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가장의 완벽한 살인 계획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뒤에 숨은 슬픈 자화상

by hardy

※ 이 글에는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결말과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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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을 나서는 발걸음은 매일 아침 새로운 전장으로 향하는 비장한 의식과도 같다.


남자는 깔끔한 정장 위에 이질적인 작업복을 겹쳐 입는다. 품 안에는 낡은 총 한 자루를 넣어둔다. 수십 년간 제지 공장을 향하던 그 지독한 성실함 그대로, 그는 이제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러 나선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주인공 만수(이병헌 분)에게 살인은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으로서 수행해야 할 처절한 ‘업무’의 연장선일 뿐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것은 어떻게든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려 발버둥 치는 한 중년 남자의 몸부림과 거친 숨소리다. 그가 휘두른 흉기 끝에는 타인의 삶을 베어내서라도 생존하려는 빈틈없는 '이력서'가 들려 있었다.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다. 재취업이라는 이름의 전쟁터에 내던져진, 우리 시대 모든 직장인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완벽해서 더 슬픈, 장인의 광기


만수의 살인은 즉흥적이지 않다. 평생 종이를 다루며 0.1㎜의 두께 차이를 손끝으로 읽어내고, 거친 펄프에서 매끄러운 종이를 뽑아내던 제지 전문가답게 그는 경쟁자를 지워나가는 과정 역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재단 작업을 하는 듯하다.


상대를 분석하고 리스크를 계산하는 그의 손길은, 가장 질 좋은 종이를 얻기 위해 불순물을 걸러내는 공정처럼 서늘하고 치밀하다. 그에게 살인은 광기 어린 폭주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라는 도화지 위에서 '불필요한 얼룩'을 제거하는 숙련된 기술자의 작업과 다르지 않았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일을 마치고 다시 정갈하게 셔츠 단추를 채우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기이한 슬픔을 느꼈다. 그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밥벌이'였을까, 아니면 평생을 바쳐 일궈온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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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매일 아침 출근길, 기계의 부품처럼 정해진 대로 작동하며 스스로를 마모시키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만수와 얼마나 다를까.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스스로를 베어내 도달한 기계의 숲


영화의 영어 제목은 <No Other Choice>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말. 이것은 만수가 경쟁자를 지워나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자 유일한 방패다.


"가장이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하지만 이 말은 거대한 착각이다. 그가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시스템 안에서 '쓸모 있는 부품'으로 남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장자는 '쓸모없음의 쓸모(無用之用)'를 이야기했다. 산속의 휘어진 나무가 베어지지 않고 천수를 누리는 비결은, 목재로서 쓸모가 없어 베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산다.


우리는 모두 곧은 나무가 되기 위해, 누군가의 기둥이나 대들보로 선택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지를 친다. 만수 역시 시스템이 원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인간성마저 베어버렸다.


하지만 감독이 준비한 진짜 지옥은 따로 있었다.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그토록 원하던 관리자 자리에 오른 만수. 그가 마주한 공장의 풍경은 충격적이다. 그 거대한 공간에는 그와 눈을 맞출 '동료'가 단 한 명도 없다. 오직 차가운 기계음과 스스로 돌아가는 AI 시스템만이 그를 맞이할 뿐이다.


그는 인간을 이기고 그 자리에 섰지만, 정작 그가 관리해야 할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 압도적인 공허함 앞에서 묻게 된다. 그는 무엇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영혼을 깎아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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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장 위에 서려고 발버둥 쳤던 그는 결국, 기계들 사이에서 유일한 '오류'처럼 덩그러니 남겨졌다.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뉴스를 보며 느꼈던 막연한 공포가 영상 속 만수의 텅 빈 눈동자와 겹쳐져 가슴을 짓누른다. 우리가 그토록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 애쓰는 동안, 세상은 이미 '쓸모 있는 인간'조차 필요 없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당신의 이력서를 내려놓을 시간


영화가 끝나도 만수의 불안한 숨소리는 귓가에 맴돈다. 그는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 텅 빈 공장에서조차 대체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화면 밖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멈출 수 있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가지를 쳐내고 스스로를 다듬었는가. 조직이 원하는 매끄러운 부품이 되기 위해, 나만의 고유한 옹이와 거친 껍질들을 너무 많이 베어낸 것은 아닌가.


박찬욱 감독이 던진 서늘한 농담을 뒤로하고,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반듯하게 깎인 기둥이 되기보다, 제멋대로 자란 옹이 하나 정도는 안고 살아가면 어떨까. 기계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인간으로서 마지막 품위일지도 모르니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나를 증명할 이력서를 채우는 대신, 잠시 빈칸의 여백을 견뎌보면 어떨까.


누군가의 도구로 쓰이지 않아도 좋다는 그 결심에서부터, 비로소 밖으로 내어주기만 했던 숨이 온전히 내 안에 감도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세상이 말하는 쓸모라는 볕을 피해, 오직 나로 존재할 수 있는 평온한 그늘 아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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