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어느 날 나는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에 가고 있다. 벌써 7번째 발걸음이다. 이미 연간회원권을 끊은 상태이다. 이곳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아버지와 함께하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빠른 걸음 속 어느덧 미술관에 도착하여 간단히 표를 체크한 후 내부로 들어왔다.
1958년 설립된 본 미술관은 덴마크뿐만 아니라 미국/독일/일본 등 전 세계의 POP아트, 현대미술 등을 중심으로 전시한다. 피카소(Pablo Picasso)나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와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작품들도 이곳을 거쳐 가거나 상설로 전시된다. 오늘도 루이지애나엔 거장들의 새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래왔듯 나에게 그들의 작품은 단 30분이면 충분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짧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때와 같이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언덕으로 나갔다. 따스한 여름도, 시원한 봄가을도 아니었지만 오늘도 언덕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쪽에선 친구들과 와인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는 사람들, 따끈한 커피를 들고 앉은 친구들,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앉아 뷔페를 먹고 있는 가족들, 언덕을 구르고 있는 아이들과 할아버지... 나는 그들과 어우러져 이곳을 하염없이 즐기고 있었다. 오늘도 그저 멍하니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여섯 번도 똑같았다.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은 작품과 건축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앙상블을 이룬다는 점에 있다. 통창을 설치하여 연못과 바다, 언덕과 나무들을 볼 수 있는 본관과 별관들, 징검다리/미끄럼틀/나선형계단/미로와 같은 조금 특이한 구성, 바다가 보이는 언덕 등 이곳의 환경은 현대 미술 작품들과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예술로써 승화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충실히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그저 앉아 바다를 바라보기. 초겨울이었지만 오늘은 특히 날이 그럭저럭 따스한 편이었고 바다도 잔잔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렇게 앉아있기를 조금 지났을까? 덴마크인 꼬마 남매가 언덕에서 놀고 있었고 그들의 젊고 훤칠한 아빠는 그들의 모습을 몰래 사진에 담고 있었다. 잔잔한 바다, 언덕 그리고 아이들과 아빠. 마치 그 모습이 행복한 동화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저 잔잔한 와인색 노을이 물든 바닷가 끝에 나의 아버지도 나를 기다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바닷가로 나갔다. 평온한 바닷가가 실크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도 아까 언덕에서처럼 그저 서서 실크의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지나 바닷가를 따라 홀로 걸었다. 한동안 바닷가에 쌓여있는 바위들과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길이 끝나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어졌다. 나는 힘찬 발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오르자 나무로 만들어진 한 조각상이 보였다.
머리에는 소박해 보이는 모자를 썼고 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단한 표정, 일과에 지쳐서인지 수염을 깎지 못한 얼굴, 상당히 힘들어 보이는 노인은 삽으로 어깨와 다리를 지탱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발 아래로 뱀이 지나간다.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이 노인은 누구일까? 하지만 나에겐 그 구체적인 대상을 알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 이 투박하게 만들어진 조각상의 모습은 나의 아버지처럼 보였다. 우리를 부양하기 위해 모든 고생을 다하신 아버지. 때로는 삽으로 열심히 하루의 일과를 다하시지만 동시에 그 손으로 어릴적 나에게 포크레인을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오셨던 아버지. 뱀과 같은 위협이 나타나면 삽으로 물리치시는...그것은 아버지의 조각상이었다. 내 안에 있었던 막연함으로 나는 미술관을 뛰쳐나와 북유럽의 이 외딴 바닷가를 따라 걸어왔지만 이곳 끝에서 진실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 아래 펼쳐진 바다와 조각상을 번갈아 보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하나 둘씩 생각했다.
어느 덧 정신을 차렸을까? 뒤를 돌아보니 잔디가 있었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버린 검은 나무 뒤로 몽환적인 연분홍빛 하늘과 실크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선물을 개봉했을 때의 환희처럼 그 모습이 정말 나에게 신비롭게 다가왔다. 나에게 주는 힐링의 선물과도 같았다. 마지막까지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인 것인가? 나는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하염없이 정말 하염없이 그 바다, 그 하늘, 그 저녁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서있기를 어느 정도 지났는지 모르겠다. 북유럽의 겨울 해는 일찍 그 모습을 감춘다. 이제 날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 다시 루이지애나로 향했다. 사실 어제와 오늘 합쳐 3번째로 이 문을 통과한다. 밤이 어두워지니 더 이상 언덕에 사람이 없었고 대신 미술관 내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미술관 안에 마련된 거실로 가서 그곳 소파에 앉았다. 공간은 아늑했고 덴마크어 휘게(Hygge,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나타내는 덴마크 단어)라는 단어와 어울렸다. 지금의 상태가 평온하고 힐링이 된다. 한동안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건너편, 가까운 미래와도 같아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신비감을 자아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 앉았다 일어났는지도, 내 앞을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며 아늑함과 소박함 속에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겨울이 되어 해가 빨리 지고 사람이 없지만 이 느낌마저 나는 좋다. 이 또한 아버지가 주신 선물인 것인가?
치열했던 삶을 잠시 접어두고 시작한 지난 몇 개월간의 여행. 지금까지 여행은 ‘배움’이었는데, 이제는 ‘느낌’이 되어가고 있다. 그 동안 대기업에서 부지런히 살면서 세상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었기에 지난날 여행 속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여행에서 ‘느낌’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았고 이 북유럽의 외딴 바다 끝 미술관 거실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느낌’을 선물해 주셨다. 어릴적 야근을 하고 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방에서 레고 상자를 쏟았을 때 누군가 내방의 불을 껐고 레고 위로 달빛이 비추는 기억이 있었다. 30년전 그 때의 아련했던 기억이 지금도 북유럽의 외딴 미술관에서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미술관이 마칠 시간이 되었다. 여름에는 한밤이어도 밝기에 늦은 시간까지 개장하지만 겨울은 늦은 오후만 되어도 어두워지기에 서너 시간 일찍 닫는다. 직원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비웠고 나는 간단히 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왔다. 훔레백 역으로 가는 길. 이 길은 지난 몇 개월간 열 번을 넘게 오갔다. 오늘은 너무 늦게 나왔는지 상당히 어두워보였다. 역으로 가면서 보이는 집들의 창문 사이로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 북유럽식 안락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 TV를 보는 모습이 들어왔다. 누군가 연주를 하는지 음악소리도 들려왔다. 반면 나는 홀로 어두운 이 길을 걷고 있다. 겨울이었기에 낙엽마저 모두 떨어져 있는 길. 하지만 나의 머리 위로 달빛이 비추인다. 이 빛은 그날 밤 아버지를 기다리며 레고를 쏟았을 때의 그 달빛과 같았다. 그 달빛이 내 등 뒤를 비추인다. 마치 앞으로 나의 삶을 축복하듯, 뒤에서 나를 지지해 주겠다는 아버지의 따스한 손길처럼 나의 등을 스치듯 밀어주고 있다. 그렇게 나는 외딴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