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쓸 것이다

월간문학 시상식을 다녀와서

by 그대로 동행

월간문학 시상식을 다녀왔다. 시상식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원래 아버지가 계셔야 할 자리에 내가 서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대에 올라 상을 타실 분은 아버지인데 딸인 내가 그 자리에 섰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나에게 뭐라고 하셨을까?


시상대에 선 이후 나를 뽑아준 심사위원 수필가 권남희 선생님을 찾아갔다. 부족한 글인데 뽑아 주셔 감사하다고, 선생님의 심사평이 가슴을 울렸다고 전하니 선생님이 한 마디 건네셨다.

"부족하긴... 상 받을만해서 된 거예요."

선생님의 한 마디가 움츠러들었던 나의 어깨를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엄마는 시상대에서 꽃다발을 전해주며 울먹이셨다.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려 이루어진 꿈 앞에서 아버지 생각이 나셨던 게다. 평생 잊지 못할 우리 생애 아름다운 축복의, 축하의 날이었다.



아버지의 꿈은 작가였다. 돌이 되자마자 앓았던 소아마비로 인해 두 다리가 불편했던 아버지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글을 쓰는 일이었다.


몸이 불편해 주로 한 평 남짓한 방에 머물렀던 아버지는 글을 통해서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문학은 그의 우주였다.


할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으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문학의 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장애가 있는 아들이 방안에만 틀어박혀 밤낮으로 글을 쓰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의 허락 없이 방안의 모든 책과 노트들을 마당에 모아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붙들고 눈물로 하소연했다.

“아버지, 작가 안될게요. 그러니 제발 책만은 그만 태워 주세요.”


아버지는 문예지 ‘월간문학’을 창간호부터 구독하기 시작했다. 책 속 글들을 읽으며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회한을 달랬다. 10년 넘게 구독하는 동안 아내를 맞았고 세 딸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내와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려놓았던 아버지의 꿈이 수십 년의 세월을 돌아 이뤄졌다. 수상작 세 편 중 두 편이 아버지와의 얘기로 쓴 글이었다. 당신의 꿈이 이뤄지는 걸 보지 못하고 간 아버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아버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생애 가장 후회되는 일로 작가의 꿈을 접은 것을 말씀하셨다. 나는 그날 아버지의 그 꿈을 내가 반드시 이뤄 드리겠노라 약속했다


아버지가 즐겨 보셨던 월간문학으로 등단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글쓰기에 매진하며 공모전에 나갔지만 매번 고배의 쓴맛을 봤다. 아버지 생전에 약속을 지킨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건만 야속하게도 이별의 날이 성큼 다가왔다.


아버지가 숨을 가누며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나는 아버지께 사과했다.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고, 다음에라도 꼭 약속 지켜 아버지 영정에 바치겠다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슬픔을 가누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고배와 주변의 비아냥에 몇 번이나 포기를 떠올렸다. 포기하기 전의 마지막 도전이라 여기고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에서 이남희 선생님이 가슴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은 누가 뭐래도 써야 한다고 격려해 줬다. 포기와 도전 사이의 간극을 헤맸던 나의 마음이 진심 어린 격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작가 로맹가리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새벽의 약속’ 생각났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그는 가난한 유대인으로 폴란드와 프랑스의 변방을 헤맸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한 초월적인 사랑으로 온갖 역경과 병마를 딛고 아들을 키웠다. 그러면서 어린 로맹가리가 장차 작가가 될 것, 프랑스의 장관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20대를 산화시켰다. 전쟁터를 누비고, 죽음의 질병을 이겨냈으며, 전장에서도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소설을 썼다. 마침내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정부의 훈장을 달고 집에 갔건만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아들이 자신의 죽음을 모르도록 그녀는 생전 200여 통의 편지를 미리 써서 친구에게 매주 아들이 있는 부대로 보내달라 부탁하고 갔던 것이다. 매주 온 편지로 인해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전혀 몰랐었다. 각고의 분투 끝에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켜낸 소설은 ‘나는 살아냈다’ 문장으로 끝난다.

수십 년을 돌아 이뤄낸 그때, 그 청년의 꿈.

소설 속 편지처럼, 거친 삶의 파고에 잠식당할 때마다 아버지와의 약속은 살아낼 용기를 줬다. 나를 먹여줬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약속을 지켰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채 쓰지 못하고 지상에 남기고 간 문장과 사유들을 모은다. 책상에 앉아 홀로 자신의 우주를 수호하고자 열정을 불태웠던 아버지가 되어 당신의 이야기들을 써나갈 것이다.


목발까지 네 다리로 누구보다 뜨겁게 생을 사랑하고 살아낸 아버지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쓸 것이다.


그리하여 눈물을 쏟으며 포기했던 청년의 꿈을, 삶의 끝자락에서 후회를 말하던 아버지의 염원을 완성해 낼 것이다.


나는 살아냈다. 그래서 나는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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