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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Sep 08. 2016

아버지의 향기를 느끼며

“잉끼~!! 김치 안 먹어?” 회사 동료가 물었다.   

“어~ 나 김치 찌개, 전, 볶음, 볶음밥…..하다 못해 김치에 버터 올려 놓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서는 먹는데, 그냥 김치는 안 먹어.”   


처음 같이 밥을 먹게 된 사람들이면, 항상 물어보기 때문에 이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위에 적힌 순서대로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한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할아버지도 그러셨고 아버지도 그러셨어.”   

“유전이군?!”    


어릴 적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일 먼저 냉수를 한 컵 마시도록 시키셨다.   

“냉수라도 한잔 해야지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정신이 번뜩 깨지~!!!”  

“싫어, 싫어.~ 싫어~!!!”     


몇 번을 반대했지만 강제로 시작한 ‘아침에 냉수 한 잔’은 어느 덧 무의식적인 습관이 되었고 지금도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 회식으로 과음을 한 다음 날엔 ‘아침에 냉수 세 잔’으로 바뀐다.


출근하여 사무실을 올라가기 전 엘리베이터 줄을 기다리는 데, 땀을 뻘뻘 흘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동료들이 이야기 한다.   


“땀구멍 펌프로 술을 뿜어내는 자체 정화 시스템~!!!”     


기자 출신이셨던 아버지의 노하우였는지, 물을 많이 마시는 나는 술 회복이 빠른 편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내 밥 위에 멸치를 자주 비벼 주셨다. 내 밥은 내 울타리에 있는 내 껀데~~ 거기에 멸치를 비벼주는 것이 너무 싫었다.   


“퉤퉤퉤~!!! 나 안 먹어~!!!”     


그 날 무지하게 얻어 맞았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오늘,  


나는 멸치를 밥에 비벼서 먹는다. 그게 맛있다.       




아버지는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시는 편이셨다. 어렸을 적 내 머리도 빡빡이로 밀어 버리셨었는데, 그게 너무 싫어서 내가 다 큰 다음에는 반발심으로 머리가 입까지 내려오도록 기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머리를 밀고 있다.  


단지, 흰 머리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에 갔을 때, 매형과 LA 엔젤스 스타디움을 찾았다. 평생 야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위해 자리를 따로 마련해 드리고, 사진을 펼쳐서 야구를 보여 드렸다. 옆에서 매형이 하이파이브를 해준다. 우리 모두는 안다. 이거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한다. 최소한 이렇게 하는 게 마음에는 편할 것 같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매형의 카카오톡 배경사진, 어머니의 프사는 아버지가 조카를 안고 있는 사진이다. 


“친 아버지도 아니어서 그렇게 하기 힘들텐데…..”


매형은 참 좋은 사람이다. 두 분 모두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향기를 느끼려 한다. 





어머니와 매형의 방법과는 다르지만 나에게도 아버지의 향기가 남아있다. 생김치를 안 먹고, 머리를 짧게 자른다. 향기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이 향기는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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