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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보내고부터 본전 생각이 난다.

본격적으로 돈이 들어간다.

by 대강철저

1. 5살의 첫 기로_어린이집이냐, 유치원이냐.


첫째가 5살이 되고 어린이집을 더 보내느냐 유치원을 보내느냐를 고민했다. 동생들이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 나의 편리함만을 생각한다면 같은 어린이집에 셋이 다니는 게 편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하나만 봤을 때에는 유치원이 더 맞을 것 같았다. 그즈음 부쩍 어린이집을 지루해하기도 했기에 환경을 바꿀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지 내 유치원 설명회를 다녀오고는 여기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에 보내게 되면 첫째가 어린이집 이후에 다른 문화센터나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니 육아 독립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내가 둥이를 돌보고 첫째는 하원 후 양가 어머니들이 도와주셨다.) 나는 도움을 받는 것을 줄이고 싶었다.


예상대로 아이는 3월 첫날부터 즐겁게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금방 적응했다.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심심해하던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부터는 생기가 돌았다. 한 반에 24명이 넘는 친구들과 생활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에는 따로 문화센터에서 배워야 했던 발레나 미술활동 수업을 유치원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집에서 나오면 코앞에 위치한 유치원인지라 등하원이 편해진 것 또한 큰 장점이었다. 아침 9시에 가서 5시까지 유치원에서 신나게 배우고 놀고 온 아이는 9시가 되기도 전에 꾸벅꾸벅 졸았다. 낮잠을 안 자는 유치원의 특성상 취침시간이 당겨졌고 나의 육퇴가 당겨진 것은 덤이었다. 나는 유치원이 있는 쪽을 향해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 날은 새로운 노래를 배웠다며 율동을 보여주었고, 어느 날은 '지구의 날'이라며 온 집안의 불을 끄고, 어느 날은 눈뜨자마자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고 성화였다. 유치원에서 대체 뭘 배우는 거지? 세상의 모든 지식을 흡수하듯 끊임없이 뭔가를 다양하게 배워오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했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어린 아기였던 첫째가 어엿한 유아가 되었다.


같은 연초생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서로 편지를 써서 주고받기 시작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 얼마 되지 않아 첫째는 어느 순간 한글을 떼 버렸다. 3월에는 자기 이름만 간신히 그릴 줄 알던 아이가 7월에는 두세 줄이 되는 꽤 긴 편지도 주고받는 게 신기했다. 유치원에서는 따로 한글 수업이 없었다. 친구의 영향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다. 아이는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 성장했다.


이렇게 유치원에 가고부터는 아이가 훅훅 자라는 게 느껴졌다. 단체생활 만렙을 보는 느낌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적은 수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단체생활이 우리 첫째에게는 잘 맞았다. 나는 나의 선택에 흡족했다. 첫째만 봤을 때 말이다.




2. 본전이 생각나다.


그런데 유치원이 어린이집과 다른 중요한 차이가 따로 있었다. 비용이 든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이가 처음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의 교육에 '비용'이 들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국공립 어린이집이라 그런지 보육은 몇 시간을 해도 무료였고 특활 비용은 5만원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유치원을 보내니 매달 비용이 나갔다. 그것을 합치니 꽤 큰돈이 되었다. 어린이집에서는 그냥 해주는 것들도 유치원에서는 모두 비용이 따로 붙었다. 여름방학도 3주나 있고 여름방학 기간에 보내려면 추가로 돈을 또 내야 했다. 심지어 그중에 1주일은 아예 건물의 문을 닫아서 등원이 불가능했다. 맞벌이 부모들은 대체 어디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지?


돈을 쓰면 '본전'을 찾게 된다. 한 달에 수십만 원의 돈을 내다보니 이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질문하게 된다. 둘째와 셋째도 5살이 되면 유치원을 보낼 것인가? 나는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가계부를 펼친다. 엑셀만이 답을 알려줄 거다. 우리 집의 전체적인 돈의 흐름과 대출을 확인했다. 둥이를 어린이집을 한 해 더 보내면 얼마나 비용 면에서 아낄 수 있는지 계산했다. 80만 원 X2= 160만 원이다. 160만 원을 매달 쓰고 안 쓰고가 아이의 인생에 영향이 있을까? 우리 가정 경제는 영향이 없을까?


나는 둥이들을 선뜻 유치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렇다고 현재 잘 다니고 있는 첫째의 유치원을 당장 그만두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교육은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기 어렵구나. 시작하면 늘리는 것이 쉽지 줄이는 것은 어렵구나. 마치 집의 평수 같다. 살면서 이런 순간을 느낄 때가 많았다. 섣불리 시작을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사교육, 너 너무 가까이하면 안 되겠다.




