어봤다 하는 도시는 모두 동부에 위치해있다. 그런데도 왜 시드니나 멜버른이 아니라 퍼스로 갔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발리에서 퍼스행 비행기 티켓이 가장 저렴해서요"라고 답하겠다. 발리에서 퍼스까지의 비행기 값이 1인당 10만원도 안 되던 그 순간, 그냥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퍼스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호주에서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하고, 서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서호주, 과연 갈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찾아본 내용]
호주에서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
tvn '꽃보다 청춘 위너편'의 배경이 된 곳
광산업 종사자들이 비행기로 출퇴근하는 FIFO 잡의 거점도시
호주 하면 떠오르는 '쿼카'의 고향이 바로 이 퍼스 옆 로트네스트섬
시드니나 멜버른처럼 상징적이거나 힙한 곳은 별로 없음
히스레저의 고향이며, 주민 대다수가 수영과 서핑을 즐기는 데다가, 호주 사람들 중에서도 여유로운 사람들. 이라는 인식이 있을만큼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분위기
몇년 전, 호주 여행을 다녀온 나는 호주 이민 바람이 불어 당시 남자친구이던 남편에게 귀에서 피가 나도록 호주 이민을 이야기했다. 위 내용에 더하여 만약 정말 이민이라도 오면 더 작은 도시에 가게 될 수도 있으니 시드니보다 퍼스에서 한 달을 살아보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더해지니 더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진짜 호주 살고싶어? 호주엔 이런 모습도 있는데? 라고 경고라도 하듯
퍼스의 첫 인상은 쉽지 않았다.
호주의 9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더니 엄청나게 추웠다. 누가 봐도 동남아에서 놀다온 애들처럼 둘 다 크록스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갔는데, 크록스 구멍 사이로 매섭게 들어오는 바람은 마치 퍼스가 전하는 첫 경고같았다.
우리가 퍼스 한달살기의 거점으로 삼은 곳은 ‘프리맨틀(Freemantle)’이라는 동네다. 서호주 중에서는 백인들이 가장 먼저 자리잡기 시작한 지역이라 약 18세기에 지어진 감옥과 전통시장 등이 유명한 곳인데, 현재는 그 식민지 역사의 잔재보다 ‘예쁜 카페거리, 여유로운 분위기, 퍼스의 부촌‘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새벽 6시 반쯤, 프리맨틀역에 도착해서 에어비앤비를 찾아가던 길. 여행 계획할 때 보던 프리맨틀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회색 하늘과 태풍 수준의 바람, 그리고 텅 빈 거리를 마주했다. 서호주가 동부에 비해 인구 밀도가 낮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어쩜 10분을 넘게 걷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다. 호주 사람들은 다들 6시부터 런닝하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것 아니였나..? 이건 뭐 유령도시가 따로 없다.
결국 공항 세관 직원 이후로 약 1시간 30분동안 10명 남짓의 사람을 마주치며 도착한 '한달치 보금자리'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향기나고 깔끔한 침구, 깨끗하게 정리된 욕실, 난방 장치를 켜자 금방 훈훈해지는 방까지. 호주 이민 왔는데 딱 이정도 집에서 시작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 싶은 곳이었다.
당신은 집순이인가요?
나는 아니다. 점점 더 집에 머무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고 있지만, 하루라도 밖에 안나가면 좀이 쑤신다. 그만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내 공간’에 대한 애착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프리맨틀의 28박짜리 에어비앤비에 열쇠를 꽂고 문을 열어 들어가자마자 깨달았다. 현재 나한테 필요한 것은 ‘집’이었다.
지난 세달간 호텔이나 홈스테이를 몇박마다 전전하면서, 며칠에 한번씩 짐을 풀었다 싸고, 새 숙소의 컨디션은 어떨지 긴장하고 염려하다보니, 나같은 밖순이도 무의식 중 ‘나만의 공간’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또 '공간의 구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정말 깨달았다. 공간의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작업은 거실에서, 밥은 주방에서 먹는 그 당연한 구분이 삶의 흐름을 명확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을 하면서 이용하는 소위 말해 '가성비 좋은' 방들은 대부분 원룸에 침대와 간이 화장대의 구성이 전부이다. 작업을 해도, 컵라면을 먹어도 모두 같은 자리에서 이뤄진다.
또 가끔은 방 안에서 혼자 음악을 듣거나, 큰 침대에서 혼자 대자로 누워있는다던가, 아무런 소리 없이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그 '가성비 숙소'들에서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 된다.
아무튼 신혼집을 내 취향대로 꾸며놓고도 별다른 애착이 없었던 나는, 그제야 그 집의 소중함을 깨닫고 순간순간 그리워 하기 시작했다.
아직 여행의 반도 안 지났는데... 나 혹시 돌아가고 싶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