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그 너머를 생각하며
※ 이 글에는 영화 <얼굴>의 결말과 주요 반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관람 후 읽으시길 권해 드립니다.
영화 <얼굴>의 마지막 씬, 배우 박정민이 어머니 사진을 바라보던 장면을 보며 나는 스치는 생각에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 내내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흉측하다, 추하다, 사람의 몰골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수군거림 속에서 그녀는 철저히 타자화된 존재였다. 그 소문은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의 남편 귀에까지 들어갔고, 남편은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아내의 형상을 진실이라 믿어버렸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공포와 혐오를 이기지 못하고 아내를 살해하는 비극을 저지른다.
하지만 마지막에 공개된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평범했다. 영화 속 사람들이 묘사한 것과 달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한 여인의 얼굴이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과거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본 것이라도 그것이 온전한 진실은 아니며, 내가 들은 말이라도 그 또한 전부 사실인 것은 아니다."
남편은 아내를 볼 수 없었다. 그에게 세상은 소리로만 마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소리가 사실(Fact)이 아니라, 타인의 혐오와 편견이 섞인 소음(Noise)이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재미삼아, 또는 어리숙하지만 올곧은 그녀를 조롱하기 위해 그녀의 외모를 부풀리고 왜곡했다. 남편은 그 왜곡된 말들을 모아 마음 속에서 아내를 점차 괴물의 형상으로 빚어갔다. 아내의 목을 조른건 그의 손이지만, 그 움켜쥔 손에 힘을 실어준 것은 실체 없는 '말'들이었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造)'고 한다.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마음이 평범한 아내를 괴물로 둔갑시킨 것이다. 지옥은 아내의 얼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진실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 속에 존재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다. 눈이 보이는 우리는 과연 그와 다를까?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보고,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저 사람은 원래 저렇대", "이런 일이 있었대"라는 말 한마디에, 그 사람과 제대로 마주하기도 전에 이미 색안경을 끼고 상대를 재단한다. 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 설령 내 눈으로 보았다 해도 나의 편견이 섞인 시선으로 본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진실'이라 여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사진처럼, 편견의 껍질을 다 벗겨내고 난 뒤에 남는 진실은 의외로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손가락질했던 대상이 사실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거나 지극히 평범한 이웃일 수 있다는 사실. 그 뒤늦은 깨달음이 주는 빚진 마음은 오롯이 남은 자의 몫이다.
감독은 영화 <얼굴>의 장르를 드라마로 소개한다. 그러나 보는 내내 스릴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 사진을 보면서 왠지 모를 허탈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감독은 이 모든 장치를 통해 '인식의 한계'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듣는 감각 정보들이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니다. 내 눈은 나의 감정 상태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보여주고, 내 귀는 내가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듣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아닐까.
마지막 장면, 어머니의 평범한 얼굴이 겹쳐지며 나는 조용히 되뇌어 보았다.
보이는 것에 속지 말자. 들리는 것에 흔들리지 말자. 그 너머에 있는 진짜 얼굴을 마주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