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처럼 찾아온 나의 서욕(書慾)

북미팅 활동 6년 차, 책을 읽는 방법

by 끼지엄마

10년 다닌 직장에서 퇴사한 후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면 본능적으로 식욕이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그때 자기 계발을 위한다거나 지혜로워지고 싶다는 류의 이유 따윈 전혀 없었다.

그냥 책을, 글을 엄청나게 많이 읽고 싶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업무지식이나 스킬은 점점 늘어갔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멍청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업무를 제외한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긴 문장이나 의견을 말할 때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고 점점 두서없이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안에 지식+지혜+사고의 공간이 창고처럼 있는데 그곳이 텅 비어버린 느낌.

사고의 고갈.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생각을 잘 안 하게 된 것 같다. 회사 다니기도 힘든데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 나만 피곤하니까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되는 곳이니까.


위가 비면 본능적으로 밥을 찾듯이

내 안의 그 공간이 비어버리자 본능적으로 책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고대하던 퇴사 후 책을 읽기 시작하려는데 마음처럼 쭉쭉 읽어나가지를 못 하겠더라.

세상 모든 것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으니 안 쓰던 독서 근육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서 읽으려니 아무래도 진도가 안 나가서 북미팅에 소속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찾다가 책두런에 가입하게 되었다.


책두런은 그 당시에도 이미 10년 넘게 도서관의 지원을 받으며 잘 운영되어 온 역사 깊은 북미팅이었다. 평일 오전 모임인지라 구성원 대부분이 주부인 여성분들이었고 모임이 10년이나 되었으니 멤버분들의 연령도 대부분 50대로 높은 편이었다. 나는 36살의 까마득한 막내로 책두런에 들어갔다. 가입과 탈퇴의 제한이 없는 책두런에는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꽤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내가 들어갔을 때 어울리기 힘들어서 오래 못 나오겠다 생각한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책두런에서는 매주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서평이 의무는 아니지만 계속 안 써가면 당연히 민망하다. 그리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러 간다면 당연히 내 생각을 정리한 서평이 기본이다. 그렇게 서평을 쓰면서 더 확실히 느꼈다. 내 사고의 창고가 텅텅 비어있구나.


신입 회원인 데다가 한참 어린 막내이니 어려운 책이어도 책의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꼼꼼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읽은 후 서평을 쓰려고 워드를 열었는데 빈문서 1에 커서만 껌뻑인다. 책의 내용은 '아~그렇구나~' 받아들이긴 해도 비판하고 내 식으로 해석할 능력이 나에게 전혀 없었다. 실제로 책의 내용도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인 채 정리도 잘 되지 않았다. 지금이나 되니까(책두런 6년 차) 과거의 나의 상태를 설명이라도 할 수 있는 거 같다. 그때는 그냥 '쓸 말이 없네' 밖에 생각이 안 났다. 뭐라도 써가야 하니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고(=남의 생각) 줄거리라도 요약을 해서 서평을 써가면 2시간가량 토론시간에 또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난 왜 이렇게 생각이 정리가 안 되지?'


10년 넘게 매주 새로운 책을 읽어온 분들은 책에 대한 조예와 지식이 정말 깊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머릿속에 책 내용도 정리가 안 된 내가 두서없이 의견을 말하자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권을, 내 취향에 상관없이(실제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음) 정독하고 서평을 쓰는 것은 나에게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분들 옆에 찰싹 붙어있었다. 버겁고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멱살이라도 잡혀 끌려가야 내가 원하던 대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급한일이 있거나 출산, 육아,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몇 달씩 쉬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꾸준히 북미팅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사실 이런 모임이 오랜 기간 동안 잘 유지되는 게 쉽지 않은데 책두런은 선배님들께서 항상 딱 버텨주고 계시니 언제든 돌아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의 독서친정 같은 느낌이다. 늘 그곳에 계셔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책을 읽는 기준

6년이나 북미팅에 참석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의 실력은 비슷하다. 하지만 내 수준에서 책을 어떻게 읽어야 도움이 될까에 대한 기준은 점점 세워지는 것 같다.


책을 왜 읽는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식도서는 내가 몰랐던 지식을 쌓기 위해서이다.

소설은 재미있어서, 이야기 안의 분위기가 설레어서,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되어서 등 전반적으로 그냥 좋아서 재미있어서 읽는다.

자기 계발서는 슬럼프에 빠져있거나 다운되었을 때 자극을 받고 힘을 내보려고 읽는다.

에세이는 위안을 받고 마음속에 쑥 들어와 내 몸에 남는 문장을 만나기 위해서 읽는다. 사실 이 이유는 다른 카테고리의 책들에도 모두 적용되기는 한다.


그리고 위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나의 책 읽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모든 책을 정독할 필요는 없다. 그 순간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는다.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다 읽지 않으면 뭔가 찝찝한 쓸데없는 완벽주의에, 수박 겉핥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독을 포기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모든 책을 정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지금의 결론이다.

첫 글자부터 끝 글자까지 눈으로 읽어냈다고 그것들이 내 머리와 마음속에 다 남아있을까?

