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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Jun 07. 2022

부모의 가스라이팅

나도 좀 안 하고 싶다고!!!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 A군은 최근 부모와 크게 다퉜다. 본인이 원하는 학과와 부모가 추천하는 학과가 다른 것이 원인이었는데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A군과 달리 A군의 부모는 "그 학과 나와서 뭐 먹고살려고 그러니? 네가 지금은 그게 재밌어 보이지만 금방 싫증 낼 거야. 취업 잘 되고 돈 잘 버는 OO과에 들어가야지!"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A군은 나름의 고민을 거듭해 꿈을 정하고 학과를 정했지만 부모는 A군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라며 부모의 선택을 강요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이 같은 사례를 접하게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픽사베이

가스라이팅.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모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다. 결국 가스라이팅은 상대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최근 부모-자녀 간 가스라이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엄마. OO해도 돼요?” 아이들이 사소한 것도 행동하기 전에 내게 물을 때가 있다. 몇 번 대답하다가 이런 류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면 “그런 건 네가 알아서 좀 해도 되지 않니?”라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대체 왜 저럴까 수차례 생각하곤 했는데, 결국 내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부모로서 아이에게 가스라이팅을 해 왔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가스라이팅의 다섯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 상대가 의견을 냈을 때 듣지 않거나 이해하지 않는 ‘거부’, 지속적인 상황 조작을 통해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하찮게 만드는 ‘경시’, 상대가 A라고 말할 때 B라고 말하면서 기억을 믿지 못하게 하는 ‘반박’, 상대의 생각을 의심하는 ‘전환’,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망각’이다. 결국 ‘너는 틀리고 내가 맞아.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라 가스라이팅이다.


여러 사례들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도 가스라이팅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모도 알게 모르게 자녀에게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내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됐다.

ⓒ픽사베이


아마도 가스라이팅의 대표 가해자는 부모, 피해자는 아이가 아닐까 싶다.


오은영 박사는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녀의 독립’이라고 했다. 주체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육아라는 것인데 우리는 아이가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나 생각해 봐야 한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훌륭하게 크게 하나는 이유로, 보호한다는 이유로 부모는 다방면에서 아이를 통제한다. 또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바르게 자라길 바란다.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작은 결정도 혼자 내리기 힘들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불행함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항상 사과를 하게 되며, 무슨 일이든 자신을 탓하며 자책한다고 한다. 또 자신이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정서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다. 부모 역시 이를 바라지는 않을 터. 때문에 오늘 하루 아이에게 가스라이팅을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가스라이팅을 하지 않으려면 아이를 우리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해야 한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서 알려주는 대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아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또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네가 그러면 그렇지~” 등과 같이 아이의 선택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말은 삼가야 하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부모의 희생을 강요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부모로서 분별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사회적 규칙을 알려주고 삶의 목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단, 이때 주체는 부모가 아닌 아이여야 한다.

ⓒ픽사베이


말은 쉬운데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행복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위해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하루, 어제 하루를 돌아보며 아이에게 가스라이팅을 하지는 않았는지, 가스라이팅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또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나 역시 하루에도 수차례 가스라이팅을 하기에 깊이 반성하고 다음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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