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지 않아도 깊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사는 것은 도태이며,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는 삶은 실패라고 세상은 가르친다. 서점 매대를 점령한 자기계발서들은 더 높이 오르라고, 멈추지 말고 성장하라고, 굵은 활자로 우리를 겁박하며 채찍질한다.
그런 소란스러운 세상 한복판, 도쿄의 한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삶은 지루하리만치 반복적이다. 어스름한 새벽, 이웃의 비질 소리에 눈을 뜨고, 이불을 개고, 식물에 물을 주고, 캔커피를 뽑아 낡은 밴에 오른다.
누군가는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누군가는 연민의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기묘할 정도로 평온하다. 영화 속 그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삶의 깊이는 위로 쌓아 올리는 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을 파고드는 깊이에 있다는 사실을. 반복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다. 나무가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뿌리를 내리듯, 삶을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이다.
현대인의 하루는 원하지 않는 타인의 욕망들로 채워진다.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알고리즘은 정교하게 계산된 데이터로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척 취향을 주입한다. 시스템이 골라준 뉴스를 보고, 시스템이 추천한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의 고유한 감각은 서서히 마비된다. 이것은 단순한 편리를 위한 게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주체성을 잠식하는 은밀한 식민지화다.
하지만 히라야마의 낡은 밴 안에는 알고리즘이 침범할 틈이 없다. 그는 출근길에 자신이 직접 고른 '카세트 테이프'를 넣는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을 들으며 출근하고, 'Pale Blue Eyes'를 들으며 퇴근한다. 그가 투박한 손으로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좁고 낡은 차 안은 세상의 소음이 차단된 그만의 성역이 된다.
남들이 보기엔 시대에 뒤떨어진 불편한 방식일지 모른다. 하지만 거대 시스템의 흐름을 거부하고, 자신의 손끝으로 직접 선택한 음악을 듣는 행위. 그것은 그가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감각을 지켜내는 유일한 투쟁이자 숭고한 의식이다. 그는 청소부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내면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주인이 되어 하루를 시작한다.
히라야마는 매일 점심시간,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 카메라로 똑같은 나무를 찍는다. 누군가는 묻는다. 매일 같은 나무를 찍어서 무엇 하느냐고. 영화의 마지막, 감독은 코모레비(Komorebi)라는 단어를 통해 그 대답을 대신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순간의 햇살. 비슷한 뜻의 우리말로는 '볕뉘'가 있다. 작은 틈을 통해 잠시 비치는 햇볕, 혹은 그 그림자. 그것은 단 한 번,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우리 눈에는 매일 같은 나무로 보이지만, 오늘의 바람과 오늘의 햇살이 만들어내는 '볕뉘'는 어제와 다르다. 지금 눈앞에서 일렁이는 저 빛은 이 순간이 지나면 영원히 소멸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상(無常)이라 한다. 무상이란 의미 없음을 뜻하는 허무가 아니라, 어떤 상태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히라야마는 그 무상함을 슬퍼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지기에 아름답다는 역설적인 애틋함으로, 셔터를 눌러 그 찰나를 오롯이 남기고 기억한다.
그에게 하루하루는 지겨운 반복이 아니다. 매번 새롭게 태어나고, 단 한 번의 볕뉘를 남기고 사라지는 두 번 다시 없을 기적의 연속이다.
영화 후반부, 히라야마는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남자와 아이처럼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한다. "그림자가 겹치면 더 진해질까요?" 두 사람은 그림자를 겹쳐보며 옥신각신한다. 사실 우리 눈엔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겹쳐진 어둠을 바라보며,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미세한 틈을 두고 깔깔거린다.
그때 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림자가 짙어지든 아니든, 지금 누군가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맞닿아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로라는 것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히라야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롱테이크 씬은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는다.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흐르는 동안, 그는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운다.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And I'm Feeling Good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 노래 가사는 희망찬데, 니나 시몬의 목소리는 긁힌 듯 거칠고 비장하다. 히라야마의 표정도 그렇다. 그의 삶에는 고독이라는 그림자와 평온이라는 빛이, 과거의 회한과 현재의 충만이 공존한다. 그는 그 모순을 억지로 해결하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슬픔은 슬픔인 채로, 기쁨은 기쁨인 채로. 그 모든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낡은 밴에 싣고 아침 해를 향해 달릴 뿐이다.
그것은 마치 슬픔과 기쁨을 한꺼번에 삼킨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볕뉘'였다. 어쩌면 완벽한 하루는 티끌 하나 없는 무결한 날이 아니라, 내 삶에 드리운 그림자조차 햇살처럼 공평하게 받아들인 날을 의미하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자책할 이유는 없다. 오늘 내가 마주한 볕뉘의 따스함, 내가 고른 음악의 안정적인 박자, 내가 느낀 바람의 간지러움. 그 모든 것이 나만의 완벽한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하루는 이미 충분히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