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발표 (Pitch)가 망하는 이유

Pitch는 영화 예고편, 티저영상이다.

by Inkspire

내 인생 첫 스타트업 Pitching은 미국 실리콘벨리 지역에서 있었던 사업 경진 대회였다. 대학시절 내가 생각했던 아이템을 처음으로 실현하고 창업을 시작했으며, 나만의 아이템을 가지고 발표한 첫 경험이었다. 대회 전까지 아이템과 사업방향성, 그리고 어떻게 발표를 구성할지 등을 교수님의 자문을 받으며 열심히 발표자료를 준비했다. 이때에 교수님의 조언 중 하나는, 지금도 내가 항상 스스로 되뇌고 있다.

"이 아이템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게 많은데 그중 가장 작은 거 하나로만 시작하는 게 좋아"

하지만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나는, 교수님의 말 보단 간단하게라도 확장성 등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 방대한 내용을 10장의 슬라이드에 (기준이 10장이었다) 담아내기 위해 열심히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그렇게 10분간의 발표를 진행한 후, 실리콘벨리의 투자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중 심사위원이 교수님과 매우 비슷한 말을 했다. "지금 설명한 내용 중 딱 한 개만 집어서 해야 될 거 같아요."


그렇게 우리나라에 돌아와 창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미국에서와는 조금 다른 피드백을 받았다.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 확장성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다 등 사업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는 피드백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기술에 대한 설명 (how)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자료에도 넣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든 스타트업 대표들이 그렇듯, 발표자료를 만드는 업무는 내 주 업무가 되어 있었다.

이후 수많은 지원사업과 IR 등 미팅을 하면서 발표 자료를 얼마나 많이 수정하고 새로 만들고 했는지 모른다. 선정이 돼서 잘 된 것들도 있었지만, 이 메거진의 이름처럼, 결국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래도 버티며 열심히 연쇄창업가로서 살아가다 보니, 감사하게도 수많은 실패 경험이 쌓여서 그런가, 점점 젊은 창업가들이 내게 도움을 구하고, 피드백을 부탁하고, 지원사업 멘토, 코칭 등 불러주시는 곳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발표평가위원으로서 한 지원사업의 발표에 참여했었다.


모든 팀의 발표가 10분 발표였는데, 놀랍게도 모든 팀이 약 30장의 발표자료를 가지고 발표하고 있었다. 한 팀은 무려 60장이 넘는 발표자료를 가지고 발표를 했다. 그리고 모든 팀이 How (어떻게)를 설명하다가 시간이 다 끝났다. 대표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자료를 만들고 발표를 하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심이신지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마치 내 과거를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모습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긴 발표자료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핵심이 없다

20장이 넘는 덱을 만드는 순간, 이미 무엇이 중요한지 당신 스스로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정말 중요한 것 없이, 많은 정보를 넣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집을 치우지 못하는 사람이 "다 중요해서 버릴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2. 스토리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긴 자료를 만드는 이유 중에는 불안감이 있다. "이것도 설명하면 더 논리적이지 않을까?", "이걸 빼면 이 부분이 설명이 안될 거 같은데?" 이런 생각들은 점점 발표자료를 길게 만든다. 이를 보는 입장에선, 말이 길어지는 거 보니 지루하고, 동시에 당신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3. 발표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사실 모든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사업이다. 당신의 How는,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대부분 아무도 관심이 없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목적은 단 하나다. "이게 돈이 될까?"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기술로 어떻게 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발표는 듣는 이와는 아예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발표자료 (Pitching) 은 8~12페이지 (max)가 최적이다.

짧고 명확한 메시지는 확신을 보여준다. "우리는 X를 Y로 해결하고, Z의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가 끝이다. 10장 내에 담아내기 충분하다. (그 외 상세한 내용은 appendix에 넣고 Q&A때에 활용하거나, 혹은 요청이 왔을 때 보내면 된다.)


많은 창업가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발표 때에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 (Pitching)의 목표는 그 자리에서 투자를 받거나 심도 깊은 논의를 하는 게 아니다. 발표의 목표는 '다음 미팅을 잡는 것'이다.

투자자는 10~15분 피치로 투자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면 더 자세한 미팅을 잡고, 실사를 진행하고, 여러 번의 만남과 심사를 거친다. 하지만 초기 창업가 대부분은 15분 내에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이것저것 다 넣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발표의 유일한 목표는 투자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당신의 발표는, 이 세상에 쏟아지는 수많은 영화 드라마 예고편중 하나일 뿐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예고편은 "한번 보러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발표의 목적이자 목표이다. 당신의 발표를 듣고 누군가가 "한번 더 자세히 들어볼까"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당신의 발표는 성공인 것이다.


긴 발표자료를 만드는 것보다 짧고 심플하게 만드는 게 훨씬 어렵고 오래 걸린다. 생각나는 데로 넣으면 되는 발표자료는 하루면 만든다. 하지만 40페이지를 8페이지로 줄이려면 일주일은 더 걸릴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찾아내고, 과감하게 버려야 하고 한 문장 한 문장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Mark Twain 이 한 말이 있다.
"I apologize for such a long letter. I didn't have time to write a short letter, so I wrote a long one instead."
("긴 편지글에 죄송합니다.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게 썼어요.")


나는 지금도 항상 스스로에게 말한다.

Pitch (발표)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영업도구다. 목적은 단 하나, 다음 미팅을 잡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신의 발표자료를 8~12페이지로 줄여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 (혹은 듣는 누군가)가 당신의 발표 중 하품하지 않는다.



-Note-
5억 원을 날린 스타트업 대표의 '실패하는 법' 매거진 글입니다.
지금도 실패 중인 실패한 스타트업 대표의 아무 생각이나 막 적는 매거진이니 참고 바라며,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 의견 등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이니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직도 실패 중인 사람의 생각이니, 반대로 생각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 더 올라갑니다.
나의 실패를 통해 누군가 배울 수 있었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