나의 경우 자기 계발서는 정말 많이 봤다. 그러니 이제는 대충 목차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사실 자기 계발서는 다 공통적으로 열심히 살라고 얘기한다. 결론은 이미 아는 내용이고 어떻게 해야 열심히 잘 살 수 있는가 방법의 차이이니 목차를 보고 눈에 꽂히는 혹은 내가 몰랐던 방법들을 우선적으로 찾아 읽는다.

이미 많이도 읽은 자기 계발 서적을 계속 읽는 이유는 내가 슬럼프에 빠져있거나 다운되었을 때 자극을 받고 힘을 끌어올려보려는 목적이므로 목차 중 마음이 끌리는 부분부터 읽는다. 줄거리가 없어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되는 에세이 등도 마음이 끌리는 부분부터 읽는다. '책은 만난 그 순간이 운명이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 순간 읽고 싶은 부분을 바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부분에도 흥미가 생겨 읽게 된다. '저 책 재미있어 보이네 다음에 읽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다음은 잘 없다. 다음에는 또 다음에 읽어야 할, 그때에 읽고 싶은 책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려운 지식도서는 전체를 읽어냈다고 내 머릿속에 다 남는 것도 아니다. 순간 관심이 가는 부분을 먼저 읽으면 머릿속에 잘 각인되고 그것들이 바탕이 되어 관련된 분야의 책들을 더 잘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정독하고 싶은 지식도서는 공부하듯 읽어야 한다.

모든 지식도서를 이렇게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야별로 '정말 중요해서 내가 꼭꼭 씹어먹고 싶다'는 책이 있다면 읽는다기 보다는 공부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최승필의 '공부머리독서법'이라는 책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는데 지식도서는(특히 내 수준에서 어려운 지식도서는) 하루에 적은 양을 읽더라도 내용을 정리하고 공부한 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역사 무지렁이인 내가 호기롭게 사전같이 두꺼운 세계사 편력 전권을 주문했었다. 1권도 겨우 겨우 읽었고, 읽었으나 글자만 읽어나간 듯 머리에 기억된 내용이 거의 없다. 수치화하자면 시간 대비 효율이 0에 수렴하는 느낌이다. '그냥 이 멋진 책도 읽어봤어!'라는 뿌듯한 느낌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랄까? 하지만 이게 반복되니 뿌듯하지도 않다. 이런 류의 지식도서는 반복의 반복을 거쳐 내 것으로 많이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그래서 2020년에는 '코스모스 일 년 읽기' 온라인 모임에 참여했다. 정해진 20~30 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일주일 동안 반복해서 읽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찾고, 모르는 개념을 더 알아보고, 문제지(수능 언어영역 같은)를 푸는 모임이었다. 그렇게 공부와 정독을 하며 완독을 해냈다. 사실 그 전에도 코스모스에 관련된 강연도 들으며 전체적으로 한 번 읽었지만, 일 년 동안 공부하며 읽었을 때와는 머리에 남는 양이 다르다. 진짜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지식도서는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코스모스를 자그마치 일 년 동안 공부하며 읽어냈지만 이것도 사실 부족하다. 최소 5 회독은 해야 누군가에게 코스모스의 내용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읽는다.

서점에서 너무 마음에 들어 사온 책은 이상하게 끝을 잘 못 본다.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항상 도서관에서 빌려온 반납일이 임박한 책들을 먼저 읽고 그 사이 서점에서 사 온 책에는 점점 흥미가 식어가는 것이다. 서점에서 잠시 서서 책을 읽을 때도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된다. 서점을 떠나면 더 이상 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집중력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구매한 책을 가능한 북미팅에 추천도서로 올려 함께 읽는 것이다. 혼자는 힘들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면 약속이라는 의무감이 또 마무리가 된다.

책 욕심만 많아서 도서관에서 대여 가능한 권수만큼 책을 잔뜩 빌려놓고는 반납기일까지 다 읽지 못하기가 일쑤이다. 그러면 다 읽지 못해도 반납을 해야 하는데 괜한 아쉬움에 '내일 꼭 다 읽고 반납해야지'라며 하루, 이틀 미루다가 연체가 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래서 이제는 무조건 반납일을 책을 다 읽는 데드라인으로 정했다. 다 읽지 못했더라도 반납일에는 반납일이 도래한 책들과 함께 1~2시간의 여유를 갖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1~2시간 동안 읽지 못 한 부분을 치열하게 읽고 반납하고 오는 것으로 규칙을 정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의 분위기와 제한된 시간이 놀라운 효율을 보였고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반납일' 루틴이 내 생활에 자리를 잡았다.


4년 후에는 나도 북미팅 10년 차가 된다. 신입회원으로 처음 책두런에 들어갔을 때 선배님들의 연차가 그 정도였다. 4년 후에는 그때의 선배님들만큼 나도 깊어질 수 있을까. 깊어지지 못 한다한들 어쩌겠는가. 그래도 괜찮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서 나는 충분히 만족을 얻고 있으니.

어느 강연에서 청중에게 '미래에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냐'는 질문했었다.

나는 글을 읽고 글을 쓰는 할머니로 살아가고 싶다. 흰머리를 곱게 빗어 묶고 눈 쌓인 길을 산책한 후 집에 돌아와 조용히 책을 읽는, 노인이 되었어도 내가 정한 그날의 분량만큼 글을 쓰는 치열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는 정정한 할머니가 되어, 이 세상에 있는 마지막 날까지 읽고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