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을 보고
“문어체로 대화하는 사람들”
장/단점이 너무나 확실한 영화다. 단점만으로도 이 영화에 별점 테러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작은 장점 하나만으로도 감독 이창동의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다.
<BAD>
1. 스토리
1.1 여성
문제의식조차 없다. 의도적으로 비꼬았나 생각할 정도로 말이 안 되게 여성을 그린다. 버닝에서 여자는 자위 도구이자 희생, 농락의 대상으로 상징된다. 의도적으로 ‘여자’를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반복적으로 과하게 대상화시킨다. 수많은 장면 중 제일 최악은 유아인이 전종서의 방에서 남산을 보며 자위를 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질투를 감당하지 못해 전종서를 창녀에 비유하는 모습 역시 최악이다. 전종서가 떠난 후에 등장하는 새로운 여자도 웃음을 사는 대상으로 그려진다는 것. ‘터치 마이 바디’가 오프닝에 등장한다는 것. 셀 수 없이 꼴 보기 싫은 장면들은 많다. 이런 요소만으로도 이 영화에 별점 테러하기 충분하다.
<버닝>을 보고, 칸 영화제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새삼 깨달았다. 한 편에서 성차별 철폐를 위한 여러 행동이 있었던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비평가 상을 탄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1.2. 상징
이창동은 친절한 감독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관객이 그 흐름을 놓치지 않게 여러 발판을 잘 쌓아주는 감독이다. 그래서 그의 시나리오는 영화뿐 아니라, 문학 작품으로도 재미있는 그런 영화들이었다. 이번 영화는 그의 친절함이 너무 과했다.
상징은 상징일 때 의미가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측하고, 의미의 자율성을 관객에게 넘겨줄 때 힘을 가지는 것이 상징이다. 이번 영화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보았다. 관객들이 모호하고 애매한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하나도 모호하지 않았다. 모호함은 이것인가? 저것인가? 그 고민 사이에서 나타나는 감정인데, 이 영화는 확언만 하지 않을 뿐 어느 길을 선택해야 맞는 길인지 가이드를 하고 있다. 영화에서 그리고 싶었던 복잡한 감정을 조금 덜 설명했더라면, 영화가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전종서가 기다리는 한 줄기의 빛이 유아인에게 너무나 직접적으로 비치는 것. 너무 최악이다.
1.3. 강약 조절
구구절절 던진 떡밥을 다 회수하려고 해서 그런지, 영화에 강약이 없다. 핀포인트가 있어야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긴장감이라는 극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극의 어느 위치에서 긴장감의 위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차라리 전종서의 부분을 많이 줄이고, 둘의 핑퐁에 포인트가 맞춰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연기
해도 해도 너무 못한다. 이창동의 시나리오에 아쉬운 점이 많지만, 주연 셋이 연기를 잘 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조연도 못한다. 엑스트라도 연기를 못한다. 고양이가 그나마 제일 잘한다. 다들 각자의 역할에 빠져, 그 사람만을 연기하려 아등바등한다. 삶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맥락과 관계가 드러나야 한다. ‘나 이 사람 안에 갇혀 있어요’를 보여주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자기도 자기를 모르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오히려 상황과 관계와 더 어우러질 필요가 있다.
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오히려 한국어 화자라는 맥락 없이 자막으로 이 영화를 소비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카메라
투박함을 담아내고 싶었을까? 패닝, 말도 안 되는 줌인, 줌아웃과 핸드 헬드. 불안함, 묘한 느낌을 내고 싶어서 다양한 시도를 한 것 같은데 진짜 너무 구리다. 집중을 방해하는 구도에, 교과서에서 배운 사람이 그대로 적용한 것처럼, ‘대화를 할 때는 어깨를 걸어 촬영합시다!’가 나타나는 장면들. 예쁜 화면을 찍어낸다고 해서 잘 찍었다고 할 수 없다.
<GOOD>
1. 음악
이 영화에서 혼자 일했다. 최고다. 사실 극 전반을 이루는 BGM은 최고다. 연기 못하는 배우들을 살려준 것도 사실 음악이다. ‘바운스’라는 대사 하나에 임팩트가 조금 떨어졌지만 - 그놈의 설명! 그만! - 그래도 이 영화에서 최고는 음악이었다. 그간 음악을 소극적으로 활용했던 이창동이 음악을 전면적으로 극에 등장시킨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2.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이창동은 사람이 미쳐가는 과정을 그리는 데에 일인자라 생각한다. 미쳐가는 과정이 너무나 설득력 있다. 어느 순간 스티븐 연과 유아인의 핑퐁에 빨려 들어간다. 유아인의 방해되는 연기에도, 스티븐 연의 어눌한 한국어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과연 우물은 존재했던 것인가, 보일이는 허구의 존재인가라는 궁금증을 가지며 영화를 지켜보게 된다.
미치는 것과 미치지 않는 것이 한 끗 차이라는 것. 사실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고, 그 과정을 다져나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그 과정을 지켜본 기분이다. 어느 것이 거짓말이고, 어느 것이 진실일까를 추적하는 것은 결국 어느 것을 믿고 싶은가로 귀결된다는 것. 살아가면서 어떤 것이 FACT인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호함이자 애매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