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정리했어요.
서랍 속 작은 편지부터
한때 따스했던 추억의 조각들까지,
하나하나 손끝에서 흩날리듯 놓아버렸죠.
그런데도, 지워지지 않는 게 있어요.
그 사람의 전화번호.
첫눈처럼 설레던 손 편지,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팔찌와 목걸이,
함께 웃으며 맞췄던 반지까지
모두 정리했는데,
왜 이 여덟 자리 숫자는 남아 있는 걸까요?
따뜻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술 한 잔에 마음이 붉어지는 밤이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번호.
바보같이,
단 한 번의 터치로
다시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돌아요.
그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옅어지는데,
그 번호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요.
이젠 걸 수 없는 번호를
가장 깊이 새기고 있네요
차갑게 끊어낸 관계와 달리,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고작 여덟 자리의 숫자.
언젠가 그 번호가 희미해질 즈음,
나는 또 다른 번호를 기억하겠죠.
아직은 조금 더 아프라고,
지금은 아직 아물지 말라고,
그렇게 남아 있는 걸까요.
여덟 자리가 일곱 자리로,
다시 한 자리로, 그리고 결국
0으로 카운트 다운을 하듯이
아직은 조금 더 정리하라고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