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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Oct 24. 2016

시월 어느 날, 나른한 해운대의 오후

오후 1시반 해운대에서 10월의 태양을 쪼이며 늘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밝은 햇살은 아니지만 저는 이런 회색 햇살이 좋습니다. 



스웨덴 북극권에서 개 발자국을 쫓아 길을 찾아 헤매었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는 데,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오후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제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었죠. 



‘아~ 일어나기 싫어….. 진짜진짜진짜 일어나기 싫어.’ 



해운대에 완전히 늘어져 버렸습니다. 조금 있으면 이러고 있은 지 한시간 반이 넘어가겠네요.



자세를 아무리 고치고 고치고 고쳐 보아도…… 허리와 엉덩이가 아픈건 마찬가지네요. 너무 오래 이러고 있었어서……



이 대낮에 늘어지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 



바로 옆에 있는 인도네시아 아주머니가 먹이를 뿌려주셔서 비둘기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비둘기 덕분에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가 점점 시컴시컴해지기 시작합니다. 오른편에서는 대만 사람들이 ‘여기 대만 사람들 되게 많다.’ 며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중국어를 할 수 있죠.)



10월도 저물어 가는 싸늘한 이 날, 외국인 가족은 수영을 하러 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또 다른 가족들은모래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엄마는 모래성을 쌓는 아들이 자랑스러운지 사진을 찍어줍니다. 


그러고 보니, 제 어릴 적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들은 우는 사진밖에 없었네요. 저는 물을 무서워 했었다는…….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옵니다. 


“둘이 살짝 손잡고, 오른쪽으로 돌아요.”


“둘이 살짝 손잡고, 왼쪽으로 돌아요.” 


그리곤 갑자기……



이소룡들이 습격해 왔습니다. 

모래를 뿌리고 달려드는 모습은 이소룡보다 더 무섭습니다. ^^ 



모래 바람도, 옆에 있는 비둘기들도 아니었네요……  뜻 밖에 저를 일으킨 것은,

담궈도 담궈도 계속 생각나는 바닷물에 대한 호기심이었습니다. 


이내 바닷물 가까이 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참사가 일어났죠. 

.

.

.

.

.



주변 사람들이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도 웃었죠. 왜냐하면, 이곳은 


“해운대이니까요.” 



넘실거리는 은빛 바다를 보며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제 SNS에선 이미 친구들이 ‘~~을 지른다’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평일입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산을 많이 다녔기에 산이 좋았고 굳이 바다를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바다가 좋아졌네요. 이제는 산이 주는 의미……  그 그늘에서 벗어나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엔 이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따라 두 쌍의 발자국을 남겨놓을 누군가와 함께 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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