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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20. 2024

공부를 덜 했으면 네가 좀 더 편하게 살았을 텐데..

잔잔한 불행, 가끔 있는 행복

퇴근하자마자 어린이집으로 달려가서 아이들을 하원시켜 놀이터에 풀어놓고


벤치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나를 보고 친정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공부를 많이 안 해서 직장 안 다니고 집에서 너희 셋만 키웠는데도 힘들었는데, 너는 공부를 많이 해서 편하게 살 줄 알았더니 일도 하고 애도 키우느라 나보다 더 힘드네...



엄마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났다.  


그러게 엄마.
내가 애매하게 공부를 잘해가지고 일도 하고 애도 키우고 다 해야 되네.
 

이렇게 말하면서 생각했다.


교사가 애 키우기 좋은 직업이라더니, 좋기는 대체 누가 좋은 걸까?

소가 부지런하면 농부에게나 좋지, 그게 소에게 좋은 일은 아닐 거다.


'애 키우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도 어쩌면 '일 잘하는 소'에게 붙이는 이름일 수도.


농번기의 소처럼 사는 나의 일상은 이렇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며 아이들 등원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겨두고 나와 지하철역으로 뛴다.

낮에는 학교에서 말 안 듣는 십 대 아이들에게 목이 터져라 수업하고 틈틈이 업무도 해야 한다.

퇴근해서는 바로 어린이집으로 달려가서 아이들을 하원시켜 놀이터에 풀어두고

잠시 벤치의자에 앉아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어두워지면 아이들을 몰고 집으로 가서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부랴부랴 있는 반찬들 꺼내 대충 저녁을 먹이고 이 닦여 재우기까지 하면 나도 기절하듯 잠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정작 내 아이들은 아침마다 "엄마, 학교가지 마"라고 울며 양쪽 다리에 하나씩 매달리는데


남의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느라 온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쓰고


내 아이에게는 친절할 에너지가 없어서 맨날 집에 오면 와불처럼 누워만 있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가 되어도 되는 걸까.


십 대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내 아이들이 나를 간절히 찾는 이 시기는 곧 지나가리라는 것도 안다.


나는 이 시기를 이렇게 소진되어 가며 보내도 되는 걸까.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으면 잔잔하게 불행을 느꼈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들 때문에...


그러다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손에 닿는 책을 꺼내 읽다가 멈칫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끝없이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가 했다는 이 말은 별로 따뜻한 말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라니.


내가 느끼는 잔잔한 불행들이 어쩌면 인생의 디폴트값일 수도 있다니.


쇼펜하우어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내 지금 일상이 고통 쪽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권태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찰나에 가깝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 찰나들이 모여서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도.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가끔 있는 행복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야근하고 온 날 나를 마중 나온 남편과 아이들을 보고 느낀 기쁨,

어쩌다가 수업이 잘 된 날의 뿌듯함,

내가 맡은 업무를 펑크 없이 잘 해결했다는 안도감.

이런 것들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권태에 몸부림치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된다.


원래 인생이 그런 거니까.


깜깜한 밤에 별이 더 잘 보이듯,

고통과 권태의 일상에서 가끔씩 선물처럼 찾아오는 행복은 더 잘 보인다.

별을 모으는 마음으로 일상의 소중한 행복의 순간들을 모아봐야겠다.


엄마가 놀이터에서 내게 했던 말도

어쩌면 엄마의 삶에서 내가 하나의 별처럼 소중하기 때문에 생긴 걱정일 거다.


나는 그런 엄마를 가졌고

아이도 셋이나 가졌고

남편도 가졌고

직장도 가졌고

때때로 글도 쓰고

읽고 싶은 책도 맘껏 읽으며 살고 있다.


많이 가졌기 때문에 많이 번뇌하는 거란 생각도 든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은 이 시기에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이런 시간들 속에서 건질 수 있는 보석 같은 순간들마저 놓치지는 말아야겠다.


하루를 다시 한번 더 사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좀 더 웃고 좀 더 눈을 마주치고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에게도 좀 더 다정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들의 일상도 나처럼 녹록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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