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시간째 앉아있다. 무릉계곡으로도 유명한 두타산 베틀바위. 나무로 잘 만들어진 데크가 있기에 오랫동안 앉아있기 편했다. 기암괴석의 베틀바위를 보면 당장 내 앞에 산신령이 나올 것 같았다. 저 멀리 보이는 건너편 울긋불긋 물든 산을 바라보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의 색상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자연이 만든 빛과 색은 인간이 만든 색과는 차원이 다름을 느낀다. 그저 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원래는 두타산 마천루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이곳의 풍경을 보고 나니 하나라도 더 보려는 욕심보다는 자연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 여기에 멈추었다. 데크에 오랫동안 앉아있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오늘은 일일 사진사가 되어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서서, 앉아서, 가로로, 세로로.....
‘인생샷을 남겨주자.’
한 중년의 부부가 내가 혼자 온 것을 보고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분들과 산비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부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저 일*동이요.”
“샘*? 목*?”
우리 동네 주민이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내가 믿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물론, 우연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믿는 것은 신자의 특권이자 누림이라 생각된다.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중년의 부부를 보내며 또 한동안 앉아있었다. 또, 사람들이 지나갔고 나는 한동안 머무르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베틀바위만 놓고 보면 이곳이 설악산보다 멋지다고 감탄하신다.
이제 해가 지기 시작한다. 올라오는 길이 험난하단 이야기는 내려가는 길도 험난하단 이야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가 조금 일찍 진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알린 후 내려왔다.
어제 갔던 용추폭포와 쌍폭포로 가는 길은 숲으로 우거진 산책로를 맑은 공기와 함께 가볍게 걷는 코스였다면 베틀바위 코스는 그것보다는 험했다.
생각보다 일찍 내려와 나가기 전 방향을 틀어 무릉반석으로 갔다. 시냇물은 여전히 우렁차게 흐르고 있었고 거대한 암반 위로 붉고 노랗게 물든 산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거대한 무릉반석 위에 고려, 조선시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새긴 한 시 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왜 이곳에 시를 새겨놓았는지 알 듯했다. 나에게는 많이 필요한 흥이란 게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시 한 편이 저절로 읊어질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또박또박 잘 새기었을까?’
신발을 벗고 시냇물에 발을 담갔다. 발 옆으로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간다. 한동안 머무르며 멍하게 앉아있으니 몸과 마음이 회복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나도 선비이다. 정말 운치 있는 곳이다. 넓은 암반, 울긋불긋 물든 산, 우렁차게 흐르는 시냇물, 발 옆에서 움직이는 물고기까지... 마음에 느긋함과 평안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것이야말로 힐링이지’
다음날 무릉계곡에서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기 전 삼화동을 찾았다. 알록달록한 산과 시냇물로 감싼 작은 마을이 인간세계 선경으로 느껴졌지만 마을 외곽 하천에 잘 갖추어진 산책로 코스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이제 이곳도 점점 더 개발될 것이다.
지금은 서울로 돌아와 빌딩 숲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때 무릉계곡에서 느꼈던 여유와 회복은 아직도 내 마음이 다시 그곳을 찾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