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우리를 위한 한마디, "Okay"
가끔 머릿속에도 키보드의 'Delete' 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심코 뱉은 말에 실망하는 얼굴, 술김에 했던 실수, 혹은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찌르는 철없던 시절의 기억들.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면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다. 다른 이들은 잊었겠지? 스스로 묻고 불안해하며, 차라리 없었던 일이 되기를 바라곤 한다.
사람들은 이런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편집하고 싶어 한다. 포토샵으로 증명사진의 잡티를 지우듯, 인생이라는 필름에서 상처, 이별, 수치심 같은 오점들을 도려내려 애쓴다. 늘 평화롭고, 행복하며, 티끌 하나 없는 상태. 그것을 잘 유지하는 삶이 곧 잘 사는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 조엘(짐 캐리)은 이 욕망을 실현한다.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에 찾아가 기억 삭제를 의뢰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이 지워지기 시작하자 그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한다. 자신이 그토록 원해서 지우려 했던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함께 가장 감추고 싶은 기억 속으로.
기억이 지워지며 사라져가는 순간, 조엘은 무의식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클레멘타인의 잔상을 붙잡고 뛴다. 비가 들이치는 눅눅한 거실, 어른들의 고함 소리를 피해 숨죽여야 했던 식탁 밑의 어둠, 그리고 무력감에 시달리던 유년의 장면으로.
조엘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지워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원초적인 기억의 페이지 속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뛰어들었다. 자신이 의뢰한 기억 제거 시스템이 클레멘타인과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들을 무자비하게 삭제하는 동안, 오히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수치스러운 '그늘' 속에 숨었을 때, 두 사람은 잠시나마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다.
흔히 사랑을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감정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조엘이 보여준 사랑의 민낯은 달랐다. 나의 가장 초라한 밑바닥, 남들에게는 감추고 포장하고 싶었던 열등감의 현장까지도 기꺼이 공유하는 것. 빛나는 것들은 소멸하기 쉽지만, 얼룩진 것들은 질기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아니라, 상처 입고 수치스러운 순간들이 도리어 사라져 가는 사랑을 지켜주는 최후의 방공호가 된 셈이다.
왜 하필 가장 지우고 싶었던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도리어 사랑을 지키는 피난처가 되었을까?
이 역설은 '불이(不二)', 즉 "둘이 아니다"라는 이치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세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칼로 자르듯 나눈다. 이를 분별심이라 한다. 조엘은 사랑의 기억 중에서 달콤함은 남기고, 고통은 도려내려 했다. 하지만 진흙이 있어야 연꽃이 피어나듯, 사랑했던 기억과 헤어짐의 고통은 한 몸이다. 동전의 한 면을 갈아내면 다른 면도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화 속 '라쿠나'의 기억 제거 시술이 폭력적인 이유는 이 섭리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기계 부품처럼 여겨 고장 난 부분만 삭제하려 했다. 하지만 마음은 기계가 아니라 유기적인 우주다. 상처를 억지로 뜯어내면, 그 상처에 뿌리박고 있던 기쁨까지 뿌리째 뽑혀 나간다.
조엘이 무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친 이유는 단순히 클레멘타인을 잊기 싫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가장 찌질한 모습(고통)과 그녀를 사랑했던 마음(기쁨)이 사실은 뗄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부, 망각의 굴레를 돌아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그리고 테이프 속에 녹음된 서로의 험담을 들으며, 앞으로 서로를 얼마나 지겹게 만들고 실망하게 될지 알게 된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요. 곧 거슬리는 점을 찾아내고 지루해할 거예요."
클레멘타인의 날 선 예고에 조엘은 대답한다.
"Okay(괜찮아요)."
나는 이 "Okay"라는 한마디야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다. 좋은 것만 취하려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내 앞의 상대를 평가하거나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새로이 보겠다는 결단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나 자신 그리고 타인을 편집하려 든다. "이런 성격은 고쳐야 해", "저런 단점은 없애야 해"라며 끊임없이 가위질을 한다. 하지만 그 가위질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고유함까지 오려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부족한 점이나 지우고 싶은 실수가 자꾸 떠올라 괴로울 때면, 억지로 긍정하려 애쓰지도, 뜯어고치려 들지 말자. Okay. 실수 좀 해도 괜찮다. 잠시 찌질해져도 괜찮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야 비로소 '나'라는 온전한 사람이 된다. 좋은 나와 나쁜 나를 나누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과 화해하는 첫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