3. 과유불급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보니 이 유치원이 왜 그렇게 인기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정말 다양한 것을 배워온다. 유아 교육을 전공한 선생님의 체계적인 수업은 아이가 새로운 것을 즐겁게 배우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24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 공간에 지내도 괜찮을까 싶었던 걱정은 오히려 다양한 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기회의 장이었다. 그리고 '다문화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영어수업과 '다중지능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가성비 있게 한 장소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에게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매일 일정한 시간에 영어를 배우다 보니 내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혼자 영어 노래를 부르고 단어 카드를 읽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엄마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좋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영어를 잘하게 되자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첫째는 유치원에 가기 전에 한글을 어느 순간 띄엄띄엄 읽더니 몇 달 만에 편지를 직접 쓸 정도로 급격한 발전을 했다. 그리고 나니 영어를 이때 좀 더 시켜주면 이 스펀지 같은 아이가 쫙쫙 흡수하여 영어까지도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영어에 어려움을 느꼈기에 더욱 이 기회가 절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유'라 불리는 영어학원 유치부까지 알아보게 되었다.


영어학원 유치부는 알아볼수록 늪이었다. 5살부터 보내야 효과가 있다느니, 돈 있으면 무조건 보내는 곳이라느니, 초등학교 가서 연계된 학원을 가려면 필수라느니, 뭔가 인생의 다급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비용은 지금 유치원의 딱 두배였다.


한참을 서칭을 하던 나는 여기서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비용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에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5만 원에서 80만 원으로 늘어났을 때에도 큰 다짐을 하고 늘렸는데, 80만 원에서 160만 원으로 늘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였다. 이걸 보내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계산을 하다가 느꼈다. 이건 무리다. 내가 지금 무리를 하려고 하는 거다.


물론 빚을 내서 보내는 수준의 무리는 아니다. 빚을 내지는 않지만 이걸 시작하면 우리 가정 경제는 제로섬이 되어버린다. 수입-지출=0이 되는 지경. 이런 지경이 되면 급한 일이 생길 경우에 대한 대비가 안된다. 우리는 아이가 셋이나 되기에 변수도 많다. 다른 집처럼 단출한 가정이 아니기에 좀 더 여유를 두고 생각해야 했다.

첫째의 사교육비가 부담으로 느껴지면 둥이 동생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은 그렇게 내가 보내고 싶다면 자신의 근무시간을 늘리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아이의 입장에서 아빠가 늦게 오고 영어학원을 다니는 게 행복한지, 아빠와 자주 놀고 집 앞에 유치원을 다니는 게 행복한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유를, 뺏을 만큼 좋은 사교육이란 없다. 유치원도 사교육인가? 돈이 들면 사교육이다. 유치원과 비슷한 교육을 받을 곳은 사실 많다. 어린이집을 7세까지 보낼 수 있고 병설이나 단설유치원을 보내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동네에서 비슷한 또래들이 몰리는 유치원을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아이에게 더 좋은 또래 자극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렇다면 영유는? 아이가 영어까지 잘할 수 있게 된다면 학교에 가서도 자신감이 더 붙지 않을까?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다.


그러나 과유불급. 과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내가 지금 과하게 무리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자각한 이상, 잠시 멈춰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고작 5살에게 다급하게 결정해야 할 만큼 늦은 시작이란 없다.

나는 초보 엄마인지라 첫째가 성장함에 따라 나도 함께 나이를 먹는다. 아이가 두 살일 때는 나도 두 살 엄마, 아이가 다섯 살이 되니 나도 처음으로 다섯 살 엄마가 되었다. 유치원이냐 어린이집이냐를 고민한 지 정확히 1년 후에 일반 유치원이냐 영유냐를 고민하는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드는 모든 일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세상에 돈을 들이면 좋은 것은 널렸다. 그중에서 어느 정도까지 취사선택을 할 것인지는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했다.




4. 인생이 120세라면...


내가 여기서 영유를 포기하면 가슴 밑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고개를 든다.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면? 수월하게 영어를 하면 학업이 편해질 텐데?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내가 알게 모르게 놓친 기회가 많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도 많다. 지금 대출도 안 갚고 저축도 못하며 가정 경제에 무리가 될 정도로 사교육을 시작한다면 결국에는 나의 노후대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소한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노후까지 저당 잡히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자꾸만 본전 생각이 나는 일은 시작하고 싶지 않다.


인간의 수명이 120세가 된다는데 고작 5세에 인생의 결정적인 선택을 할만한 일이 뭐 얼마나 되려나?

조금 더 멀리 볼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나중에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그때에 오래 고민했고 너에게, 우리 가족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일을 선택했다고.


정답은 없다. 내가 가는 길이 우리 가족의 답일 뿐이다.


내년 이맘때에는 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그때의 나를 위해 지금의 생각의 흐름을 남겨둔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반복을 통해 나선형으로 나아가는 부분도 있으니까. 내가 지금 하는 고민들은 아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일 것 같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나의 기준을 과유불급으로 한다면, 그래서 아이에게 좋은 것을 쏟아붓기보다 나쁜 것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잡는다면 좀 더 선택이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무리라고 느낄 때 멈출 줄 아는 것. 그것은 내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추진력을 갖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힘이다. 에너지를 적절하게 분배하고 여분의 에너지를 남겨두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특히 나처럼 다둥이 엄마라면 꼭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에너지 역할을 할때가 많다. 비축을 해두고 흐름을 만들어야한다.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잊지 말자. 5살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고 하지 말자. 인생을 120살이라는 수직선으로 바라보자. 오늘도 5살 엄마로 새롭게 깨닫고 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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