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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I Jul 22. 2019

간장이 타는 맛

온몸으로 비벼 먹는 돼지갈비의 맛

 딱히 가난을 달고 살지는 않았지만 학창 시절을 두어 번 복습해봐도 한우 구이를 외식으로 먹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아직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 집으로 가는 길엔 내 키보다 훨씬 더 큰 푸른 철문의 가든 식당이 있었다. 하굣길에 담을 넘어 훔쳐보면 교실보다 넓은 정원에 분수와 물레방아가 어깨를 곧추세우고 돌아가곤 했다.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식당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엔 괜히 위축돼 그 앞을 종종걸음으로 빨리 지나갔다.


 한 번은 그렇게 멋들어진 식당을 데려가 주신 적이 있는데 한우 구이가 아닌 불고기 전골을 먹었던 것 같다. 공무원 아버지의 노란 봉투 급여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메뉴판을 훑어보곤 그 주문이 합리적이라고 수긍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고기에 꽃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꽃등심을 입에 넣기는 꽤 나이가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고기를 먹으러 나가는 외식은 십 중 십은 돼지고기다. 삼겹살도 좋았지만 달짝지근 돼지갈비는 초등학생 입맛에 딱이었다. 돼지갈비를 주문하면 구멍이 숭숭 뚫린 삼겹살용 석쇠에서 양념육을 위한 불판으로 바꿔주셨다.


 넉넉하게 깔린 밑반찬에 젓가락이 노닐 때면 아이답지 않게 양념게장에 손이 자주 갔다. 단 두쪽 올려진 게장의 살을 쪽쪽 빨아대고 있노라면 오늘의 주인공 돼지갈비가 나온다. 뼈가 붙은 넉넉한 사이즈에 침이 꼴딱꼴딱 넘어간다. 돼지의 갈비에는 살이 많지 않아 돼지갈비는 보통 목살이나 다리살을 접착제로 붙여 사용하곤 한다. 법정에서 판단한다는 게 우스운 얘기지만 2005년 대법원은 '갈빗살이 남아 있는 갈비뼈에 다른 부위의 살코기를 붙인 것도 갈비로 볼 수 있다'라고 판결한 바도 있다. 뼈가 붙어 있지 않은 부분은 양념된 목살이기도 하다.


 목살이든 갈빗살이든 무엇이 중요했으랴 확 달궈진 불판 위에 간장 양념이 듬뿍 묻은 돼지갈비를 크게 올린다.


치이이이이익


 소리에 이어 간장이 센 불에 타는 냄새가 코안으로 훅! 들어온다.

절대 고기로만은 낼 수 없는 향. 뜨거운 불판에 달콤한 과일이 듬뿍 갈린 간장이 타는 냄새다.

코로 일단 한번 먹고 고기를 뒤집을 때 한번 더!


치이이이익


 불판에 간장이 들러붙어 타는 냄새를 코로 한번 더 먹는다.

이쯤 되면 웬만한 불판에는 양념이 타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 거의 다 된 거다. 불을 줄이고 가위로 크게 크게 자른다. 간장으로 양념된 돼지갈비는 양파 절임과 참 잘 어울린다. 얇게 썬 생 양파에 간장과 식초, 고추냉이로 맛을 낸 소스를 부어놓았다.


크게 썰은 돼지갈비와 양파 절임이면 꽃등심이 덤벼도 이 순간만큼은 돼지갈비가 주인공이다.


 돼지갈비는 파 무침과도 어울림이 참 좋다. 파 무침은 고춧가루와 식초로 맛을 내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스타일, 간장과 고추냉이로 버무린 스타일, 초고추장을 기본으로 만든 스타일 등이 있는데 난 고춧가루와 참기름 식초로 간단하게 무쳐낸 엄마식 파무침이 좋았다. 요즘 식당의 파무침들은 조금 양념이 과해서 오히려 돼지갈비의 달달한 맛을 방해하는 것 같다.   


 돼지갈비는 한 불판에 한 번이다. 타버린 간장 양념에 매번 판을 갈아야 한다. 돼지갈빗집에는 '이모 판 좀 갈아주세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번거로운 구이다. 그래서 엄마는 돼지갈비를 그렇게 좋아하시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들! 그거 먹지마 다 탔어. 암 걸려."


마지막 두어 점 정도는 꼭 태워서 먹지도 못했다. 발암 물질이 어쩌고 저쩌고. 근데 참 그때는 그 탄 맛도 맛있었다. 그새 달궈진 불판에 새 고기를 올릴 때 간장이 타는 냄새가 다시 나면 그 번거로움도 잊힌 지 오래다. 식당 한가득 간장이 탄 희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그렇게 돼지갈비는 온몸에 냄새를 비벼가며 먹던 음식이었다.


 그날 밤 씻고 누우라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킁킁 머리카락에 남은 간장 타는 냄새를 맡으며 복습할 수 있던 맛이다. 그 맛은 씻기 귀찮던 10살 아이의 그림일기에 좋은 글감이었다.





 서른을 훨쩍 넘어서니 부모님과 외식에 돼지갈비가 메뉴로 오르는 일이 부쩍 줄었다. 아버지가 심장 질환을 얻으시고 해가 지나 집에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외식은 덜 기름진, 덜 지저분한, 덜 발암물질(?) 한 메뉴들로 채워졌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서, 나에게 돼지갈비는 선호되는 외식 메뉴도 일기장에 적힐 특별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퇴근길 돼지 갈비집 앞을 지나며 간장이 타는 냄새가 코를 스칠 때면 침샘이 요동친다. 약간의 활홀경에 빠진다. 원초적인 자극이다. 직관적인 맛을 떠올리게 한다. 간장과 고기 기름이 타는 냄새의 힘은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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