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건설적인 차이를 포기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출구 없는 차이'로 변질되어갔다.
그리고 거품 경제의 출현과 함께 그 차이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쏟아 붓게 되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로, BMW로, 빈티지 와인으로, 세상사는 카탈로그처럼 진전되어갔다.
1960년대 젊은이들이 내세웠던 '이상주의'는 어제의 뻐꾸기시계처럼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그러한 경쟁이 야기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면에서 드러나는 한없는 폐색감이며, 목적 상실에서 비롯한 욕구불만이다.
나는 어떤 차이를 만들어왔는가?
오른 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과시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였다. 결국 이 차이는 하루키의 말처럼 출구없이 시끄럽게 내 맘속을 돌아나닌다. 나가지 못하고. 창피하다. 정말 더 창피한 것은 나의 '출구 없는 차이'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BMW도 빈티지 와인으로 보여줄 능력도 안된다. 초라한 카탈로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