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내 일이 아닐 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영화 <미성년>을 보고

by inihiai

<미성년(2019)>
우리 모두 내 일이 아닐 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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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라 부르는 사람에게 내 이름이 무언지 아냐고 물어보는 삶이다. 남의 삶이라면, 어쩜 저런 삶이 있을까 동정의 시선을 비출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내 삶이라면, 그냥 내가 처한 현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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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빠의 아이가 죽었다. 나의 엄마의 아이가 아닌, 다른 여자의 아이다. 죽어버리길, 사라지길 바라는, 모든 이들의 원망의 눈초리를 받는 존재가 정말로 세상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렇게나 기다렸던 죽음도 찾아오지만 그것이 순간을 제일 괴롭게 하는 원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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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두의 삶을 꼬아 버린 주범이지만, 이미 벌어졌는데 어쩌겠냐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뭐가 예뻐 죽을 끓여다 주고, 병원을 데려가겠냐만, 그게 남이 예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를 위로하는 방법임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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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에게는 하늘이, 신이 나를 괴롭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꼬여 있는 세상인데, 내가 가진 일이만원이 탐나서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는 허무한 세상이다. 삥 뜯는 양아치들을 해결하는 방법처럼 돈을 쥐어주고 이 모든 것이 무마할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마음으로 태안에서 서울로 택시를 탔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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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윤석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서로에게 엉켜 서로의 삶을 지지한다. 용서를 구해야 할 인물은 변명을 하고, 누군가를 한 없이 미워해도 한이 풀리지 않을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를 걱정하며 근근이 버텨나간다. 그리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끌어안고 괴로워 하지 말라고, 그걸 니가 왜 걱정하냐고 핀잔을 듣는다. 괴로움에 오지랖을 부리는 부분은 다 다르지만, 사실 그런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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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버닝>을 보고 미치거나 미치지 않거나는 종이 앞뒷면 같은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이 중 한 인물이 돌아버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미치거나 죽도록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 인물들 뿐 아니라 그 누가 이 상황에 대치되더라도, 그럴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개같아도 시간은 흐르고, 방법은 찾아야 함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게 회피든, 부딪히는 것이든 모두는 그 상황을 타개할 나름의 방법을 가진다. 그래서 모두가 삶을 견딘다는 표현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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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죽음에 가까워졌음을 예견하여, 그래서 그 존재가 생명을 지닌 모습을 보기 두려워한다. 그것이 그 존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일말의 죄책감이며, 양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 줌도 안되는 뼛가루를 보며 운이 없어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찾지 않는 죽음에 안도해야 미치지 않고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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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윤석은 변태 같은 감독이다. 본인을 영화의 변두리에, 객체로 투영하고 그것을 본인이 직접 연기한다. 모든 존재에게 거부 받고, 모든 일의 원인으로 돌려지는 자리를 본인이 가진다. 그리고 그래야 영화가 잘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 무서운 사람이다.


9.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가 나이가 들어 언어를 잃을까 두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도 요즘 그게 무섭다. 새로운 영역의 새로운 공간의 언어에 적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흐려질 것들이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라 괜한 욕심을 낸다. 이럴수록 PEEP 봄호에 글을 기고하지 못한게 너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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