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갔으면 ㅇㅇ 가는 게 국룰"
"ㅇㅇ식당에 갔으면 ㅇㅇ먹는 게 국룰"
"직장동료 축의금은 n만원이 국룰"
"한강에선 라면이 국룰"
"치킨엔 맥주가 국룰"
어느 순간부터 지겹도록 자주 접하지만, 들을 때마다 내겐 묘한 거부감과 심지어는 불쾌감마저 심어주는 단어 '국룰'. 누군가는 나를 프로불편러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국룰'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전체주의의 느낌이 어딘지 모르게 영 불편하다. 개개인이 가진 취향이나 개별성을 무시하고,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 당신 또한 응당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무언의 압박을 주는 단어 '국룰'. (Rule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약간의 알레르기 반응이 오는 나인데, 거기에 무려 '국민의'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니 이 놈은 정말 어마무시하다!)
'국룰'은 '국민의 룰'을 줄여서 말하는 신조어로 '통상적으로 모두가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것이 왜곡되어 자신의 취향이나 고집을 남에게 두리뭉실 강요할 때도 '국룰'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것 같다. 누군가 "부산까지 왔으니 밀면, 또는 국밥을 먹는 게 국룰이지"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같이 부산에 간 다른 사람은 사실 밀면도 싫고 국밥도 싫다. 하지만 '국룰'이라는 단어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취향과 호불호가 갑자기 마이너가 되고, 돌연 나는 부산 와서 국밥 먹기 싫어하는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국밥이 먹고 싶다면 한 끼는 따로 먹어도 될 텐데 왠지 '국룰 국룰' 하는 내 상상 속 그분은, 같이 여행 왔으면 밥도 같이 먹는 게 국룰이라고 할 것만 같다.
이것은 조금 지나친 과장일 수도 있다. 아마 부산 가서 국밥 먹기 싫다고 한다 해서 이상한 사람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단어에 유난히 민감한 이유는 이 단어가 이렇게 빈번히 사용되는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에서 오는 불편함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나 '남들만큼' 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유난히도 많은 것 같다. 누구는 어디 요즘 핫하다는 레스토랑이나 여행지에 다녀왔는데,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 상대적 박탈감, 초조함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개인주의가 훨씬 일찍부터 발달된 서구 세계의 사람들보다 심한 것 같다고, 나는 체감한다. 그런데 과연 그 '남'들은 누구인가? 한국에 5천2백만 인구가 있고 우린 각자 5천2백만 가지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남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하고 노는지 예의주시하며, 유행이라고 하면 왠지 나도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 실체 없는 다수가 "겨울엔 롱패딩이 국룰", "휴가 갈 때 네일은 국룰"이라고 하면 나도 왠지 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 그런 우리의 의식이 '국룰'이라는 신조어로 transform 된 것은 아닐까?
한국이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한 나라라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영토는 좁은데 인구는 많고, 또 교통과 통신은 잘 발달되어 있고, 빨리빨리를 좋아해서 그런지 트렌드도 빨리빨리 갈아치우게 되는 백의민족의 숙명. 하지만 유행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유명한 누군가의 취향이 유행은 될 수 있겠지만, 유행 자체는 누군가의 취향이 아니다. 유행만을 따르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진정한 취향이 무엇인지 한 번 곰곰이 탐색해 보는 것이 어떨까.
예전에 외국에 오래 산 한국인 분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홍대 가면 젊은 친구들 모두 스타일 좋고 패션 감각 있어 보이는데, 사실은 다들 비슷하게 입고 있다는 말. 한국인들은 유행하는 스타일만 따르다가, 정작 유행을 따르지 않는 나이가 되었을 때 자신의 스타일을 몰라 등산복만 입게 된다는 말. 그 말에 웃픔이 새 나왔다. 등산복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심지어 산에 오를 때 등산복을 입는 것도 국룰은 아니다. 얼마 전 한라산에 가보니 청바지에 스니커즈 신고도 잘만 오르는 사람들도 있더라.
어쨌거나 '국룰'은 '국룰'이 아니다. 당신이 말하는 국룰은 그저, 당신의 취향일 뿐이다. 나도 치맥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떤 날은 치킨에 막걸리가 당기는 날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치킨과 수정과 조합을 좋아할 수도 있다. 당신이 어떤 것을 선호하다면, "제 취향은 이러이러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국룰'이라는 비겁한 단어로 모두의 취향을 일원화시킬 생각은 하지 마시라. 지나친 범주화를 조장한다고 생각해 '부먹, 찍먹' 질문도 좋아하지 않는데 얼마 전 '스테르담'이라는 분께서 그와 관련한 글을 올려주셔서 나도 '국룰'에 대한 글을 쓸 용기를 얻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국룰'은 '성실한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환경보호의 의무' 정도가 있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을 '국룰'이라는 단어로 나에게 은연중 강제하는 자, '국룰도 없을' 줄 아시오.
영어 격언 중에 <<Assumption is the lowest form of knowledge>>라는 말이 있다. 고정관념이나 일반화의 오류에서 오는 추측 및 짐작이, 얼마나 저급한 형태의 지식인지를 지적하는 뼈 때리는 말이다. 당신이 그러하다해서 남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Assupmtion, 나부터도 넣어두려고 노력해야겠다.
** 정말 오랜만의 글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